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계단을 여는 데에는 여섯 섬의 대답이 필요했다.
한곳에서 빛을 밀어 넣으면 다른 곳의 약한 관에 무리가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새별은 전체 문을 여는 일을 미루고, 우선 얼음협곡과 하늘의 아래쪽 계단 사이만 짧게 잇기로 했다. 다른 섬들은 자신들의 문을 안전하게 닫아 두고 상태를 지켜보아야 했다.
그믐은 높은 연락길을 오갔다. 로코의 배는 숲과 등대 사이에서 우편을 날랐다. 등대와 붉은절벽은 깃발과 불빛으로 짧은 대답을 주고받았다. 바닷길 쪽 소식은 은솔이 직접 챙겼다.
소식이 모이는 데에는 이틀이 걸렸다.
노을은 처음에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하룻밤 푹 자고 나서, 계속 걸을 때는 몰랐던 발바닥의 통증을 느꼈다. 토리는 젖은 지도장을 말렸고, 반짝이는 자기 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썼다.
첫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난 것이 오히려 어색했다. 부두로 내려갈 일도, 당장 가방을 멜 일도 없었다. 노을은 신발 끈을 묶었다가 아직 젖은 부분을 발견했다. 뒤뚱은 오늘은 마를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노을은 가만히 있는 시간이 물건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그제야 실감했다.
토리는 지도를 탁자마다 펼치고 싶어 했다. 뒤뚱이 아침 식탁을 비워 달라고 하자 창가의 넓은 판을 빌렸다. 종이를 한 장씩 꺼내니 여행의 순서대로 펼쳐졌다. 바닷길에서 그린 선 옆에는 소금 자국이 있었고 꽃잎숲의 귀퉁이에는 흙이 남아 있었다.
“더러워졌는데 전보다 버리기 어려워.” 토리가 말했다. 노을은 자기 목수건도 그렇다고 했다. 빨래하면 깨끗해지지만 어디에서 묻었는지 기억나는 자국들이 있었다. 토리는 지도까지 빨 수는 없다며 웃었다. 둘은 찢어진 모서리를 새 종이로 받쳐 붙이고 눌러 두었다.

반짝이는 편지의 첫 줄을 다시 읽었다. 바닷가에서 친구를 만났다는 문장은 그대로 두었다. 그 뒤에는 기억하고도 말하지 못했던 일과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조금씩 더했다. 노을은 지나가면서 종이를 보지 않았다. 대신 다 쓰면 봉투를 고르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점심 무렵 새별은 연락이 아직 다 모이지 않았다고 알려 주었다. 노을은 어디가 늦었는지 물었다가, 그 섬의 친구를 재촉하려는 말처럼 들릴까 봐 이유를 덧붙였다. 새별은 지금 어느 소식을 기다리는지 아는 것은 필요하다고 답했다. 날씨 때문에 배가 늦은 구간도 있었고 점검을 마친 뒤 답하려는 곳도 있었다.
설아는 기다리는 동안 계단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목만 아프다고 말했다. 토리는 실제로 목을 만졌다. 노을이 웃자 설아는 오후에는 작업 종이와 질문지를 잠깐 내려놓자고 제안했다. 해야 할 일을 잊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할 수 있는 일과 기다릴 일을 구분하려는 것이었다.
뒤뚱이 낮은 언덕의 눈을 고르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자기 방석을 가져와도 되느냐고 물었다. 노을은 이번에는 함께 타려는 것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작은 별이 조심스럽게 묻는 동안 노을의 입가에 웃음이 먼저 생겼다. 두 친구는 서로를 보고 썰매 쪽으로 걸어갔다.
설아는 셋에게 오후 한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을 주었다. 노을은 뒤뚱의 썰매를 한 번 더 탔다. 이번에는 반짝이도 작은 방석을 안고 앞자리에 앉았다.
내려오는 동안 반짝이가 외쳤다.
“천천히 가도 된다고 했잖아!”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
아래에서 뒤뚱이 준비한 눈 둑이 둘을 폭신하게 받아 주었다. 반짝이는 노을의 귀 위에 내려앉았고, 둘은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노을은 웃음을 멈추려다가 반짝이에게 붙은 눈 한 조각을 보고 다시 웃었다. 별의 다섯 모서리 중 하나만 유난히 하얗게 되어 있었다. 반짝이는 자기 몸을 돌아볼 수 없어 어디냐고 계속 물었다.
“왼쪽, 아니 네 왼쪽 말고 내가 보는 왼쪽.” 노을이 손을 뻗자 반짝이는 먼저 눈을 털어 달라고 했다. 작은 눈 조각이 떨어지자 뒤뚱이 방석을 말리러 가져갔다.
토리는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눈 둑 위에 여섯 개의 둥근 자리를 만들었다. 하나씩 섬 이름을 붙이다가 숲을 너무 크게 만들어 협곡 자리가 없어졌다. 노을은 바다를 조금 줄이면 되지 않느냐고 했고, 토리는 이번에는 지도라고 부르지 말자며 웃었다.
반짝이가 그 위에 떠서 여섯 자리를 차례로 비췄다. 별등을 어디에 놓을지 묻자 노을은 자기 머리 위를 가리켰다. 반짝이는 너무 가까워서 섬들이 다 보이지 않는다며 조금 더 높이 올라갔다.
셋이 만든 섬은 저녁 바람이 불면 가장자리부터 허물어질 것이었다. 토리는 종이에 옮겨 그리지 않았다. 대신 썰매를 끌고 언덕으로 돌아가며 반짝이에게 이번에는 아래에서 자기 모습을 봐 달라고 했다.
노을은 빈손으로 잠깐 눈 위에 앉아 있었다.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웃는 동안 그 일을 잊었다고 해서 친구를 버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답장이 온 날, 숙소 탁자에는 여러 색의 봉투가 쌓였다.
은솔은 바닷길의 첫 번째 문이 준비됐다고 썼다. 집순이가 홈을 직접 확인했으며, 끼룩은 가까운 마을까지 신호를 전할 수 있었다.
붉은절벽에서는 단단이 서명했다. 아치 받침은 다시 점검했고, 삐약은 작업 때 딸랑이 담당을 맡았다. 로코가 돌아오면 화물줄도 최종 확인하기로 했다.
등대에서는 해루와 갈매기 할머니, 둥글의 서명이 나란히 있었다. 루온과 불씨가 세 번째 문의 유리 관을 보강했고, 몽글이 쉬는 시간을 포함한 관찰표를 만들었다.
꽃잎숲의 편지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꽃비와 몽실, 하늘하늘, 초롱이 나누어 그린 약도였다. 물길은 열려 있었고, 뿌리는 더 이상 손잡이를 누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뒤뚱과 말랑이 다섯 번째 문 앞에서 손도장을 찍었다. 말랑의 도장은 너무 커서 날짜 칸까지 덮었다. 토리가 옆에 날짜를 다시 적었다.

노을은 편지를 한 장씩 읽다가 말했다.
“우리 없이도 다들 계속하고 있었네.”
새별이 웃었다.
“너희가 가야만 움직이는 친구들은 아니니까.”
그 말에 노을은 가방을 조금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봉투마다 업무 이야기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집순이는 새 솔이 자기 집 문보다 길어서 어디에 둘지 고민이라고 적었다. 삐약의 편지에는 딸랑이를 쥔 그림과 오늘은 낮잠을 잘 잤다는 글씨가 붙어 있었다.
토리는 불씨가 보낸 작은 유리 그림을 오래 보았다. 첫 선은 삐뚤었고 두 번째 선도 조금 기울어 있었지만, 세 번째에는 이름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선생님도 자기 연습장을 만들었어.’ 그 아래에는 커다란 모자가 그려져 있었다.
반짝이는 몽실의 종이를 펼쳤다. 그루터기 옆에 두 개의 발자국이 있었고, 꽃비의 글씨로 오늘은 함께 걸어서 돌아왔다고 쓰여 있었다. 초롱은 약도 가장자리에 장식 그림을 그렸지만 길 위에는 걸치지 않게 했다.
“다들 우리가 떠난 날 그대로 있는 줄 알았어.” 토리가 말했다. “우리가 다음 섬에 갈 때마다 앞의 섬은 지도 속에 들어간 것처럼 생각했나 봐.”
노을은 친구들의 짧은 글을 다시 읽었다. 답장을 쓸 때는 문이 준비되었다는 말뿐 아니라 그루터기와 새 솔 이야기도 쓰고 싶었다. 그래야 자신들이 문을 고치러 만난 얼굴로만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반짝이는 편지들을 접는 일을 맡았다. 하나를 접을 때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이 바깥에 보이도록 돌려 놓았다. 이름들이 탁자에 줄지어 놓이자, 숙소가 잠깐 여러 섬의 목소리로 가득 찬 것 같았다.
토리는 답장에 쓸 자리를 나누려다 자신들이 받은 편지 수를 세었다. 한 사람씩 긴 편지를 쓰면 떠나기 전까지 다 끝내기 어려울 것 같았다. 노을은 오늘 소식을 함께 적고 친구마다 하고 싶은 말을 한 줄씩 덧붙이자고 했다. 나중에 돌아가서 직접 들려줄 이야기도 남겨 둘 수 있었다.
집순이에게는 솔을 문 밖에 걸어 둘 자리를 찾았느냐고 물었다. 노을은 큰 솔 그림을 그렸다가 실제 집순이의 집보다 너무 크게 그렸다는 것을 알았다. 토리는 그 정도면 집순이가 솔을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솔이 집순이를 끌고 다닐 거라고 말했다. 노을은 크기를 줄이고 손잡이를 짧게 그렸다.

반짝이는 불씨의 유리 그림 옆에 답을 쓰고 싶어 했다. 처음 고정쇠를 데우던 불꽃이 기억난다고, 다음에는 만든 물건을 직접 보고 싶다고 적었다. 토리는 세 번째 선도 약간 기울었다고 놀릴까 고민하다가 자기가 그린 고래 꼬리도 아직 반쯤이라고 썼다. 서로 배우는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몽실에게는 눈 위에서 썰매를 탔다고 알렸다. 노을은 뒤뚱이 만든 낮은 언덕과 끝의 눈 둑을 그렸다. 반짝이는 그 위에 작은 별을 보탰다. 어제보다 오늘 더 크게 웃었다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림 속 두 친구가 같은 썰매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별은 업무 답장에 각 섬의 점검을 확인한 시각을 따로 적었다. 아이들이 쓰는 그림 편지와 섞이지 않게 다른 봉투를 썼다. 노을이 그 이유를 묻자 급한 내용을 받는 사람이 먼저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안부가 덜 소중한 것은 아니었다. 두 봉투는 같은 배와 같은 전령을 통해 갈 예정이었다.
말랑은 뒤뚱과 남은 부품을 다시 확인하고 돌아왔다. 자기 손도장이 날짜를 가린 것을 보고 종이를 새로 쓰자고 했다. 토리는 옆에 읽을 수 있게 다시 적었으니 지금은 괜찮다고 보여 주었다. 말랑은 다음에는 찍기 전에 자리를 보겠다며 둥근 손끝을 접었다.
노을은 편지를 다 모은 뒤 한 번 더 친구들의 이름을 읽었다. 종이에 적힌 이름들이 이제는 얼굴과 목소리로 떠올랐다. 여섯 섬의 대답이라는 말은 큰 표어가 아니라 집순이의 집게, 삐약의 날개, 불씨의 작은 불꽃과 같은 구체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은솔의 봉투 안에는 부모님의 답장도 들어 있었다. 걱정은 여전히 있었지만, 새별과 설아가 동행하는 계획을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돌아오기로 정한 날을 넘기게 되면 먼저 소식을 보내 달라는 부탁도 있었다.
노을은 편지를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오후에 첫 시험을 했다. 설아가 손잡이를 조금 열자 다섯 번째 문에서 하늘을 향해 가느다란 빛이 흘렀다. 얼음절벽을 따라 놓인 돌계단의 난간이 차례로 켜졌다.
계단 자체가 새로 생긴 것은 아니었다. 눈과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발 디딜 곳이 빛 속에 드러났다.

새별과 설아가 먼저 점검대를 지나 올라갔다. 풀린 난간과 얼어붙은 경첩을 확인하고 돌아온 뒤,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하기로 했다.
점검을 다녀온 설아의 장갑에는 마른 얼음 가루가 묻어 있었다. 노을은 위에서 숙소가 보였느냐고 물었다. 설아는 낮은 구름 사이로 잠깐 보였다고 답했다. “작아 보여도 돌아오는 곳은 똑같아. 저 붉은 천이 창문에 걸려 있는 것도 보였고.” 노을은 그 말을 듣고 뒤뚱의 창문을 다시 바라보았다.
토리는 계단의 시작을 그리면서 처음으로 선을 종이 위쪽까지 올렸다. 한 장으로는 높이를 다 보여 주기 어려웠다. 새 종이를 위에 붙일지 옆에 붙일지 고민하자 새별은 평소 지도와 다른 방향의 그림을 그려도 된다고 했다. 토리는 섬을 위에서만 보려던 습관을 잠깐 내려놓았다.
반짝이는 계단의 난간이 켜지는 순서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별등에서 보던 것과 닮았지만 눈 아래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노을은 아는 부분이 보여서 좋으냐고 물었다. 반짝이는 좋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고 답했다. 위에 올라가면 돌아오고 싶었던 곳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게 될 것이었다.
뒤뚱은 말린 방석을 반짝이에게 돌려주었다. 모서리에 작은 눈자국이 남아 있었다. 반짝이는 몽실이 준 것인데 조금 더러워졌다고 말했다. 노을은 사용한 이야기가 생긴 거라고 했다. 토리는 그래도 물에 젖으면 말려야 한다며 방석이 가방에서 눌리지 않을 자리를 찾아 주었다.
말랑은 다음날 아침 짐을 문 앞까지 옮기는 일을 맡았다. 이번에는 언제까지 가져다 놓을지 정확히 말하고 뒤뚱의 목록에 함께 적었다. 노을은 그 말을 듣고도 크게 칭찬하지 않았다. 말랑이 스스로 끝내고 확인받을 일이었다. 다만 아침에 같이 보겠다고 답했다.
저녁 식탁에서 설아는 올라가는 동안 쉬어 갈 곳과 돌아올 때 사용할 길을 다시 설명했다. 노을은 갈 길뿐 아니라 내려오는 길도 듣자 몸에 들어간 힘이 조금 풀렸다. 토리는 마지막 섬까지 올라가는 지도 아래에 숙소의 창문을 작게 그렸다. 붉은 천이 있는 창문이었다.
반짝이는 다 쓴 편지를 접어 새별에게 맡겼다. 받는 곳은 별등의 담당 별지기였다. 노을은 그 봉투를 들여다보지 않고 전달할 곳이 생겼다는 사실만 기억했다. 내일의 가방에는 유리 조각과 지도, 각 섬의 대답과 작은 별이 끝까지 쓴 편지가 함께 들어갈 예정이었다.
토리는 지도 맨 위에 큰 빈칸을 남겼다.
“이제 마지막 섬이네.”
반짝이가 그 빈칸을 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곳이랑 같을까?”
노을은 뒤뚱이 말려 준 장갑을 가방에 넣으며 대답했다.
“달라졌으면 지금 모습을 그리면 되지. 너도 이번에는 같이 볼 거잖아.”
밤이 되자 하늘 계단 위에서 작은 초록빛이 반짝였다. 위쪽 관리소도 준비됐다는 대답이었다.
노을은 그 빛을 보며 잠들었다.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아래에서 기다리는 친구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