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숲에서 얼음협곡으로 가는 길은 곧장 겨울로 들어가는 문 같지 않았다. 먼저 꽃이 줄었고, 다음에는 나무가 낮아졌고, 마지막에야 길 가장자리에 녹지 않은 눈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꽃비가 익숙한 나무 이름을 하나씩 알려 주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꽃비도 자주 보지 못한 풀들이 나타났다. 노을은 뒤를 돌아 숲의 분홍빛을 찾았다. 나무 사이로 보이던 정원 지붕은 어느 순간 사라졌지만 꽃비의 꽃관에는 아직 같은 꽃이 달려 있었다.
“꽃잎숲 끝에는 줄 같은 게 있을 줄 알았어. 여기부터 눈 오는 곳이라고 써 있는 줄.” 토리가 말했다. 꽃비는 바람과 나무는 표지판을 보고 멈추지 않는다고 웃었다. 대신 사람들이 만날 곳을 정하려고 돌집을 세워 두었다. 그곳에서는 숲길을 아는 친구와 눈길을 아는 친구가 소식을 주고받았다.
몽실과 하늘하늘에게 인사한 뒤 노을의 걸음은 한동안 조용했다. 작은 친구들이 곁에 있을 때는 낮은 곳과 높은 곳에서 말이 들렸는데, 지금은 꽃비의 발소리가 가장 가까웠다. 반짝이는 토리 가방 옆에서 천을 조금 안쪽으로 모았다. 공기가 차가워지자 몸의 빛도 더 선명하게 보였다.
토리는 돌 하나를 들어 색을 비교했다. 꽃잎숲의 돌보다 회색이 짙고 납작했다. 노을이 또 가져갈 거냐고 묻자 토리는 오늘은 보기만 하겠다고 했다. 가방 안에는 이미 세 개가 있었다. 꽃비는 지금부터는 짐의 무게를 다시 살필 곳이 나온다며 미리 웃었다.
노을은 겉옷을 여미면서 엄마가 매듭을 지어 주던 손을 떠올렸다. 꽃비가 도와주겠느냐고 물었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해 보았다. 두꺼운 옷을 입으니 팔이 평소보다 짧아진 느낌이었다. 토리는 자기 모자 위에 또 모자를 쓰면 귀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양쪽을 만졌다.
꽃비는 돌집에서 설아가 준비한 것을 보고 맞추면 된다고 답했다. “설아는 내가 모르는 길을 알아. 대신 정원에 오면 화분 사이에서 꼭 헤매지. 같은 얼굴로 모든 곳에서 길잡이가 되는 건 아니더라.” 노을은 설아가 어떤 친구인지 조금 궁금해졌다. 아직 만나지 않았지만 헤매는 모습부터 들으니 덜 긴장되었다.
바람이 나무를 통과하는 소리가 낮아졌다. 잎이 적어져서였다. 노을은 하얗게 남은 눈을 발끝으로 건드리려다 돌집 지붕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았다. 사람을 기다리는 집이 추운 길 한가운데 있다는 것은 멀리서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꽃비가 손을 들어 문 앞의 흰 여우에게 인사했다.

꽃비는 산기슭의 돌집까지 동행했다. 그곳에서 흰 여우가 세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털모자를 쓴 귀 아래로 하얀 털이 풍성했고, 두툼한 스웨터에는 눈 결정 무늬가 있었다.
“설아야. 은솔에게 너희 이야기를 들었어. 걔가 또 약속을 세 개씩 잡았다고?”
설아가 웃자 노을도 반가워졌다.
“이번에는 일을 나눴어요.”
“그래? 다음에 보면 칭찬해 줘야겠네. 너무 많이 칭찬하면 또 일 세 개를 받을 테니 조금만.”
설아는 얼음협곡을 오가는 길잡이였다. 돌집에서 세 친구의 신발 끈과 겉옷을 확인하고, 토리의 가방에서 너무 무거운 돌 세 개를 꺼냈다.

“기념품이에요.”
“그럼 기념품도 오늘 쉬게 하자. 돌아갈 때 찾아가면 돼.”
꽃비는 숙소 이름과 다음 연락 시간을 설아에게 다시 확인했다. 노을과 토리는 정원 친구들에게 보낼 짧은 인사를 남겼다. 반짝이는 몽실이 준 방석을 가방 안쪽에 넣었다.
토리는 돌 세 개를 돌집 창가에 나란히 세웠다. 그냥 두고 가면 어느 것이 자기 것인지 모를까 봐 종이에 각각의 무늬를 그렸다. 설아가 이름까지 붙인 돌이냐고 묻자 토리는 아직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직이면 돌아올 때는 생기겠네. 그때 나한테도 소개해 줘.” 설아는 토리의 가방을 다시 들어 무게를 살폈다. 토리는 돌을 빼고도 지도장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했다.
꽃비는 노을의 목수건 아래로 두꺼운 겉옷을 여며 주었다. 노을이 손을 넣어 보더니 자기가 해 보겠다고 했다. 장갑 때문에 매듭을 두 번 놓쳤지만 꽃비는 끝을 잡아 줄지만 물었다.
“정원에 돌아가면 몽실한테 그루터기 줄을 봤다고 전해 주세요. 잊어버리지 않았다고요.” 노을이 말했다. 꽃비는 그 말을 기억하겠다며 자기 주머니의 편지를 눌러 보았다.
반짝이는 꽃관 근처로 날아와 잠깐 머물렀다. “내 이야기를 적어 줘서 고마워. 나 혼자 쓰려고 했으면 자꾸 지웠을 거야.” 꽃비는 반짝이가 내려앉을 수 있도록 손을 폈다. “네가 말해 줘서 적을 수 있었어. 다음 소식도 기다릴게.”
세 친구가 돌집을 나설 때 꽃비는 따라 나오다가 문 앞에서 멈췄다. 설아와 이미 약속한 길이었다. 노을은 뒤를 한 번 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분홍 꽃관이 회색 돌벽 앞에서 작게 밝아졌다.
눈길에 들어서자 설아의 걸음이 빨라졌다. 발이 어디에 놓일지 이미 아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뒤따르는 아이들은 발자국을 쫓느라 주변을 볼 여유가 없었다.
토리가 두 번째로 가방 끈을 고쳐 맸을 때, 설아는 이미 작은 언덕 위에 있었다.
“저기 갈림길에서는 왼쪽이야!”
바람이 불었다. 토리는 ‘왼쪽’은 들었지만 어느 갈림길을 말하는지 보지 못했다. 눈 위에는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의 흔적이 있었다.
노을은 멈췄다. 반짝이도 어깨 높이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토리가 말했다.
“저쪽일 것 같아. 발자국이 더 많아.”
“확실해?”
토리는 갈라진 길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면 여기 있어야겠다.”
셋은 눈에 잘 띄는 붉은 표지 말뚝 옆에서 기다렸다. 얼마 뒤 설아가 되돌아왔다. 처음에는 왜 따라오지 않았는지 의아한 얼굴이었다가, 세 갈래 길을 보고 표정이 달라졌다.

“내가 아래에서는 둘로 보이는 줄 알았어.”
노을이 장갑 낀 손을 쥐었다 폈다.
“설명을 들었는데도 계속 놓쳐요. 아까부터 뒤만 보고 걸었어요.”
설아는 자신이 지나온 언덕을 보았다.
“나는 혼자 다닐 때 걸음을 쓰고 있었네. 미안해. 이제 내가 보일 만큼만 앞서갈게.”
그들은 따뜻한 차를 마시기 위해 잠시 멈췄다. 설아는 눈 위에 길의 모양을 그렸다. 협곡 숙소는 동쪽 아래에 있었고, 다섯 번째 문은 그보다 더 안쪽의 얼음 호수 옆에 있었다. 오늘은 숙소까지만 가기로 했다.
토리는 설아의 그림을 옮겨 그리며 물었다.
“그렇게 빨리 걸으면 주변 구경할 시간은 있어요?”
설아가 차를 삼키다가 웃었다.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희 얼굴은 못 봤구나.”
노을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길잡이도 자기가 놓친 것을 바로 알아차리는 건 아니었다.
설아는 찻잔 뚜껑을 닫기 전에 자기 장갑을 벗어 눈 위에 놓았다. 길쭉한 발자국들이 장갑을 지나 언덕 쪽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의 발자국은 그 사이마다 두세 개씩 찍혀 있었다.
“나는 한 걸음에 갔는데 너희는 두 걸음이었구나. 같은 길을 걸었으니 똑같이 걸었다고 생각했네.”
토리가 자기 신발을 설아의 발자국 옆에 놓았다. “따라가려고 발을 멀리 내밀었더니 신발 안에서 발가락이 자꾸 부딪혔어요. 느리다고 하실까 봐 말씀을 못 드렸고요.”
설아는 신발 상태를 살핀 뒤 일어섰다. “이번에는 네가 편한 걸음으로 몇 걸음만 가 보렴. 내가 뒤에서 볼게. 다음 쉼터까지 그 속도로 함께 가 보자.” 토리는 먼저 걷는 것이 어색한지 한 번 돌아보았다.
노을은 뒤에서 토리의 모자를 보았다. 늘 다음 길을 찾느라 바쁘게 움직이던 모자가 이번에는 천천히 오르내렸다. 그 속도로 걸으니 눈 가장자리에 난 작은 발자국과 나뭇가지에 매달린 얼음도 보였다.
설아가 아이들 곁으로 와서 저 작은 발자국은 밤에 지나간 동물의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리는 바로 지도를 꺼내려다가 주머니에 손을 다시 넣었다. 지금은 발로 익힌 길을 조금 더 걷고 싶었다.
토리가 속도를 늦추자 설아는 앞서 걷는 대신 옆에서 길을 설명했다. 눈이 얇게 덮인 돌과 가지 아래의 작은 구덩이가 보였다. 노을은 처음에는 하얀색 하나로 보이던 길에 회색과 푸른색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햇빛을 받는 곳과 그늘의 색도 달랐다.
“설아는 하얀 털인데 눈밭에서 서로 잘 보여요?” 노을이 물었다. 설아는 자기 모자와 스웨터를 가리켰다. “그래서 옷이 도와주지. 내가 배경이 되면 뒤따라오는 친구가 곤란하잖아.” 토리는 자신이 빨간 목수건을 따라가면 노을을 놓치지 않겠다고 했다. 노을은 반짝이가 그 아래 있으면 작은 등불도 함께 움직이는 셈이라고 생각했다.
설아는 뒤뚱의 숙소에 처음 갔던 날을 이야기했다. 문 앞 눈을 다 치우면 좋아할 줄 알고 너무 멀리 밀어 놓았다가, 뒤뚱이 썰매를 세워 두던 낮은 둑까지 없앴다는 것이다. 토리는 좋은 일을 하려다 상대가 쓰는 것을 몰랐던 적이 많다고 말했다. 설아는 그래서 요즘은 눈도 아무 데나 밀지 않는다고 했다.
바람이 잠깐 멈춘 자리에서는 자기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노을은 반짝이에게 괜찮으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별이 오래 생각할까 봐 구체적으로 물었다. “천이 너무 펄럭여? 이쪽은 바람이 조금 덜 와.” 반짝이는 지금은 괜찮고 더 추워지면 말하겠다고 답했다.
토리는 갈림길에서 확실하지 않다고 말한 뒤에도 가슴이 한동안 뛰었다고 털어놓았다. 멈춰 있으면 설아가 자신들을 잊고 갈까 봐 걱정했다고 했다. 설아는 앞에서 말한 뒤 아이들 얼굴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답했다. 돌아보는 횟수만 늘리기보다 같은 거리에서 걷겠다고 했다.
노을은 옆으로 나란히 걸을 수 없는 좁은 부분에서 토리를 먼저 보냈다. 토리는 몇 걸음 뒤에 기다렸다. 둘 사이의 말이 예전처럼 쉽게 쏟아지지는 않았지만, 앞서간 친구가 돌아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지금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노을은 발자국을 밟고 그곳까지 걸었다.
낮은 언덕을 넘자 먼 협곡의 얼음벽이 보였다. 햇빛이 닿는 꼭대기는 밝았고 아래쪽은 푸른 그늘이었다. 설아는 오늘 저 안쪽까지 가지 않는다고 다시 알려 주었다. 토리는 길 전체를 한 번에 채우려던 연필을 꺼내지 않았다. 오늘 도착할 집 하나를 먼저 기억하기로 했다.
오후에는 바람이 더 차가워졌다. 설아는 골짜기에 들어가기 전에 모두를 다시 모았다. 눈을 많이 머금은 길 대신 바람에 쓸려 단단해진 낮은 능선을 택했다. 왜 돌아가는지 설명해 주자 더 걷는 일이 덜 답답했다.
반짝이는 노을의 목수건 가까이 왔다.
“추워서 조금 붙어 있어도 돼?”
노을은 천을 열어 자리를 내주었다.
“응. 빛이 답답하면 말해.”
두 친구 사이에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틈이 있었지만, 이제 그 틈 때문에 떨어져 다니지는 않았다.
해 질 무렵 숙소 굴뚝이 보였다. 창문에는 붉은 천이 걸려 있었고, 문 앞에서 펭귄 한 마리가 눈을 밀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몸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설아가 손을 흔들었다.
“뒤뚱! 오늘 손님 셋이야.”
펭귄은 삽을 세우고 팔을 벌렸다.
“셋이면 수프가 모자라겠네. 설아는 돌아가도 되겠다.”
“내 수프 빼지 마. 나도 오늘 많이 걸었어.”
노을과 토리는 그제야 긴장을 풀고 웃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 노을은 하늘을 보았다. 얼음절벽 위로 옅은 빛의 줄이 보였지만, 그 끝은 어두운 구름 속에서 끊겨 있었다. 갈 길이 어디쯤인지 처음으로 눈에 보였다.
숙소 안에 들어서자 문 앞에 수프 김이 뿌옇게 떠 있었다. 차가운 바깥 공기와 따뜻한 수프 김이 문 앞에서 만났다. 뒤뚱은 젖은 신발을 놓을 자리를 가리켰다. 토리는 가방을 벗고 나서야 어깨가 얼마나 올라가 있었는지 알았다.
“손님 셋이라고 했는데 빛나는 손님은 수프를 먹니?” 뒤뚱이 물었다. 반짝이는 먹지 않지만 냄새는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뒤뚱은 작은 접시를 도로 선반에 놓고 등잔 가까운 자리를 비워 주었다. “그럼 냄새를 제일 먼저 받는 자리로 주지. 수프가 달아날 일은 없으니까 천천히 맡아.”

설아는 자기 몫의 그릇을 받아 들고 의자에 깊이 앉았다. 토리가 길잡이도 발이 피곤하냐고 묻자 설아는 당연하다고 했다. 다만 같은 길을 자주 걸어 어디서 쉬면 좋은지 먼저 알 뿐이었다. 뒤뚱은 그래서 오면 늘 제일 따뜻한 의자를 차지한다고 덧붙였다.
노을은 수프를 한 숟가락 먹고 배가 고팠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걷는 동안에는 추운 귀와 가방 끈만 신경 쓰였다. 토리는 빵을 나누다 부스러기를 자기 접시에 모았다. 반짝이는 노을의 목수건 가까이 쉬다가 창가의 천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동하기 전에 노을의 눈을 한번 보았다.
“아까 자리를 내줘서 고마워.” 반짝이가 말했다. 노을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추우면 말해. 그건 계속 말해도 돼.” 더 긴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마음이 멈췄다. 반짝이는 그 짧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창가에 앉았다. 수프 김이 두 친구 사이로 천천히 흩어졌다.
뒤뚱은 내일 볼 다섯 번째 문과 호숫가 길을 간단히 설명했다. 토리가 지금 지도를 펼쳐도 되느냐고 묻자 먼저 그릇을 다 먹으라고 했다. 종이가 식탁에 가득하면 빵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토리는 웃으며 마지막 한 입을 먹었다. 설아는 노을에게 오늘 멈춘 갈림길도 그려 두면 좋겠다고 말했다.
밤에는 창문 밖의 눈이 희미하게 빛났다. 노을은 등잔을 꺼도 바깥의 하얀색이 남는 것이 신기했다. 반짝이는 몽실에게 받은 방석 위에서 쉬었다. 토리는 돌집에 맡긴 돌 그림을 공책에 끼웠다. 세 친구는 각자 오늘 두고 온 것과 가져온 것을 확인한 뒤 처음으로 얼음협곡의 밤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