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은 호수 옆 둥근 바위에 누워 있었다. 회색 물개는 노을 일행이 가까이 가자 한쪽 눈을 떴다. 뒤뚱이 보이자 다른 눈도 떴다.
“오늘 오기로 했던가?”
뒤뚱은 부품 목록을 펼쳤다.
“어제 창고에 가져다 두기로 했지. 고리를 가지러 갔는데 해초만 있었어.”
말랑은 몸을 조금 일으켰다.
“그게, 물밑 보관함에 있어. 금방 가져올 수 있어.”
설아가 물가를 살폈다. 바람이 강해지고 있었다.
“지금 혼자 들어가면 안 돼. 물살이 바뀌는 시간이라서. 정확히 어느 보관함이야?”
말랑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뒤뚱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보관함에 있는 건 맞아?”
물개의 수염 끝에서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상자를 옮기다가 미끄러졌어. 낮은 곳이라 바로 찾을 줄 알았는데, 내일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러다 얼음이 더 생겼고.”
토리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노을도 문 앞에서 기다리던 시간이 떠올랐다. 반짝이는 말랑을 보며 천 끝을 만졌다.

뒤뚱은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말랑이 먼저 변명처럼 덧붙였다.
“없어진 건 아니야. 내가 떨어뜨린 자리 알아. 아마.”
“네가 말해 줬으면 다른 고리를 구했을 수도 있어.” 뒤뚱이 말했다. “나는 이미 준비됐다고 생각해서 오늘 재료를 전부 실었어.”
말랑의 몸이 더 낮아졌다.
“지금이라도 들어갈게.”
설아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위험해지는 걸로 어제 일을 갚지는 말자. 물살이 약해지는 시간을 기다리고, 같이 준비해서 찾을 거야.”
말랑은 바위 위에서 내려왔다.
“그럼 그동안 내가 뭘 하면 돼?”
뒤뚱이 잠깐 생각했다.
“떨어뜨린 곳을 그려 줘. 정확히 본 곳과 짐작한 곳은 나누고. 그리고 창고에 남은 부품도 네가 다시 세어 줘. 다음에는 내가 해초 상자를 들고 문 앞에서 기다리지 않게.”
말랑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뒤뚱은 목록을 접으려다가 말랑 앞에 그대로 두었다. 말랑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마른 판도 가져왔다. 토리는 연필을 빌려주고 조금 옆으로 물러섰다.
말랑은 물가의 큰 바위부터 그렸다. 상자를 떨어뜨린 자리에 동그라미를 그리려다 연필 끝을 여러 번 돌렸다. “바로 여기였다고 쓰면 너희가 빨리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자꾸 확실하다고 말하고 싶어져. 그런데 물속에서 상자가 굴렀을 수도 있어.”
뒤뚱은 그림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럼 네가 본 마지막 자리를 표시해 줘. 찾을 범위가 넓어지더라도 그걸 알고 준비하는 편이 나아.”
노을은 말랑이 말끝마다 뒤뚱의 얼굴을 보는 것을 알아차렸다. 뒤뚱은 화가 풀렸다는 표정을 만들어 주지 않았지만 자리를 떠나지도 않았다. 지금 함께 할 일을 듣기 위해 바위 옆에 서 있었다.
말랑은 동그라미 바깥에 넓은 점선을 그렸다. “상자는 이쪽으로 움직였을 것 같아. 이 부분은 내가 본 게 아니야.” 반짝이는 종이가 바람에 뒤집히지 않도록 빈 모서리에 내려앉았다.
그림이 끝났을 때 말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 더 했다. 뒤뚱은 들었다고 대답하고 필요한 줄 길이를 설아와 의논했다. 사과 다음에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고, 말랑은 그 자리에 함께 남았다.
창고로 가는 길에 말랑은 평소에 쓰던 짧은 길을 가리켰다가 멈췄다. 아이들이 걸어가기에는 젖은 돌이 많았다. 설아가 마른 쪽을 골라 앞장섰고 말랑은 그 뒤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노을은 방금까지 곧장 물에 들어가겠다고 하던 친구가 이제 할 일을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창고 문은 아래쪽이 조금 굳어 있었다. 말랑은 어깨로 밀려다가 뒤뚱에게 옆 빗장을 먼저 열어 달라고 했다. 뒤뚱이 빗장을 움직이자 문이 가볍게 열렸다. 토리는 둘이 이 창고를 오래 함께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가 났어도 문 여는 순서는 서로 알고 있었다.
말랑은 빈 상자를 꺼내 바닥에 놓았다. 라벨이 떨어진 부품들을 모아 다시 나누려는 것이었다. 토리가 크기대로 놓으면 되느냐고 묻자 말랑은 비슷한 크기라도 물에 닿는 자리와 마른 자리에 쓰는 것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건을 손에 들 때마다 어디에 쓰는지 짧게 말해 주었다.
“이건 오래 물속에 있었는데도 괜찮네.” 노을이 납작한 금속 조각을 보며 말했다. 말랑은 겉이 멀쩡해 보여도 연결 부위는 따로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난 그런 건 잘 기억해. 그런데 오늘 해야 할 말을 기억하는 건 자꾸 뒤로 가더라.” 뒤뚱은 그 말을 듣고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반짝이는 작은 창가에서 종이에 빛이 고르게 닿게 자리를 바꾸었다. 말랑은 별에게 자기도 비슷한 일을 겪었느냐고 묻고 싶어 했지만 묻지 않았다. 노을은 그 시선을 보았다. 반짝이가 먼저 자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지금 손을 보태는 일은 할 수 있었다.
토리는 부품 이름을 한 줄씩 적다가 아는 이름과 모르는 이름을 나누었다. 루온의 작업실에서 들었던 집게와 고정쇠가 다시 나왔다. 말랑은 아이들이 그렇게 먼 곳에서부터 문을 보고 왔다는 것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가져다 놓지 않은 작은 고리가 그 긴 길의 다음 부분이었다.
말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또 하려다가 빈 상자를 먼저 닦았다. 뒤뚱이 필요한 천을 건네주었다. 두 친구는 짧게 고맙다고 말하고 다시 물건을 세었다. 노을은 말로 끝나지 않는 시간이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그 시간 동안 실제로 제자리를 찾는 물건들이 있었다.
오후까지 기다리는 동안 일행은 호숫가 창고를 정리했다. 말랑은 생각보다 꼼꼼했다. 부품을 세는 속도도 빨랐고, 물에 오래 잠기면 못 쓰는 재료도 잘 알았다.

“이렇게 잘 아는데 왜 미뤘어?” 토리가 물었다.
말랑은 작은 나사를 굴리다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별일 아닌 줄 알았어. 나중에는 말하는 게 별일이 되어 버렸고.”
토리는 자기 지도를 떠올렸다. 반짝이는 아무 말 없이 상자 뚜껑을 닫아 주었다.
창고 안에는 서로 다른 날짜가 적힌 종이들이 걸려 있었다. 말랑은 그중 두 장을 떼어 같은 상자 앞에 놓았다. 하나에는 ‘확인할 것’, 다른 하나에는 ‘확인했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것도 내가 옮겨 붙였어야 했어. 머릿속으로는 세었는데 종이를 안 바꾸니까 뒤뚱은 또 세어야 했겠네.” 말랑이 말하자 뒤뚱은 문밖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보다 언제 센 건지를 몰라서 그랬지.”
토리는 조약돌 두 개를 손에 들었다. “이건 부품도 아닌데 왜 고리 상자에 넣었어?” 말랑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뚜껑이 자꾸 날아가서 눌러 놓으려고. 그랬다가 뚜껑을 닫을 때 돌도 같이 넣었어.”
토리는 자기 기념품 이야기를 하려다 웃음을 삼키지 못했다. 말랑도 수염을 움직였지만, 웃음으로 아까 이야기를 없었던 일처럼 넘기지는 않았다. 돌은 창고의 종이를 누르는 자리에 따로 놓였다.
노을은 빈 상자 바닥의 물기를 닦았다. 말랑이 오늘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설아는 다른 보관소에 연락할 편지도 준비해 두겠다고 했다. 말랑은 자기 이름으로 상황을 적겠다고 말했다.
창고 문을 열었을 때 바람 소리가 아까보다 낮아져 있었다. 말랑은 바위 쪽으로 서둘러 미끄러지지 않고, 설아가 물살을 확인하러 나가는 동안 위치 그림을 다시 펼쳐 두었다.
물가에서 돌아온 설아는 아직 조금 더 살펴보겠다고 했다. 말랑은 바로 몸을 내밀지 않고 바위 옆에 앉았다. 수염 끝을 손으로 털다가 토리가 바라보는 것을 보고 웃으려 했다. 토리는 지금은 긴장되면 긴장된 얼굴이어도 된다고 말했다. 말랑은 굳이 입가를 올리려던 힘을 풀었다.
“수영을 잘하면 물에 들어갈 때 안 떨릴 줄 알았어.” 노을이 말했다. 말랑은 평소에 아는 웅덩이를 오갈 때와 무언가를 찾아야 할 때는 다르다고 했다. “오늘은 찾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그런데 그 생각 때문에 더 오래 있으면 안 되겠지.” 뒤뚱은 약속한 때 돌아오면 찾은 만큼부터 보겠다고 답했다.
말랑은 위치 그림을 다시 보며 첫 바위와 두 번째 바위의 모양을 설명했다. 설아는 자신이 밖에서 확인할 수 있는 표시를 골랐다. 물속의 모든 모습을 상상할 수는 없었지만 말랑이 어디쯤 있는지 서로 알아볼 방법은 필요했다. 노을과 토리는 어른들이 정한 마른 자리에 가방을 놓았다.
토리는 공책의 빈칸에 시작 시각과 돌아온 시각을 적을 자리를 만들었다. 숫자를 적을 생각을 하자 기다리는 일이 조금 덜 막막해졌다. 반짝이는 그 옆에서 바람에 종이가 들리지 않도록 눌렀다. 노을은 작은 별의 도움을 당연하게 받았다가 잠깐 고개를 들었다. 반짝이는 공책을 보고 있었다.

“다시 못 찾으면 오늘 밤에도 잠이 안 올 것 같아.” 말랑이 작게 말했다. 뒤뚱은 찾지 못했을 때 보낼 편지도 준비되어 있다고 알려 주었다. 다른 부품을 구하는 일이 생길 수는 있어도 모두가 아무것도 모른 채 기다리는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했다. 말랑은 그 봉투가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설아는 물가의 상황과 준비한 장비를 점검한 뒤 뒤뚱과 눈을 맞췄다. 아이들은 더 가까이 오지 않고 정해 둔 자리에 앉았다. 노을은 말랑이 물로 향할 때 긴박하게 뛰어나갈 것 같았지만, 실제 움직임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오래 물속에서 일한 친구의 익숙한 순서가 있었다.
말랑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그림을 가리켰다. 오늘 확인하지 못한 부분은 그대로 모르는 곳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뒤뚱은 고개를 끄덕이고 줄을 정리했다. 노을은 바위 너머로 잔잔해진 물빛을 보았다. 이제 기다리는 동안에도 누가 무엇을 맡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물살이 잦아들자 설아와 뒤뚱이 물가에 자리를 잡았다. 숙련된 물속 작업자인 말랑은 위치 줄을 몸에 매고 들어갔다. 노을과 토리는 바위 뒤의 마른 공간에서 시간과 신호를 확인했다.
차가운 물 아래로 회색 등이 사라졌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게 느껴졌다. 토리는 약속한 줄 신호를 혼잣말로 반복했다. 한 번은 위치 확인, 세 번은 돌아오기. 노을은 줄이 갑자기 팽팽해질 때마다 설아를 보았다.
마침내 말랑이 물 위로 올라왔다. 상자는 바위 사이에 걸려 있었고, 안의 고리는 쓸 수 있었다. 대신 상자 한쪽은 깨져 있었다.
말랑은 고리를 내려놓고 오래 숨을 골랐다.
“다음에는 이걸 다시 찾는 일보다, 빠뜨렸다고 먼저 말하는 일이 쉬웠으면 좋겠어.”
뒤뚱은 수건을 건넸다.
“쉬워질 때까지 기다리지는 말고. 어려워도 말해 줘.”
둘은 바로 장난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래도 뒤뚱은 수건을 한 장 더 가져와 말랑의 등에 덮었다.
말랑이 숨을 고르는 동안 설아는 꺼낸 상자를 마른 바닥으로 옮겼다. 고리들은 천 위에 놓고 하나씩 살펴보았다. 노을은 상자가 돌아오면 모두 환하게 웃을 줄 알았다. 실제로는 물기를 닦고 상태를 확인하는 조용한 시간이 이어졌다. 찾아온 것과 바로 쓸 수 있는 것은 다시 나누어야 했다.
“내가 떨어뜨리기 전보다 더 깨끗해진 것 같다고 하면 혼나겠지?” 말랑이 수염을 움직였다. 뒤뚱은 상자 모서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깨끗해진 게 아니라 물에 오래 있었던 거야. 농담은 들었지만 확인은 해야지.” 말랑은 알겠다고 답했다. 둘 사이에 아주 작은 웃음이 생겼다가 일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토리는 목록에 찾았다는 표시를 넣으려다가 뒤뚱에게 어떤 말이 맞는지 물었다. 뒤뚱은 꺼낸 수와 상태를 확인한 수를 따로 적자고 했다. 말랑도 자기 눈으로 고리를 세었다. 이번에는 머릿속에서만 끝내지 않고 숫자를 읽어 주었다. 토리는 읽은 숫자를 다시 말한 뒤 종이에 적었다.

반짝이는 상자 안의 젖은 해초를 보고 집순이가 청소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노을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작은 소라게가 있었다면 금방 골라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짝이가 웃다가 노을의 표정을 살폈다. 노을은 특별한 뜻을 붙이지 않고 천을 하나 더 가져왔다. 잠깐의 웃음은 그냥 그 순간의 웃음으로 남았다.
말랑은 자신이 다섯 번째 문까지 고리를 직접 가져가겠다고 했다. 설아는 오늘 몸을 먼저 말리고 쉬어야 한다고 답했다. 뒤뚱은 누가 운반할지 정하되 창고 기록은 말랑이 끝까지 고쳐 달라고 했다. 말랑은 남은 일이 물속에 다시 들어가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을은 깨진 상자 한쪽을 만지지 않고 살폈다. 부서진 틈에 물과 작은 얼음 조각이 남아 있었다. 말랑은 새 상자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토리는 빈 상자를 가져오고, 뒤뚱은 바닥에 붙은 것이 떨어지지 않도록 천을 넓게 폈다. 물기가 빠지자 나무와 다른 반짝임이 보였다.
설아가 상자를 조금 기울였다. 투명한 얼음 안에서 은빛이 둥글게 돌아갔다. 고리들과는 모양이 달랐고 목록에도 없는 물건이었다. 말랑은 처음 떨어뜨렸을 때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반짝이가 천을 접고 가까이 왔다. 노을도 손을 멈추고 상자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상자 아래에는 원래 들어 있지 않던 물건이 붙어 있었다. 납작한 얼음 덩어리 안에 은빛 원판이 들어 있었다.

설아가 원판 가장자리의 문양을 닦았다.
“기록종이야. 관리실의 소리를 남기는 물건인데, 폭풍 때 물에 떨어졌나 봐.”
말랑이 물가를 돌아보았다.
“저 밑에는 깨진 유리도 몇 조각 더 있어. 오늘은 들어가지 말고, 다음에 장비 갖춰서 찾자.”
반짝이가 얼음 속 원판을 바라보았다. 원판 가장자리에 왕관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번에는 노을이 묻기 전에 말했다.
“그 표시도 봤어. 별등 잠금판에 있던 것과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