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아는 친구는 나비였다.
분홍 날개 끝에 흰 점이 있는 하늘하늘은 꽃비의 어깨에 잠깐 앉았다가 다시 날았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지만, 사람이 말을 마치기 전에 다른 곳으로 가 버리는 법은 없었다.
“어제까지는 북쪽 꽃향기를 따라가면 됐어. 오늘 아침에는 향기가 끊겼어. 그래서 너희를 곧장 데려가겠다는 약속은 못 해.”
토리는 지도에 북쪽 화살표를 그리다 멈췄다.
“냄새로 길을 찾으면 바람이 바뀔 때는 어떻게 해?”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도 같이 봐. 해가 드는 방향, 나무껍질, 물소리도 보고. 코 하나만 믿고 다니지는 않아.”
하늘하늘은 토리의 모자 위에 잠깐 앉았다.

“너도 종이만 보고 걷지는 않지?”
토리는 앞을 안 보고 걸어 나뭇가지에 두 번 걸렸던 일을 말하지 않았다.
하늘하늘은 모자 가장자리에서 날개를 천천히 폈다. 토리는 눈만 위로 올렸지만 나비가 보이지 않았다. “거기 있으면 내 지도를 같이 볼 수 있어?” “종이가 아니라 네가 고개 돌리는 걸 보고 있어.” 하늘하늘이 대답했다.
노을은 숲 입구에서 눈을 감고 냄새를 맡았다. 달콤한 냄새와 축축한 냄새가 한꺼번에 들어와 북쪽이 어느 쪽인지 더 모르겠어졌다. 하늘하늘은 노을이 감은 눈을 뜰 때까지 기다렸다.
“너한테는 다 꽃 냄새일 수도 있어. 나도 네 빵은 전부 비슷한 냄새로 느껴지거든.”
“그건 많이 다른데. 아침에 구운 빵하고 저녁에 데운 빵도 달라.” 노을이 곧장 대답하자 토리가 웃었다. “네가 빵집 길잡이를 하면 되겠네. 나는 문 앞에서부터 맞힐 자신은 없고.”
몽실은 마른 잎 아래 흙을 앞발로 살짝 밀었다. 꽃비는 장갑을 끼며 모두의 말을 듣고 있었다. 같은 입구에 서 있어도 나비는 향기를, 토끼는 발을 놓을 자리를, 아이들은 지도와 나무 모양을 보고 있었다.
하늘하늘이 모자에서 날아올랐다. “내가 멈추면 모르는 게 생겼다는 뜻일 수도 있어. 그때는 너희 눈에 보이는 것도 말해 줘. 모자 위에서는 네 연필 끝까지는 안 보이니까.” 토리는 이번에는 지도장을 조금 낮춰 들었다.
꽃비와 아이들, 몽실은 좁은 숲길로 들어갔다. 반짝이는 해루가 준 천을 몸 앞에 느슨하게 펼쳤다. 빛이 너무 멀리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숲 안은 정원보다 조용했다. 떨어지는 꽃잎도 적었다. 어떤 나무는 뿌리 부근만 지나치게 푸르고, 어떤 나무는 가지 끝이 말라 있었다.
정원에서는 꽃들이 낮은 곳에 모여 있었지만 숲에서는 머리 위에서도 향기가 내려왔다. 노을은 꽃이 보이지 않는데 냄새가 나는 것이 이상했다. 하늘하늘은 높은 가지 사이에 핀 작은 꽃들을 가리켰다. 여우가 지나가며 놓치는 자리가 나비에게는 큰 식탁이었다.
“너는 우리가 걷는 길을 따라 안 가도 되잖아. 나무 위로 넘어가면 금방 도착할 수 있지 않아?” 토리가 물었다. 하늘하늘은 넓은 잎 뒤로 날았다가 곧 돌아왔다. “나는 저쪽에 갈 수 있어도 너희가 지날 땅은 여기서 안 보여. 오늘은 내 목적지보다 우리 길을 찾는 중이야.”
몽실은 낮은 뿌리 사이에서 잎사귀를 골라 밟았다. 꽃비가 토끼의 발을 보려다 하늘하늘이 가리킨 나무껍질 쪽으로 눈을 옮겼다. 햇빛을 받은 면은 거칠게 말라 있었고 그늘 쪽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다. 노을은 같은 나무에서도 손으로 만질 때 느낌이 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토리는 지도에서 숲을 초록색 한 덩어리로 칠했던 것이 떠올랐다. 여기에는 낮은 풀밭과 높은 가지, 물에 잠긴 뿌리와 마른 흙이 따로 있었다. “종이에는 다 그릴 수가 없겠네.” 토리가 중얼거리자 하늘하늘이 모자 위를 한 번 돌았다. “그러니까 종이랑 네 눈이 같이 다니는 거지.”

반짝이는 해루가 준 천 끝을 고쳐 들었다. 천을 너무 가까이 대면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너무 멀리 두면 나뭇가지에 걸릴 것 같았다. 노을은 자기 어깨 쪽으로 오면 천 한쪽을 목수건에 살짝 얹을 수 있다고 했다. 반짝이는 잠깐 그렇게 쉬고 나서 다시 편한 높이로 떠올랐다.
멀리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노을은 개울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늘하늘은 높은 잎에서 떨어지는 물일 수도 있다고 했다. 몽실은 바닥의 작은 웅덩이를 보고 이쪽은 새로 젖었다고 말했다. 꽃비는 앞의 마른 자리에 모두를 잠깐 모았다. 같은 방향을 알려 주던 것들이 하나씩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늘하늘은 꽃비의 어깨에 내려앉지 않고 낮은 가지를 따라 날았다. 익숙한 꽃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초록 잎만 남아 있었다. 노을은 나비의 움직임이 처음보다 조심스러워진 것을 보았다. 길잡이가 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숲이 그대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늘하늘은 같은 자리로 세 번 돌아왔다.
토리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자꾸 되돌아와? 길을 잃은 거야?”
“길이 달라졌어. 내가 기억하는 꽃이 여기서 피어야 하는데 안 폈어.”
“그럼 지도에 그려진 이쪽으로 가면 안 돼?”
꽃비가 지도를 받았다. 그 길은 옛 정원 수로를 따라 이어져 있었다. 지금도 가려면 갈 수 있어 보였다. 다만 입구에서 물이 너무 깊어졌다.
몽실이 물가의 흙을 살폈다.
“발자국이 없어. 어제 비가 온 것도 아닌데.”
하늘하늘은 물 위로 낮게 날았다가 돌아왔다.
“물이 계속 새로 올라와. 누가 지나간 흔적이 금방 지워질 것 같아.”
노을은 배낭을 내려놓았다. 계속 걷는 것만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아니라는 말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발끝의 물이 정말로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멈춰야겠어. 우리가 건너는 동안 더 깊어지면 돌아오기 어려워.”
토리는 입을 다물었다. 자기가 아는 지도 쪽으로 가지 않자 조금 서운했다. 하지만 지도에는 무릎 높이의 물이 그려져 있지 않았다.
하늘하늘은 물 위로 향하던 몸을 돌려 토리 앞의 나뭇잎에 앉았다. 계속 날 때보다 날개가 작아 보였다. 토리는 나비도 길을 고르느라 힘이 들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생각했다.
“내가 길을 잃었냐고 물었을 때 화났어? 길잡이가 같은 데를 세 번 오면 틀린 것 같아서 그랬어.”
“조금. 하지만 나도 처음에는 꽃이 안 핀 걸 인정하기 싫었어. 어제 맡은 냄새가 아직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한 번 더 돌아보면 내가 아는 숲으로 돌아올 것 같았어.”
토리는 젖은 수로 옆에 연필 끝을 대었다. “이 선을 지우면 내가 틀렸던 자리가 없어지니까 좋을 줄 알았는데, 그러면 네가 왜 돌아왔는지도 없어지네.” 그는 선을 남긴 채 물이 올라온 날을 적었다.
꽃비가 낮은 가지를 들어 모두가 마른 쪽으로 옮겨 설 수 있게 했다. 몽실은 나무 수레까지 돌아갈 힘이 남아 있다고 말하고 먼저 높은 뿌리를 찾았다. 멀리 가지 않은 덕분에 돌아갈 자리도 아직 가까이 있었다.
노을은 하늘하늘이 앉을 수 있도록 배낭 끈을 느슨하게 펼쳤다. “냄새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꼭 날고 있지는 않아도 돼. 간식은 우리가 찾아 줄 수 있어.” 하늘하늘은 과일이 들어 있는 주머니 쪽으로 날개를 기울였다.
일행은 높은 뿌리 옆에 앉아 간식을 먹었다. 하늘하늘은 과일 껍질에 맺힌 즙을 조금 마셨다. 몽실은 풀잎이 따로 있는지 확인했다. 노을은 가방에서 빵을 꺼내다 반짝이를 보고 웃었다.
“너한테 또 줄 뻔했네.”
“냄새는 맡아도 되잖아.”
반짝이가 빵 가까이 왔다. 잠깐 바닷가에서 처음 만난 날처럼 편안해졌다.
꽃비가 과일을 나누자 몽실은 자기 몫을 들고 마른 뿌리 안쪽에 앉았다. 노을은 그 자리가 편해 보여 따라 앉으려다가 가방이 뒤로 걸렸다. 몽실은 몸을 조금 돌리면 된다고 했지만 노을의 가방은 토끼의 몸만큼 넓었다. 결국 노을은 가방을 옆에 놓고 나서야 앉을 수 있었다.

“같은 자리에 앉는 것도 이렇게 다르네.” 노을이 말했다. 하늘하늘은 과일 껍질 위에서 더 작은 자리를 골랐다. “너희는 내가 어디에 앉았는지도 못 보고 과일을 들 때가 있어.” 토리는 자기 손 가까이에 나비가 없는지 확인한 뒤 과일을 들었다. 오늘은 작은 친구들이 먼저 앉은 자리부터 보게 되었다.
꽃비는 숲에 오기 전 마련한 길 계획을 다시 폈다. 곧장 문으로 갔다가 점심 전에 돌아오려던 일정이었다. 아직 문을 보지도 못했는데 간식을 먹고 있었다. “계획을 새로 써야겠네.” 꽃비가 말하자 몽실은 자기 발이 쉬는 시간도 꼭 넣어 달라고 했다. 꽃비는 이번에는 처음 줄부터 그 시간을 적었다.
토리는 하늘하늘에게 처음 길을 배운 날도 지금처럼 냄새가 많았느냐고 물었다. 하늘하늘은 처음에는 가장 강한 향기만 따라갔다고 했다. “그럼 꼭 맛있는 꽃이 나왔어?” 노을이 묻자 나비가 날개를 접었다. “가끔은 꽃비가 과일 껍질을 모아 둔 바구니가 나왔지. 멀리서 맡으면 아주 근사했어.”
노을은 웃다가 자기도 빵 냄새를 따라갔는데 이미 문을 닫은 가게 앞이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냄새는 사람이 떠난 뒤에도 조금 남았다. 토리는 그렇다면 향기를 지도에 적을 때도 언제 맡았는지가 필요하겠다고 했다. 하늘하늘은 자신이 종이에 적지 않을 뿐 시간까지 잊고 다니는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반짝이는 빵에서 떨어지는 작은 가루를 보았다. 햇빛을 받아 잠깐 빛나다가 금세 땅에 내려앉았다. 별등 조각을 생각나게 하지는 않는 편안한 반짝임이었다. 노을은 반짝이에게 오늘 아침보다 표정이 좋아 보인다고 말하려다가, 그냥 빵 봉지를 좀 더 가까이 놓았다.
바람이 잦아들자 높은 잎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또렷해졌다. 토리는 연필을 잠깐 내려놓았다. 몽실도 과일을 다 먹고 귀를 들었다. 모두가 같은 소리를 듣는 동안 하늘하늘만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주 약한 냄새 하나가 달콤한 과일 향 사이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 하늘하늘이 날개를 멈췄다.
“이 냄새는 있어.”
아주 옅은 차가운 풀 냄새였다. 숲 안쪽에서가 아니라 물을 따라 옆으로 흘러왔다. 하늘하늘은 멀리 가지 않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나무 사이만 날았다. 일행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갔다.
물은 커다란 뿌리 더미 아래에서 나오고 있었다. 뿌리 사이에 둥근 돌문이 반쯤 보였다. 문 안쪽에는 네 번째 문을 뜻하는 꽃잎 문양이 있었다.
하지만 바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뿌리 하나가 손잡이를 감고 있었고, 문 앞 흙은 물에 풀려 발이 빠졌다.
꽃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뿌리를 전부 자르면 위쪽 나무가 넘어질 수도 있어. 마른 쪽에서 들어가는 옛 점검길을 찾아야 해.”
노을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뿌리만 보았을 때는 문을 가로막은 굵은 줄처럼 보였는데, 위쪽에는 가지와 잎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불면 잎 전체가 움직였다. 저 나무를 떠받치는 부분을 문 손잡이처럼 다룰 수는 없었다.
“문이 먼저 있었을까, 나무가 먼저 있었을까?” 토리가 물었다. 꽃비는 오래된 길 기록을 더 봐야 알겠지만 둘 다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다고 했다. 평소에는 서로를 막지 않았다. 물이 고이고 뿌리가 한쪽으로 자라면서 그 사이의 여유가 줄어든 것 같았다.

몽실은 마른 흙과 젖은 흙이 만나는 선을 가리켰다. 노을은 가까이 가 보려다가 꽃비가 서 있는 곳에서 멈췄다. 긴 막대 끝이 젖은 땅에 닿자 쉽게 들어갔다. 겉의 잎이 흙을 덮고 있어 눈으로는 깊이를 알기 어려웠다. 하늘하늘도 물 위에 비친 나무 때문에 아래가 단단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나는 날 수 있어서 저 틈까지 갈 수는 있어. 그래도 너희가 따라오라고 말할 길은 아니야.” 하늘하늘이 말했다. 반짝이는 천 뒤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날 수 있다는 것이 문을 혼자 고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두 작은 친구는 꽃비가 볼 수 있는 가지 가까이에 머물렀다.
토리는 지도를 접은 선을 조심스럽게 폈다. 물길 그림 옆의 아주 가는 표시가 종이 주름에 가려져 있었다. 노을은 자기 쪽 모서리를 잡아 주었다. 꽃비는 오래된 점검길이 있다면 이 나무의 바깥쪽을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방향부터 비교할 수 있었다.
몽실은 다시 돌아가야 할 때를 생각해 왔던 길의 마른 뿌리를 기억해 두었다. 오늘은 익숙한 숲에 왔지만 아는 길과 모르는 길이 섞여 있었다. 노을이 힘은 괜찮으냐고 묻자 몽실은 아직 괜찮고, 이제는 새 길을 찾는 동안 서 있기보다 앉아 기다리고 싶다고 답했다.
꽃비가 낮은 마른 돌을 찾아 주었다. 노을과 토리는 그 옆에 지도를 펼쳤다. 물방울 하나가 종이 위로 떨어져 작은 점을 만들었다. 토리는 천으로 살짝 눌러 닦고 다시 가는 선을 찾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 사이로 푸른빛이 스친 것은 그때였다.
토리는 지도에서 그 길을 찾았다. 아주 가는 점선이 수로 뒤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때 숲 오른편에서 푸른 불빛이 깜빡였다.
“점검길? 내가 알아.”
불빛이 웃는 듯 길게 늘어났다.
몽실의 접힌 귀가 조금 들렸다.
“초롱, 이번에도 장난이면 안 따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