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뚱의 숙소에는 손님용 슬리퍼가 크기별로 걸려 있었다. 토리는 가장 작은 것을 집었다가 자기 발보다 훨씬 넓어서 다시 내려놓았다.
“그건 물개 손님 거야.” 뒤뚱이 말했다. “넓다고 다 큰 신발은 아니지.”
토리는 슬리퍼를 제자리에 걸며 옆에 놓인 긴 신발도 보았다. 뒤뚱은 신발 모양만으로 손님을 맞혀 보지 말고 안쪽의 크기 표시를 보라고 했다. 같은 여우라도 발이 다르고 같은 물개라도 편한 모양이 다를 수 있었다. 노을은 자기 발에 맞는 것을 찾아 신은 뒤 바닥을 두 번 디뎠다.
“여기에는 정말 여러 친구가 오는구나. 이 큰 방석은 누구 거야?” 노을이 물었다. 뒤뚱은 정해진 주인은 없고 등을 길게 펴고 쉬고 싶은 손님이 쓴다고 했다. 토리는 그럼 자신도 쓸 수 있겠다고 눕다가 식탁에 닿을 뻔했다. 뒤뚱은 눕는 자리와 밥 먹는 자리를 먼저 구분하자며 웃었다.

부엌에서는 설아가 빵을 자르고 있었다. 두꺼운 장갑을 벗고 얇은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 어제와 달랐다. 노을이 설아도 여기서 일하느냐고 묻자 설아는 자주 머무는 만큼 할 수 있는 일을 돕는다고 했다. 뒤뚱은 대신 눈길 안내를 부탁할 때 수프를 조금 더 넉넉히 만든다고 말했다.
식탁 가운데에는 문을 수리할 때 쓸 재료 목록이 놓여 있었다. 토리가 빵 부스러기를 털려 하자 뒤뚱이 종이를 먼저 옮겼다. “이 목록은 오늘 문까지 같이 갈 거야. 빵 냄새는 나도 되지만 기름이 묻으면 글씨를 못 읽으니까.” 토리는 자기 지도를 빵 봉지로 눌렀던 첫날을 떠올렸다.
반짝이는 숙소의 낮은 창문을 보고 왜 바닥 가까이에 있느냐고 물었다. 뒤뚱은 자신이 의자에 올라가지 않고도 밖을 보고 싶어서 만든 창문이라고 했다. 눈이 높이 쌓이면 창밖이 온통 하얘지는 날도 있었다. 반짝이는 자기 눈높이에도 딱 맞는다며 창가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노을은 창밖의 발자국이 자는 동안 새로 늘어난 것을 발견했다. 뒤뚱이 새벽에 문 앞 길을 확인한 흔적이었다. 몸이 좌우로 흔들려 찍힌 자국을 토리가 장난스럽게 따라 그리자 뒤뚱은 자기가 쓴 서명보다 정확하다고 했다. 설아는 자기 발자국도 어제처럼 너무 멀리 벌려 그리지 말라고 말했다.
아침을 거의 먹었을 때 뒤뚱은 물병을 채우고 재료 목록을 접었다. 서랍 안의 장갑 한 짝을 찾다가 높은 선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은 그 시선을 아직 알아보지 못한 채 빈 그릇을 모았다. 밖에서는 짐을 실은 썰매가 문 앞의 마른 자리에 놓이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뒤뚱은 납작한 나무 썰매를 꺼냈다. 다섯 번째 문까지 옮길 보수 재료가 실려 있었다. 설아는 길잡이를 맡고, 뒤뚱은 호수 가장자리의 얼음 상태를 살피기로 했다.
노을은 뒤뚱이 문턱을 넘는 동안 무심코 손을 내밀었다.
뒤뚱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는 괜찮아. 저 높은 선반에 있는 장갑이나 내려 주겠니? 거긴 정말 안 닿거든.”
노을이 장갑을 건넸다. 뒤뚱은 익숙하게 손을 넣고 썰매 앞에 섰다.
노을은 뒤뚱의 짧은 걸음을 다시 보았다. 도와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뒤뚱은 매일 그 문턱을 넘는 사람이었다. 정작 높은 선반이 불편하다는 것은 말해 주기 전까지 보지 못했다.
“그 장갑을 아래에 두면 편하지 않아? 매일 누가 내려 줘야 하잖아.” 노을이 묻자 뒤뚱이 썰매 위의 큰 상자를 가리켰다. “어제 손님이 말려 준다고 올려놨지. 고마운데 깜빡하고 그냥 가셨더라고.”
토리는 장갑을 걸어 둘 낮은 고리를 찾아 주었다. 뒤뚱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손을 넣었다 빼며 높이를 확인했다. 숙소에는 손님들이 쓰기 좋은 물건도 많았지만, 주인이 닿아야 할 자리는 따로 필요했다.
뒤뚱은 짐 상자에 새겨진 그림을 가리켰다. 한쪽에는 유리 조각, 다른 쪽에는 금속 고리 모양이 있었다. 노을이 가벼운 상자부터 앞에 놓으려 하자 뒤뚱은 짐의 무게뿐 아니라 흔들릴 때 무엇이 부딪치는지도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는 다 넣기만 하면 잘 싼 줄 알았는데.” 토리가 자기 배낭을 보자 뒤뚱이 웃었다. “저녁에 열었을 때 빵이 빵 모양이면 잘 싼 거지. 부스러기 수프가 되어 있으면 조금 바꿔 보고.”
토리는 배낭 위를 살짝 눌렀다가 황급히 손을 뗐다. 노을이 웃으면서 빵 주머니를 따로 받아 들었다. 짐을 나누어 놓으니 썰매 위의 상자들이 움직일 자리도 줄어들었다.
숙소 앞에서는 설아가 더 빨랐다. 그러나 낮고 단단한 얼음길에 도착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뒤뚱은 배를 낮추고 썰매 끈을 어깨에 건 뒤, 순식간에 앞으로 미끄러졌다.

토리가 입을 벌렸다.
“저렇게 빠르다고 말 안 했잖아요!”
설아가 웃었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는 뒤를 따르는 거야.”
뒤뚱은 표지 말뚝 앞에서 정확히 멈췄다. 미끄러지는 속도보다 멈추는 모습이 노을에게는 더 신기했다.
“나도 해 봐도 돼?”
토리가 묻자 뒤뚱은 썰매와 호수를 번갈아 보았다.
“문으로 가는 길은 연습장이 아니야. 돌아와서 숙소 옆의 낮은 언덕에서 해 보자. 오늘은 끈을 잡고 걷는 방법부터 배워.”
토리는 조금 아쉬워했지만 기다리기로 했다.
호수 전체가 단단하게 얼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운데에는 검은 물이 드러난 곳이 있었고, 다섯 번째 문 아래에서는 물안개가 올라왔다. 뒤뚱은 멀리 보이는 흰 얼음을 가리켰다.
“하얗고 깨끗하다고 다 두꺼운 건 아니야. 눈이 덮여 속을 안 보여 주는 곳도 있거든. 표시된 길 밖은 내가 알아도 혼자 가지 않아.”
설아와 뒤뚱은 긴 막대로 앞쪽을 살폈다. 일행은 호수 위를 가로지르지 않고 돌이 드러난 가장자리로 움직였다.
문 가까이에 도착하자 썰매 바닥이 갑자기 걸렸다. 한쪽 날이 얕은 홈에 빠진 것이었다. 설아가 끈을 당기려다가 손을 멈췄다.
“세게 당기면 짐이 한쪽으로 쏠리겠네.”
토리는 썰매 뒤에서 상자를 받쳤다. 노을은 반짝이를 자기 주머니 가까이에 보내고, 뒤뚱이 가리키는 쪽의 작은 짐부터 내렸다. 짐이 가벼워지자 뒤뚱은 썰매를 위로 들지 않고 옆으로 조금 밀었다.
날이 홈에서 빠졌다.

“나는 얼음에서는 나보다 짐을 먼저 믿지 않아.” 뒤뚱이 말했다. “무거운 짐은 늘 아래로 가고 싶어 하거든.”
토리는 그 말을 지도 옆에 적었다가, 나중에 읽으면 무슨 뜻인지 모를 것 같아 ‘걸리면 먼저 짐을 나눈다’로 바꾸었다.
뒤뚱은 바로 출발하지 않고 썰매 날에 남은 얼음을 털었다. 노을은 내렸던 짐을 하나씩 돌려놓으며,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친구가 멈춰 있을 때는 놀랄 만큼 느긋하다는 것을 보았다.
“숙소에서는 설아가 먼저 걷고 여기서는 네가 먼저 가잖아. 앞자리를 바꾸는 건 미리 정한 거야?” 노을이 물었다.
“길마다 아는 사람이 다른 거지. 설아가 눈 쌓인 언덕을 보고, 나는 얼음 밑의 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봐. 늘 내가 앞서고 싶으면 저 높은 언덕에서도 배로 미끄러져 올라가야 할 텐데, 그러면 내일까지도 못 갈걸.”
설아가 밧줄 끝을 건네며 웃었다. “대신 숙소 지붕의 눈을 치울 때는 내가 올라가지. 뒤뚱이 아래에서 어디가 남았는지 알려 주고.” 토리는 지도 가장자리에 앞서 걷는 순서를 적으려다가 멈췄다. 장소가 달라질 때마다 바꿔야 할 긴 목록이 될 것 같았다.
반짝이가 썰매에 묶인 매듭을 바라보았다. 노을은 별이 편히 날 수 있는 높이에 주머니를 벌려 두었다. 누구를 기다려야 하는지보다 지금 함께 움직일 준비가 되었는지 보는 쪽이 쉬웠다.
뒤뚱이 마지막으로 짐을 눌러 보고 출발하자고 말했다. 이번에는 노을도 속도를 따라잡으려고 먼저 뛰지 않았다. 정해 둔 간격만큼 천천히 끈을 잡고 걸었다.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가자 얼음 속에 갇힌 작은 기포들이 보였다. 토리는 하얀 점들이 줄을 지어 있는 모습을 지도에 그리고 싶어 했다. 뒤뚱은 지금 서 있는 바위에서 보이는 만큼만 보자고 했다. 가까이 가야 더 잘 보일 것 같았지만, 점들은 멀리서도 충분히 모양을 드러냈다.
“얼음 아래에도 길이 있어?” 노을이 물었다. 뒤뚱은 물이 움직이는 길과 말랑이 오가는 자리가 있지만 눈 위의 길과 같지는 않다고 했다. “너희가 보는 흰 바닥이 말랑에게는 머리 위의 지붕일 수도 있지.” 반짝이는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도 친구들이 같은 곳을 다르게 보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토리는 종이 한 장에 위와 아래를 같이 그리는 방법을 생각했다. 설아는 지금은 모두 그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토리는 알아 두고 싶어서 그렇다며 웃었다. 노을은 자기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을 그림으로라도 이해하려는 마음은 알겠다고 말했다. 뒤뚱은 말랑에게 직접 물으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잠깐 쉬는 동안 노을은 빵 주머니를 열었다. 아침에 나누어 실은 덕분에 빵은 아직 제 모양이었다. 토리가 부스러기 수프를 피했다고 하자 뒤뚱은 저녁 메뉴 하나가 사라졌다며 아쉬운 척했다. 반짝이는 빵 냄새보다 바람 냄새가 더 강하다며 노을의 어깨 안쪽으로 몸을 옮겼다.
설아는 다음 표지까지 거리를 보고 아이들에게 알려 주었다. 어제처럼 멀리서 왼쪽이라고 외치지 않았다. 토리는 이번에는 어느 곳을 말하는지 바로 찾을 수 있다고 답했다. 뒤뚱은 두 사람이 어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눈치챘지만 놀리지 않고 썰매 끈을 정리했다.
노을은 썰매 옆에서 걷는 것이 처음보다 익숙해졌다. 무조건 뒤뚱의 빠른 몸을 따라가는 대신 짐이 흔들리는지와 정해 둔 간격을 보았다. 반짝이가 가방 옆 끈이 풀리려 한다고 알려 주자 다음 멈추는 자리에서 고쳤다. 작은 말을 듣고 손을 움직이는 일이 조금씩 편해졌다.
얼음벽이 가까워지자 바람 소리가 낮게 울렸다. 설아는 벽 안쪽에 문이 있다고 가리켰다. 겉에서는 커다란 얼음 덩어리처럼 보였지만 가까운 쪽에 둥근 윤곽이 있었다. 노을은 다음 문이 어떤 모습일지 또 다르게 상상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여섯 문은 같은 일을 해도 같은 곳에 살지 않았다.
다섯 번째 문은 얼음벽 안에 있었다. 둥근 그릇은 보였지만 빛이 흐르는 관이 하얀 서리로 가려져 있었다. 설아가 바깥 덮개를 열고, 뒤뚱은 필요한 부품 목록을 꺼냈다.
그가 눈썹을 찌푸렸다.
“교체할 고리는 어디 있지? 말랑이 가져다 둔다고 했는데.”
창고 상자에는 새 고리 대신 말린 해초 묶음과 조약돌 두 개가 있었다. 토리가 조약돌을 보며 자기 기념품을 떠올렸다.
뒤뚱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말했다.
“돌아가는 길에 말랑을 만나야겠다.”
그날 오후, 약속대로 숙소 옆 낮은 언덕에서 썰매 연습을 했다. 뒤뚱은 끝에 두꺼운 눈 둑을 만들어 놓았다. 토리는 두 번 옆으로 넘어졌고 세 번째에는 제법 멀리 갔다.
세 번째에 멀리 간 토리는 처음에는 자신이 제일 잘 탔다고 외쳤다. 뒤뚱은 끝에서 멈춘 다음에 그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다. 토리는 눈 둑 가까이에서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일어섰다. 기쁜 마음이 먼저 도착해도 몸은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넘어지니까 눈이 모자 안으로 들어왔어. 어떻게 그쪽으로 들어가지?” 토리가 모자를 털자 노을이 웃었다. 뒤뚱은 누워서 내려가면 머리가 먼저 눈에 인사하기도 한다고 했다. 토리는 다시 탈 때 모자를 조금 더 단단히 썼다. 고글 위에 붙은 작은 눈은 설아가 닦아 주었다.

노을은 썰매를 타지 않고 출발점의 가방들을 한쪽으로 모았다. 누군가 지켜야 할 것 같았다. 반짝이는 끝까지 떠내려가지 않고 아래에서 토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리가 올라오며 노을도 타라고 했지만 노을은 짐이 있다고 답했다. 뒤뚱은 짐은 지금 누구도 가져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설아는 썰매를 다시 끌고 올라오는 토리와 보폭을 맞췄다. 아침보다 말이 더 많이 오갔다. 토리는 다음에는 얼마나 멀리 가는지보다 옆으로 넘어지지 않고 내려오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뒤뚱은 자기 몸이 편한 자세를 찾는 중이라고 답했다. 처음부터 펭귄처럼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반짝이는 아래쪽 눈 위에 생긴 토리의 선을 보았다. 길을 잘못 그렸다고 지울 필요가 없는 선이었다. 다음 번에는 옆에 또 다른 선이 나면 됐다. 노을이 멀리서 무엇을 보느냐고 묻자 반짝이는 썰매가 지나간 길이라고 했다. 토리는 오늘 자기 지도보다 그 선이 더 마음에 든다며 웃었다.
뒤뚱이 한 번 내려오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짧은 몸이 눈 위로 미끄러질 때에는 숙소 문턱을 넘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그러나 내려온 뒤에는 다시 같은 속도로 뒤뚱뒤뚱 올라왔다. 노을은 둘 중 하나만 뒤뚱의 진짜 모습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잘하는 곳에서도 쉬는 걸음은 필요했다.
설아가 노을의 가방을 자기 옆에 놓았다. “여기에 두면 돼. 지금은 돌아가며 타는 시간이니까 너도 차례를 골라.” 노을은 빈손을 내려다보았다. 여행하는 동안 무언가를 챙기지 않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바로 썰매 쪽으로 가지 못하고, 아래에서 기다리는 작은 별을 한 번 더 보았다.
노을은 처음에 타지 않으려 했다. 반짝이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어서였다.
“나는 여기서 봐도 돼.” 반짝이가 말했다. “네가 내려오는 쪽에서 기다릴게.”
노을은 썰매에 앉았다. 배낭도 깡통도 없는 손이 조금 낯설었다.
눈길을 내려오는 동안 차가운 바람이 귀 사이를 지나갔다. 아래에서 반짝이가 빛을 한 번 흔들었다. 노을은 별을 데리고 가는 여행 중에도 자기가 웃어도 된다는 걸 오랜만에 몸으로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