별고래 아리는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컸다.
등에는 밤하늘 같은 무늬가 있었고, 지느러미 끝에는 오래된 은빛 선이 그어져 있었다. 아리는 돌섬 아래에 머리를 대고 느리게 숨을 내쉬었다. 그 바람에 노을의 귀가 뒤로 젖혀졌다.
“작은 친구들이 왔구나.”
목소리는 낮았지만 무섭지 않았다. 커다란 문 안쪽에서 누군가 조용히 말하는 것 같았다.
여울이 정박 고리 옆에 섰다.
“아리, 별등으로 가는 길을 짧게 켜려고 해. 우리가 건널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겠니?”
아리는 끊어진 빛길을 보았다.
“끝까지 이어졌는지 내가 먼저 살필게. 돌아올 길도 있어야 해. 한 번 건넌 다음에 아래로 떨어져서는 아무도 도울 수 없으니까.”
토리는 빈칸이 남은 지도를 단단히 잡았다. 아리가 크다는 이유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을 부끄러워했다.
아리의 눈은 노을의 몸보다 높이 있었다. 노을은 목을 너무 오래 들고 있으면 아리가 잘 보이기보다 하늘만 보이겠다고 생각했다. 아리가 고개를 조금 낮추자 여우 세 친구의 얼굴이 같은 빛 안에 들어왔다. 가까워진 눈가에는 별처럼 작은 무늬들이 이어져 있었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아리도 계속 여기 있었어요?” 노을이 물었다. 아리는 다른 정박지로 짧게 옮겨 쉰 적도 있지만 별등으로 가는 길은 열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누가 돌아올지 몰라 이 고리를 자주 보았지. 오래된 자리에는 기다릴 이유도 오래 남거든.” 반짝이가 정박 고리를 바라보았다.
토리는 아리가 길을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했다. 눈으로 보는 노란 띠가 물처럼 몸을 받치는지 물었다. 아리는 빛이 충분할 때와 약할 때 지느러미에 닿는 느낌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노을은 돌판을 밟기 전에 단단이 막대로 확인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리에게도 자기 몸으로 알아보는 길이 있었다.
“멀리서 울음소리를 들었어요.” 반짝이가 말했다. 아리는 기다리다 가까운 정박지에 자기 위치를 알릴 때가 있다고 했다. 뭉게는 그 소리가 밤마다 모두 슬픈 소리는 아니었다는 것을 듣고 귀를 폈다. 아리는 반가운 친구를 부를 때도 낮게 울어서 멀리 있는 이들은 잘 구분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노을은 어제까지 아리를 그림과 그림자로만 알았다. 큰 몸을 타고 가면 된다는 생각도 했다. 이제 아리가 어디서 쉬고 왜 기다리는지 들으니 정박지는 탈것을 세워 둔 곳보다 한 친구의 집 앞처럼 느껴졌다. 토리는 지도에 고래 그림만 넣지 않고 정박 고리도 함께 그리겠다고 했다.
아리는 토리의 작은 그림을 보고 자기 꼬리가 생각보다 귀엽다고 말했다. 토리는 아직 앞부분을 다 못 그렸다고 설명했다. 아리는 몸이 워낙 길어 한번에 그리기 어렵겠다고 웃었다. 그 웃음은 바위 아래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낮게 번졌다. 노을의 귀가 다시 살짝 뒤로 움직였다.
여울은 짧은 시험에 쓸 길을 가리켰다. 아리는 농담을 멈추고 그 방향을 살폈다. 아이들은 정박 고리 안쪽의 정해진 자리로 물러났다. 반짝이는 별등을 바라보았고 노을은 아리의 지느러미를 보았다. 큰 친구가 움직이기 전에도 여러 곳의 대답이 필요했다.

아침부터 각 문에서 확인 신호가 왔다. 다섯 번째 문은 뒤뚱과 말랑이 맡았고, 여섯 번째 문에는 설아와 관리인들이 남았다. 뭉게가 모아 준 찬물은 두 개의 큰 통에 충분히 차 있었다.
새별은 먼저 짧은 시험을 요청했다.
다섯 번째 문에서 올라온 빛이 여섯 번째 문을 지나 작은 우회관으로 흘렀다. 가느다란 띠가 아리 앞에 놓였다. 아직 멀리 뻗지는 못했지만, 끊어진 정박지와 별등 아래 받침 사이를 천천히 이었다.
아리는 앞지느러미를 빛에 대 보았다. 반짝이는 가루가 물결처럼 밀렸다.
“길은 있어. 다만 약해. 한 번에 사람을 많이 태우지는 않을게.”
처음에는 새별과 금오, 관리 기술자들이 건넜다. 별등 아래의 받침이 안전한지, 돌아오는 정박 고리는 쓸 수 있는지 살폈다. 노을 일행은 아리가 돌아올 때까지 낮은 담장 안에서 기다렸다.
그 시간이 몹시 길었다.
반짝이는 같은 방향만 보고 있었다. 노을은 그의 천 매듭이 너무 팽팽해져 있는 것을 보고 손을 뻗었다.
“조금 풀까?”
반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을이 매듭 끝을 풀자 반짝이는 천을 자기 몸 앞에 다시 놓았다. 작은 모서리가 밖으로 나왔다. 노을의 엄마가 처음 손수건을 둘러 주었을 때도 남아 있던 모서리였다.
“저기 가면 내가 제일 먼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편지는 썼는데 얼굴을 보면 못 읽을 것 같아.” 반짝이가 물었다.
노을은 관리소에서 금오 앞에 앉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준비한 순서대로 말하지는 못했다. “돌아왔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종이는 그다음에 꺼내고. 여기까지 왔다는 건 네가 꼭 설명하지 않아도 보일 테니까.”
반짝이는 별등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를 아직 기다리고 있을까?” 노을은 분명히 그렇다고 대신 약속하지 않았다. “가서 만나 보자. 나는 옆에 있을게.” 아리를 기다리는 동안 두 친구의 그림자가 낮은 담장에 나란히 놓였다.
멀리서 초록 깃발이 올라갔다. 아리가 돌아왔다.
노을, 토리, 반짝이는 여울과 함께 두 번째로 건넜다. 아리의 등에 마련된 낮은 안장에는 안전줄이 있었다. 토리는 자기 가방을 먼저 묶다가 노을에게 순서를 지적받고, 얼굴이 붉어진 채 몸의 줄부터 확인했다.
아리가 천천히 움직였다.
아래에는 구름이 있었다. 구름 틈으로 얼음협곡이 작게 보였다. 더 멀리서는 꽃잎숲과 등대섬이 서로 다른 색의 얼룩처럼 나타났다. 노을은 한꺼번에 다 보려고 고개를 돌리다가, 아리의 등에 손바닥을 대고 정면을 보았다.
생각보다 오랫동안 건넌 길이었다.
아리의 등은 배의 갑판처럼 딱딱하지 않았다. 노을은 손바닥 아래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숨을 느꼈다. 토리는 바람이 모자 챙을 들어 올리지 않도록 끈을 확인했다. 아래를 보면 무릎이 가벼워지는 것 같아 여울이 앉은 쪽을 먼저 보았다.
“바다를 건널 때는 파도가 올라왔는데 여기서는 우리가 파도 위에 있는 것 같아.” 토리가 말했다. 여울은 구름의 가장자리가 밀려오는 모습을 함께 보았다. 노을은 로코가 지금 이 광경을 보면 자기 배 이야기를 얼마나 길게 할지 상상했다. 그 생각을 말하자 반짝이가 조용히 웃었다.

아리는 처음부터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빛의 띠가 이어지는 곳에서 지느러미를 조금 움직이고, 약한 부분에서는 몸의 방향을 고쳤다. 노을은 움직임이 느리다고 쉬운 길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는 아리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자기 천이 바람을 더 받지 않게 모았다.
구름이 옆으로 흐르며 등대섬의 하얀 점이 나타났다. 토리는 해루가 있는 쪽이라고 가리켰다. 노을은 저 아래에서 보면 아리가 작은 점으로 보일지 궁금했다. 반짝이는 낮에는 빛 때문에 잘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보고 있는 사람이 있어도 같은 장면을 같은 크기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지금 어디 있는지 친구들이 알까?” 노을이 물었다. 여울은 준비된 구간을 건너고 있다는 소식은 전해졌다고 했다. 얼굴까지 보이지 않아도 약속한 신호로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토리는 삐약의 작은 딸랑이에서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별등이 가까워지자 반짝이는 말을 줄였다. 노을은 가장 먼저 무엇을 볼지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작은 별의 눈이 움직이는 곳을 따라 보았다. 깨진 유리의 큰 틈 옆에 남아 있는 작은 난간, 둥근 창문 하나, 기울어진 선반의 끝이 차례로 나타났다. 반짝이에게는 모두 이름이 있는 자리일 것 같았다.
아리가 정박지 가까이에서 몸을 낮추었다. 여울은 아직 줄을 풀지 말고 자리가 맞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알려 주었다. 노을은 땅이 눈앞에 생기자 오히려 발이 먼저 움직이고 싶어지는 것을 느꼈다. 반짝이는 앞으로 날아가지 않고 노을 옆에 머물렀다. 이번에는 집에 도착하는 순간도 함께 기다렸다.
별등 아래에 도착하자 반짝이는 금방 움직이지 못했다. 익숙한 복도 한쪽이 무너져 있었고, 등을 닦던 선반은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복도 안에서 작은 별 하나가 달려 나왔다. 반짝이보다 조금 크고 빛이 고른 관리 별이었다.
“반짝이!”
반짝이는 자기 이름을 듣는 순간 앞으로 나아갔다. 두 별의 빛이 겹쳐지면서 벽에 둥근 무늬가 생겼다.

“살아 있었구나. 아래로 떨어졌다는 흔적만 찾고, 어디까지 갔는지 몰랐어.”
“바닷가에 있었어요. 친구들이… 같이 왔어요.”
말을 마친 반짝이는 노을을 돌아보았다. 노을은 손을 흔들었다. 반짝이가 이제 자기 쪽으로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조금 쓸쓸했다.
관리 별은 반짝이의 편지를 받았다. 반짝이는 도망치지 않고 그 안에 무엇을 썼는지 설명했다. 관리 별은 먼저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말한 뒤, 일이 끝나고 함께 이야기하자고 했다.
관리 별은 반짝이의 한쪽 끝에 남은 작은 흠을 보았다. 손을 내밀다가 반짝이가 괜찮다고 말하자 가까이서 살피기만 했다. 그러고는 노을과 토리 쪽으로 몸을 돌려 이름을 물었다.
토리는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 노을은 자기 이름을 말한 뒤 반짝이를 데려왔다고 덧붙이려다가, 함께 왔다고 고쳤다. 마지막 길에서는 반짝이가 기억하는 정박지를 알려 주었고, 자기 편지도 직접 가지고 왔다.
반짝이가 두 친구를 번갈아 보았다. “노을은 내가 젖어 있을 때 기다려 줬어요. 토리는 우리가 온 길을 그렸고요. 지도에 틀린 데가 있으면 다시 고쳤어요. 그래서 돌아가는 길도 있어요.”
노을은 입술을 꾹 눌렀다가 웃었다. 반짝이가 이곳의 친구에게 자신들을 설명하는 소리를 듣자, 여행이 끝나면 자신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짝이의 집 안에도 이제 두 친구의 이름이 들어왔다.
관리 별은 무너진 복도를 통과하지 않아도 쉴 수 있는 방을 가리켰다. 반짝이는 자신이 쓰던 창가가 남아 있는지 먼저 물었다. 관리 별은 창가의 돌틀은 남아 있지만 선반은 정리해야 한다고 답했다. 작은 별은 좋은 소식과 아쉬운 소식을 따로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천도 거기에 있었어요. 아침빛이 너무 밝으면 걸어 두던 것.” 반짝이가 말했다. 관리 별은 옮겨 둔 물건들을 함께 찾아보자고 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지 않은데 찾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노을은 자신이 바닷가에서 별을 안았을 때 그 별에게 이미 아끼는 물건들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토리는 쓰러진 선반 옆의 작은 솔들을 보았다. 반짝이가 쓰던 것인지 묻자 별은 비슷하지만 누구 것인지는 손잡이의 표시를 봐야 한다고 답했다. 반짝이는 손을 뻗다가 지금은 기술자들이 작업하는 자리라는 것을 보고 멈췄다. 돌아왔다고 모든 것을 곧바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관리 별은 노을과 토리에게 물을 가져다주었다. 반짝이는 친구들이 물을 마시는 동안 옆에서 빵 냄새를 맡는 것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관리 별이 놀란 얼굴을 하자 토리는 먹지는 않는다는 말을 빠르게 보탰다. 노을은 그 말을 자신들이 처음 들었을 때의 표정을 떠올리며 웃었다.

“아래에서 처음 만난 날, 나를 물고기처럼 꺼내려고 했어.” 반짝이가 말했다. 노을은 뜰채를 쓰긴 했지만 물고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고 정정했다. 토리는 처음에는 해초인 줄 알았다고 했다가 두 친구의 시선을 받고 모자를 만졌다. 관리 별은 세 친구의 말이 이어지는 것을 듣고 조금 편안하게 빛났다.
노을은 반짝이가 이곳에서 자신들을 소개하는 모습을 오래 보았다. 바닷가에서는 말할 집 이야기가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아래에서 함께 지낸 이야기들이 계속 나왔다. 노을이 옆에 있어야만 이어지는 기억은 아니었다. 반짝이가 여기 머물게 되어도 이 이야기들은 별의 입으로 남을 수 있었다.
밖에서 커다란 날개가 바람을 밀었다. 관리 별은 신호를 맞출 시간이 가까워졌다고 알렸다. 여울이 정박지 쪽에서 노을과 토리를 불렀다. 반짝이는 친구들과 함께 창문 가까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깨진 복도만 바라보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분홍빛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별등 꼭대기에서 분홍빛 새가 내려왔다.
날개를 접어도 노을보다 훨씬 컸지만, 깃털 끝은 물든 종이처럼 가벼워 보였다.
“내 이름도 노을빛이야.” 새가 말했다. “그런데 누가 노을을 부르면 둘이 돌아볼 테니, 오늘은 나를 새벽새라고 불러 줘.”
노을은 놀라 웃었다.
새벽새는 등대의 옛 그림에 있던 신호 전달자였다. 빛길이 끊긴 뒤에도 하늘 가까운 곳들을 돌며 남은 불빛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여섯 섬의 신호를 볼 수 있는 높은 곳까지 날아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을 열거나 유리를 붙일 수는 없었다.
“모두 준비되면 날개를 세 번 펼칠게. 첫 번째는 나를 보라는 뜻, 두 번째는 손을 준비하라는 뜻, 세 번째는 함께 시작하자는 뜻이야. 어느 곳에서든 멈춤 신호가 오면 긴 빛으로 바꾸겠어.”
새별은 그 신호를 아래 관리소들과 맞췄다. 그믐은 마지막 설명을 직접 전하러 떠났다.
노을은 깡통을 기술자에게 건넸다. 바닷가와 절벽, 등대에서 모은 조각이 탁자 위에 놓였다. 말랑이 장비를 갖춰 다시 건져 올린 나머지 조각도 그믐이 가져와 있었다.
여울은 깨진 가장자리의 원래 모양을 비추었다. 기술자들이 조각을 맞추고, 없는 부분에는 준비한 새 유리를 댔다.
깡통 바닥이 비었다.
노을은 그것을 조금 기울여 보았다. 오랫동안 달그락거리던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반짝이가 옆에 왔다.
“네가 들고 다니느라 무거웠지?”
“조금. 그런데 갑자기 조용하니까 이상해.”
반짝이는 빈 깡통 속을 들여다보았다.
“돌아갈 때는 여기에 다른 걸 넣을 수 있겠다.”
노을은 그 말 속의 ‘돌아갈 때’를 오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