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은 둥근 몸도 날개도 없었다. 푸른 불꽃 가운데 두 눈이 뜨면 얼굴이 되었고, 웃을 때는 불빛 끝이 위로 휘었다.
그는 나무 두 그루 사이를 오가며 일행을 불렀다.
“이번에는 진짜야. 저쪽으로 돌아가면 돌문 뒤편에 나와. 내가 어젯밤에도 다녀왔어.”
몽실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번에도 진짜라고 했어. 따라갔더니 네가 만든 나뭇잎 왕관만 잔뜩 있었잖아.”
“그건 보여 주려고—”
“나는 꽃비에게 해 지기 전에 돌아간다고 했어. 네 왕관을 보느라 늦었고, 혼났어.”
초롱의 불빛이 조금 작아졌다. 노을은 그를 처음 만났지만 몽실의 화가 오늘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초롱은 노을과 토리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처음 보는 친구들은 자기 이야기를 아직 모르니 조금 더 쉽게 따라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눈이었다. 노을은 그 기대가 자신 쪽으로 옮겨 오는 것이 불편했다. 몽실이 왜 멈췄는지 듣기도 전에 새 친구의 편을 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너희는 내 왕관을 못 봤잖아. 잎을 그냥 얹은 게 아니라 바람이 불면 움직이게 만들었어.” 초롱이 말했다. 토리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몽실은 왕관의 모양을 몰라서 화난 것이 아니었다. 토리는 질문하려던 입을 다물고 지도장을 가슴에 붙였다.
몽실은 낮은 돌에서 내려와 초롱과 같은 방향을 보았다. “나는 네가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다는 걸 몰랐어. 길이 바뀌어서 돌아가야 한다고 했잖아. 그래서 빨리 따라가려고 쉬지도 않았고.” 초롱은 길이 아주 조금만 달랐다고 대답하려다가 몽실의 뒷발을 보고 말끝을 흐렸다.
꽃비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 귀를 곧게 세웠다. 그날 몽실이 늦게 돌아왔을 때 어디서 시간을 보냈는지만 물었다고 했다. 초롱의 집이라는 말을 듣고 놀다가 늦은 것으로 생각했다. 몽실은 둘의 대화를 듣다가 자기가 지금 다시 설명하고 싶었던 것은 그 부분이라고 말했다.
“내가 잘못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어. 네가 계속 이쪽이 맞다고 했으니까. 나중에 보니 너는 내가 어디로 가려는지 알면서 다른 곳부터 보여 준 거잖아.” 몽실의 목소리는 크게 높아지지 않았지만 끊어지지 않았다. 초롱의 푸른 끝이 나뭇잎 뒤로 조금 접혔다.
하늘하늘은 두 친구 사이를 날지 않고 꽃비 어깨에 앉았다. 노을은 이 숲에 처음 왔으니 모르는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처음 보는 푸른 불빛은 재미있어 보였고 장식 이야기도 궁금했다. 그 마음과 몽실이 화날 만하다는 생각은 함께 있었다.
토리는 물이 올라오는 뒤쪽을 한번 보았다. 계속 서 있기만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빨리 움직이고 싶다고 아무 길이나 정할 수는 없었다. 꽃비가 초롱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구 말이 더 듣기 좋은지가 아니라 문으로 가는 길을 확인할 방법이었다.
꽃비가 물었다.
“길을 안다는 말을 확인할 수 있는 게 있니? 우리가 다 따라가서 알아보는 방법 말고.”
초롱은 잠시 생각했다.
“돌문 뒤에 반달 모양 손잡이가 있어. 옆 돌에는 새가 그려져 있고. 날개 끝이 세 갈래야.”
둥글의 공책을 들고 있던 토리가 고개를 들었다. 새벽새 그림과 닮은 설명이었다.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것만으로 길이 안전한지는 모르잖아요.”
꽃비는 일행이 서 있는 높은 지대에 표시를 남겼다. 초롱에게는 다음 나무까지만 안내해 달라고 했다. 거기에서 길이 보이면 다시 다음 구간을 정하기로 했다.
초롱은 조금 불만스러운 듯 흔들렸다.
“아주 가까워. 그냥 한 번에 가면 되는데.”
몽실이 대답했다.
“나는 한 번에 믿기 싫어. 네가 그걸 기다려 줘야 따라갈 수 있어.”
초롱은 더 말하지 않았다.
초롱은 앞쪽 나무와 몽실 사이를 한 번 오갔다. 나뭇잎 뒤로 사라졌다가 환하게 나타나는 평소 장난을 하려던 모양이었다. 몽실이 움직이지 않자 불빛의 꼬리가 천천히 낮아졌다.
노을은 몽실 옆에서 기다렸다. 초롱이 정말 길을 안다면 빨리 따라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몽실이 부두에서부터 함께 걸어온 시간을 모르는 척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먼저 가서 보고 오면 되지 않을까?” 토리가 작게 말하자 몽실이 귀를 돌렸다. “그러면 우리는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 돌아오지 않으면 또 누가 찾으러 가야 하고.”
토리는 앞선 나무와 뒤의 물길을 번갈아 보았다. 혼자 잠깐 다녀오는 일이 친구 모두의 다음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는 꽃비가 표시를 남기는 동안 지도를 다시 접었다.
초롱이 꽃비에게 물었다. “내가 거짓말을 안 해도 계속 확인할 거야?” 꽃비는 매듭을 마저 묶고 대답했다. “오늘 처음 걷는 길이니까 바닥은 확인할 거야. 네 설명을 듣는 것과 우리 발이 갈 곳을 보는 건 함께 해야지.”
초롱은 잠깐 몸을 둥글게 모았다. 모두가 자신만 시험한다고 생각했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그는 이번에는 나무 뒤로 숨지 않고, 다음에 서 있을 자리를 먼저 가리켰다.
첫 구간은 마른 나무뿌리 위였다. 다음은 낮은 흙 둔덕이었다. 꽃비가 막대로 바닥을 확인하고, 하늘하늘이 위쪽에서 꺼진 곳을 살폈다. 초롱은 자꾸 앞서가다가 돌아왔다.

첫 나무에 도착하자 초롱은 가지 위에서 빛을 흔들었다. 토리가 여기서 어느 방향이냐고 물었을 때 초롱은 바로 저쪽이라고 했다. 나뭇가지가 여러 개 겹쳐 있어 어느 쪽인지 알기 어려웠다. 꽃비는 작은 돌이 두 개 놓인 방향인지, 굽은 나무가 있는 방향인지 나누어 물었다.
“굽은 나무. 저 아래로 돌아가면 흙이 높아.” 초롱이 대답했다. 노을은 그제야 다음에 발을 놓을 곳을 찾았다. 초롱은 자신이 떠서 움직일 때는 가지를 그대로 넘지만 아이들은 아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자꾸 잊었다. 설명이 길어지자 불빛이 조급하게 흔들렸다.
몽실은 두 번째 구간의 시작에서 잠깐 앉았다. 초롱이 조금만 더 오면 쉴 곳이 있다고 하자 몽실은 여기서 쉬겠다고 답했다. “내가 쉬려는 건 자리가 예뻐서가 아니야. 지금 발이 피곤해서야.” 초롱은 준비해 둔 다른 말을 삼키고 나무껍질 가까이 머물렀다.
노을은 반짝이의 천이 젖지 않았는지 보고 자기 물병을 꺼냈다. 반짝이는 별등에도 길을 잘 아는 별이 있었는데, 따라가다 보면 앞에서 갑자기 기다리고 있곤 했다고 말했다. 노을이 그 별도 빨랐느냐고 묻자 반짝이는 길을 아는 쪽에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을 것 같다고 했다.

토리는 앞의 둔덕에 서서 초롱이 가리킨 두 나무를 그렸다. 길을 그리는 동안 장식 같은 것이 한 번 반짝였지만 잎에 맺힌 물일 수도 있었다. 하늘하늘은 바람이 도는 방향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높은 가지 쪽에서는 마른 길이 이어졌지만 곧장 가면 아이들이 밟을 자리가 좁아졌다.
꽃비가 돌아갈 때 알아볼 수 있도록 작은 표식을 묶었다. 초롱은 자기가 다 기억한다고 했지만 꽃비는 초롱이 다른 일을 하러 가도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초롱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서운한 듯했으나 곧 자기 집 쪽을 보았다. 늘 길을 물어보러 오는 손님들이 떠나는 방향이었다.
다시 걷기 시작하자 초롱은 평소보다 낮게 날았다. 잠깐씩 뒤를 돌아보며 모두가 같은 곳에 있는지 살폈다. 노을은 잘 따라가고 있다고 말해 주려다가 앞쪽 나무에 매달린 가느다란 줄을 보았다. 그 줄에 작은 잎과 반짝이는 물방울들이 촘촘히 이어져 있었다.
세 번째 나무 앞에서 토리가 멈췄다.
나뭇가지에 작고 반짝이는 장식들이 매달려 있었다. 돌문은 보이지 않았다.
몽실의 얼굴이 굳었다.
“또 여기야?”
초롱이 급히 말했다.
“문으로 가는 길도 맞아. 조금만 더 가면 돼. 이건 그냥 지나가면서 보라고—”
“그럼 먼저 말했어야지!”
몽실의 목소리가 커졌다. 노을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초롱은 사실과 장난을 섞어도 결과만 맞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꽃비가 모두를 멈춰 세웠다.
초롱은 장식 뒤로 몸을 숨겼다. 푸른빛만 나뭇잎 사이에서 비쳤다.

“누가 내 집에 오면 다 길을 물어봐. 대답해 주면 바로 가 버려. 조금만 돌아오면 같이 구경할 시간이 생기니까.”
몽실은 여전히 화난 목소리였다.
“같이 있어 달라고 하면 되잖아.”
“싫다고 할 수도 있잖아.”
그 말 뒤에는 바람 소리만 남았다.
노을은 나뭇잎 장식을 보았다. 정교하게 엮은 것들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마음은 알 것 같았다. 그렇지만 몽실의 약속을 대신 정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문을 찾아야 해. 구경은 우리가 돌아온 뒤에, 보고 싶은 사람이 남아서 하면 좋겠어. 길을 알려 주는 값으로 약속하지는 않을게.”
초롱은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작은 불빛이 장식 밑에서 나왔다.
초롱은 잎으로 엮은 고리 하나를 건드렸다. 불빛이 닿자 고리 안쪽의 물방울이 반짝였다. 노을은 예쁘다고 말할 뻔했지만, 그 말로 몽실의 화난 얼굴을 덮어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지난번에 내가 늦어서 혼났다는 말을 너는 오늘 처음 들은 거야?” 몽실이 물었다. 초롱은 눈을 내렸다. “그다음 날 네가 안 왔어. 내가 찾아가면 또 화낼 것 같아서 안 갔고.”
“나는 네가 내가 왜 안 오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줄 알았어. 꽃비한테 설명할 때 나 혼자 거짓말한 것 같았거든.” 몽실의 목소리는 전보다 작았지만, 초롱은 이번에도 나뭇잎 뒤로 숨지 않았다.
꽃비가 몽실 옆에 앉았다. “그날은 늦었다는 말부터 했지. 어디에 있었는지 끝까지 듣지 못한 건 돌아가서 나랑 이야기하자.” 몽실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초롱을 보았다. 한 사람이 사과했다고 다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까지 없어지지는 않았다.
초롱은 장식 고리에서 물러났다. “오늘은 네가 돌아가야 할 때 붙잡지 않을게. 그리고 길이 갈라지는 데서는 내가 고른 쪽만 보여 주지 않고 둘 다 말할게.”
노을은 가방 끈을 고쳐 멨다. 지금 함께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말은 나왔다. 몽실은 웃지 않았지만 꽃비가 일어설 때 옆으로 한 걸음 비켜 주었다. 초롱이 길을 설명할 자리가 생겼다.
“돌문까지는 여기서 세 구간이 더 있어. 두 번째에 진흙이 있고, 오른쪽은 막혔어. 왼쪽으로 가야 해.”
꽃비는 그 설명을 토리에게 적어 달라고 했다. 초롱이 먼저 말하고, 모두가 확인하며 걸었다.
이번에는 초롱이 갈라지는 길 앞에서 먼저 멈췄다. 오른쪽에는 납작한 돌이 있었고 왼쪽에는 뿌리가 낮게 휘어 있었다. 오른쪽이 더 편해 보였지만 그 뒤의 흙이 물에 씻겨 나갔다고 설명했다. 꽃비가 멀리서 바닥을 확인하자 초롱은 기다렸다. 앞서가서 보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토리는 오른쪽 길을 짧게 그리고 끝에 막힘 표시를 했다. 초롱이 왜 가지 않을 길까지 그리느냐고 물었다. “돌아올 때 다시 보면 저쪽이 좋아 보일 수 있잖아. 그때 왜 안 갔는지 기억하려고.” 토리는 말을 하며 자신도 보기 좋은 선을 따라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두 번째 구간에서는 진흙을 피하려고 큰 걸음을 내디딜 필요가 없었다. 꽃비가 마른 가장자리를 확인하고 작은 돌 몇 개를 옮겨 낮은 발판을 만들었다. 몽실은 한꺼번에 뛰지 않고 두 번 나누어 건넜다. 초롱은 가장자리에 비켜서서 발판이 잘 보이게 했다.
“여기에서 비추면 돼? 가까이 가면 눈부실까?” 초롱이 물었다. 몽실은 지금 정도면 된다고 대답했다. 둘 사이의 말은 짧았지만 이번에는 무엇을 위해 빛을 움직이는지 서로 알고 있었다. 노을은 고맙다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 차례에 같은 발판을 밟았다.
세 번째 구간에 이르자 나무 사이로 돌벽의 뒷면이 보였다. 벽 아래에는 마른 낙엽이 모여 있었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초롱은 문이 저쪽에 있다고 말한 뒤, 자신이 마지막으로 왔던 때와 지금의 차이를 살폈다. 어젯밤보다 잎이 많이 쌓여 있었다.
꽃비는 문 앞을 확인하고 낙엽을 한쪽으로 모았다. 하늘하늘이 반달 손잡이 위의 잎을 날개 바람으로 조금 밀었지만 다 떨어지지는 않았다. 토리가 긴 가지로 잎만 조심스럽게 걷었다. 초롱은 손잡이가 나타나는 동안 몽실을 보지 않고 벽을 비췄다. 맞았다는 칭찬을 먼저 요구하지 않았다.
노을은 토리의 공책을 펼쳐 새벽새 그림을 찾았다. 돌에 새겨진 날개 끝과 나란히 비교할 수 있었다. 오래된 그림 속 선이 바로 눈앞의 돌에도 남아 있었다. 반짝이는 천을 조금 접고 뒤에서 다가왔다. 문이 열리면 무엇이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의 말소리가 낮아졌다.
마침내 돌문 뒤편에 도착했다. 반달 손잡이와 새 그림이 실제로 있었다. 문 앞의 흙도 단단했다.
몽실은 초롱에게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장식이 예쁘다는 말까지 억지로 보태지는 않았다.
초롱도 웃으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꽃비가 문을 열자 오래 갇힌 공기가 흘러나왔다. 벽에 달린 작은 창 안에서 붉은 표시가 희미하게 빛났다.

반짝이가 갑자기 뒤로 물러났다.
노을은 그 움직임을 보았다. 추운 곳도 아니었고, 안개가 닿지도 않았다.
“반짝이, 저걸 알아?”
반짝이는 붉은 창을 보며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