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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질주 — 여섯 섬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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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의 안전한 정원

꽃잎숲에 도착한 세 친구를 정원지기 꽃비가 따뜻하게 맞는다. 하지만 다치지 말라는 말과 울타리를 하나씩 지날수록, 정원에서 마음 놓고 움직일 수 있는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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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숲의 부두에는 분홍 꽃잎이 쌓여 있었다. 눈처럼 내려앉았지만 발을 디디면 달콤한 풀 냄새가 났다. 노을은 처음으로 여행 가방 위에 바닷소금 대신 꽃가루가 붙는 것을 보았다.

꽃관을 쓴 분홍 여우가 큰 바구니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노을, 토리, 그리고 반짝이 맞지? 나는 꽃비야. 새별에게 연락받았어. 자는 곳도 준비했으니 무거운 가방부터 줘.”

꽃비는 숲 입구의 공동 정원을 돌보는 사람이었다. 로코에게는 배에 실을 식량을 챙겨 주었고,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과일차를 내주었다. 손이 빠르고 목소리가 부드러워서 노을은 긴장이 조금 풀렸다.

과일차에서는 구운 사과와 잎을 비빈 듯한 냄새가 났다. 노을은 컵을 마시기 전에 반짝이 쪽으로 조금 기울였다. 꽃비는 별도 따뜻한 냄새를 좋아한다는 말을 새별에게 들었다고 했다. 반짝이는 아직 만나지 않은 친구에게 자기 이야기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노을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반짝이의 이야기
노을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반짝이의 이야기

“새별이 내가 지도를 그린다는 것도 말했어요?” 토리가 묻자 꽃비는 가방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가 젖지 않게 둘 자리가 필요하다고 했어. 책상은 창문 옆에 두었는데, 바람이 세면 안쪽으로 옮겨도 돼.” 토리는 아직 보지 않은 책상부터 마음에 들었다.

로코는 식량 바구니를 들어 무게를 확인했다. 꽃비는 배 위에서 쉽게 먹을 수 있도록 과일을 단단한 것과 먼저 먹을 것으로 나눠 넣었다. 노을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묻자 꽃비는 예전에 가장 예쁘게 익은 과일만 보냈다가 항해 중에 한꺼번에 물러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수프가 아니라 과일 수프를 먹을 뻔했지.” 로코가 말했다. 꽃비는 선장이 상자를 햇볕 아래 둔 것도 잊지 말라고 했다. 두 어른은 서로를 잠깐 보다가 웃었다. 노을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척척 맞추던 사이가 아니라 같은 실수를 오래 기억하는 친구들이라는 걸 알았다.

토리는 꽃비의 꽃관에 꽂힌 꽃 이름을 물었다. 꽃비는 같은 꽃처럼 보여도 피는 시간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아침부터 핀 작은 꽃과 오후에 막 열린 꽃이 섞여 있었다. “그럼 하루 종일 같은 꽃관은 아니네요.” 토리가 말하자 꽃비는 시든 꽃은 씨앗을 받을 곳에 따로 둔다고 했다.

노을은 이 정원의 모든 꽃을 꽃비가 혼자 심었느냐고 물었다. 꽃비는 그렇지 않다며 바구니 손잡이에 달린 이름표를 보여 주었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씨를 모으고 물을 주었다. 꽃비는 그 순서를 살피고 처음 오는 사람이 길을 찾도록 돕는 일을 맡았다. 그래서 손님이 오는 날에는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너무 일찍 일어난 것 같아요.” 노을이 작은 하품을 보며 말했다. 꽃비는 손님에게 하품을 보였다는 것이 민망한지 꽃관을 만졌다. “너희가 바다에서 흔들리며 왔는데 편하게 쉬게 해 주고 싶어서.” 노을은 잘 도착했다는 말을 다시 해 주었다. 컵을 다 마신 뒤 꽃비가 정원 쪽으로 앞장섰다.

정원에는 낮은 나무집들이 있었다. 그 사이마다 밧줄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팻말도 곳곳에 붙어 있었다.

토리가 연못 쪽으로 가자 꽃비가 불렀다.

“그쪽은 이슬 때문에 미끄러워. 이 길로 와.”

노을이 나무에 기대 가방을 내려놓으려 하자 다시 말했다.

“거긴 벌들이 쉬는 곳이야. 바구니 옆에 놓아 줄래?”

반짝이는 낮은 꽃 아래를 지나가다가 꽃비의 손에 길이 막혔다.

“가시가 있어서 그래. 다치면 안 되니까.”

모두를 위한 말이었다. 그런데 정원 한가운데에 도착했을 때, 세 친구는 자신들이 앉을 수 있는 곳이 작은 평상 하나뿐이라는 걸 알았다.

토리는 무릎 위에 가방을 얹고 앉았다. 평상에서 내려놓아도 되는지 물어보려다가, 그것까지 물으면 너무 어린애 같아 보일까 봐 끈만 만졌다. 노을도 발을 뻗었다가 화분이 가까운 것을 보고 다시 모았다.

꽃비는 과일차 세 잔을 내려놓으려다 반짝이를 보고 하나를 도로 들었다. “참, 냄새만 맡는다고 들었지. 네 자리에는 꽃을 놓을까?” 반짝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도 어떤 꽃 가까이에 앉아야 하는지 몰라 평상 위에서 둥둥 떠 있었다.

노을이 컵을 두 손으로 감싸며 물었다. “여기서는 어디를 걸어도 돼요? 안 되는 곳은 들었는데, 괜찮은 곳은 아직 모르겠어요.”

꽃비는 정원을 둘러보았다. 자신에게는 화분 사이의 빈틈마다 익숙한 길이 보였지만, 처음 온 아이들 앞에는 밧줄이 먼저 보이고 있었다. 꽃비는 평상에서 부엌까지 이어진 마른 돌을 하나씩 짚어 주었다.

“이 돌을 따라오면 돼. 저 큰 잎 옆에서 오른쪽으로 돌고.” “큰 잎이 세 개인데요.” 토리가 말하자 꽃비는 웃으며 앞치마 끝을 접었다. 매일 부르는 ‘그 잎’이라는 말이 손님에게는 아무 표시도 되지 않았다.

꽃비는 부엌 앞에 파란 바구니를 내놓았다. 토리가 이제는 찾을 수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평상 아래에서 바구니만 있으면 뭐든 찾을 수 있느냐는 듯 작은 코가 움직였다.

앉을 곳이 하나뿐인 꽃비의 정원
앉을 곳이 하나뿐인 꽃비의 정원

평상 아래에서 흰 토끼가 코를 내밀었다. 한쪽 귀만 접혀 있었다.

“너희도 여기 앉으래?”

꽃비가 웃었다.

“몽실아, 처음 온 손님이니까 길을 모르는 거잖니.”

몽실은 대답하지 않고 노을의 발 옆으로 나왔다.

오후에 로코는 배를 점검하러 부두로 돌아갔다. 꽃비는 그가 등대섬과 이곳을 오가는 동안 아이들이 머물 곳을 책임지기로 했다. 은솔을 통해 부모님께 보낼 도착 편지도 곧 배에 실렸다.

아이들의 방은 정원 안쪽 낮은 나무집에 있었다. 창문을 열면 바다 대신 잎사귀가 보였다. 토리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책상의 다리를 살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지도장을 내려놓았다. 노을은 가방을 놓은 뒤에도 몸이 배처럼 조금 흔들리는 기분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몽실은 문턱에 서서 손님들이 짐을 푸는 모습을 보았다. 토리가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자 낮은 의자 쪽으로 걸어왔다. “다들 처음 오면 저 창문을 열어. 밤에는 꽃 냄새가 더 진해서 잠이 안 온다고 닫기도 하고.” 노을은 몽실이 여기 온 손님들을 많이 만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 어느 방이 가장 좋아?” 노을이 물었다. 몽실은 이 방보다 바깥 평상 아래가 좋다고 했다. 낮에는 그늘이고 손님들의 발이 보여 누가 왔는지 알 수 있었다. 토리는 신발 모양으로 사람을 맞혀 본 일을 이야기했다. 몽실은 이곳에서는 흙 냄새가 달라서 신발을 보지 않아도 온실에 다녀왔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반짝이는 창문 고리 가까이에 앉았다. 꽃잎 하나가 바람을 타고 들어와 천 위에 놓였다. 노을이 떼어 주려 하자 반짝이는 잠깐 두고 보겠다고 했다. 바닷가에서는 몸에 붙은 것이 대부분 젖은 모래였다. 가벼운 꽃잎이 아프지 않게 머무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토리가 지도장을 펼치자 몽실은 그 안의 바다를 오래 보았다. 자기는 부두까지 가 본 적은 있지만 배를 타고 섬이 작아지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작아지면 집도 덜 중요해져?” 토리는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더 찾게 되던데. 창문 하나도 어디 있는지 보고 싶었어.”

노을은 몽실에게 가장 멀리 가 본 곳을 물으려다 꽃비가 문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꽃비는 물병과 작은 수건을 가져왔다. 몽실이 바깥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말하자 꽃비의 눈이 토끼의 뒷발로 잠깐 내려갔다. 몽실은 몸을 돌려 자기 발이 의자 밑에 가려지게 앉았다.

꽃비는 저녁까지 시간이 있으니 마당에서 쉬어도 된다고 했다. 노을은 가방에서 새별의 지도를 꺼냈다. 다음 길을 묻기에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이를 펼치자 꽃비가 들고 있던 수건을 조금 더 단단히 접는 것이 보였다. 노을은 먼저 차분하게 질문하기로 했다.

노을은 네 번째 문을 물었다.

꽃비의 손이 차 주전자 위에서 멈췄다.

“숲 안쪽에 있어. 지금은 길을 닫아 뒀어. 폭풍 뒤부터 뿌리가 이상하게 자랐거든.”

“상태를 보기만 하면 안 될까요? 새별이 그린 지도가 있어요.”

“오늘은 쉬자. 내일 아침에 내가 다녀올게.”

몽실이 평상에서 내려왔다.

“나도 갈래. 그쪽 길은 내가 매일 뛰던 데야.”

꽃비는 토끼의 접힌 귀를 쓰다듬었다.

“지난번에 발 다친 거 잊었어? 다 나았다고 바로 멀리 가면 안 돼.”

몽실은 고개를 빼서 손을 피했다.

몽실은 평상 아래로 들어가지 않고 정원 가장자리의 의자에 앉았다. 꽃비는 잠깐 따라가려다가 차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노을은 두 친구 사이의 짧은 거리가 방금까지보다 멀게 느껴졌다. 꽃비가 나쁜 말을 한 것은 아닌데 몽실의 귀가 더 내려가 있었다.

저녁 준비는 함께 하기로 했다. 토리는 식탁에 컵을 놓았고 노을은 씻은 채소를 바구니에서 옮겼다. 몽실은 잎을 골랐다. 먹을 수 있는 잎과 아직 너무 어린 잎을 구분하는 손길이 빨랐다. 노을이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몽실은 정원에서 꽃만 보고 사는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건 조금 더 기다리면 좋아져. 지금도 먹을 수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야.” 몽실이 잎 하나를 옆에 놓았다. 꽃비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을은 둘이 잎 이야기를 할 때는 같은 것을 보는 얼굴이 된다는 걸 보았다. 길 이야기를 할 때와 달랐다.

반짝이가 바구니 위로 지나가자 잎의 가는 줄이 비쳤다. 토리는 그 줄이 작은 길 같다고 말했다. 몽실은 가장 큰 줄기만 따라가면 잎 끝의 작은 곳들을 놓친다며 앞발로 여러 갈래를 가리켰다. 노을은 몽실이 숲길을 설명할 때도 저런 표정을 지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몽실이 알려 주는 잎 속의 작은 갈림길
몽실이 알려 주는 잎 속의 작은 갈림길

꽃비가 뜨거운 냄비를 옮기는 동안 모두가 자리를 비켰다. 몽실은 자신이 들 수 있는 접시를 하나 가져갔다. 꽃비가 접시까지 받으려 하자 몽실이 잠깐 멈췄다. 꽃비는 손을 거두고 식탁 왼쪽에 놓아 달라고 했다. 큰 말 없이 끝난 작은 순간이었지만 노을은 그 장면을 기억했다.

식탁에서는 로코가 언제 돌아오는지, 내일 날씨는 어떤지 이야기가 오갔다. 몽실도 음식 이름과 정원의 새싹 이야기는 잘했다. 그러나 노을이 낮에 어디를 걸었는지 묻자 숟가락만 움직였다. 토리가 지도의 여관 그림을 보여 주어 화제가 바뀌었지만 노을에게는 대답하지 못한 자리가 남았다.

저녁 그릇을 치운 뒤 꽃비는 마당의 물길을 살피러 나갔다. 몽실은 다른 친구들을 따라 평상에 가지 않았다. 노을은 창문 쪽으로 움직이는 흰 뒷모습을 보았다. 혼자 있고 싶은 것 같기도 했고, 누군가 알아봐 주길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 노을은 서두르지 않고 물컵을 씻은 뒤 같은 방으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은 뒤 노을은 몽실이 창밖을 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맞은편에는 작은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다. 특별히 높거나 멋지지도 않은 그루터기였다.

창밖 그루터기를 바라보는 몽실
창밖 그루터기를 바라보는 몽실

“저기 뭐가 있어?”

“내가 그려 둔 줄이 있어. 지난봄에 어디까지 뛸 수 있는지 표시했거든.”

“발은 아직 아파?”

“아니. 치료해 준 분도 천천히 뛰어도 된댔어. 꽃비는 그 말에서 천천히만 들었나 봐.”

몽실의 목소리는 장난스럽지 않았다.

몽실은 앞발로 창틀의 나뭇결을 쓸었다. 그루터기까지는 낮은 풀밭이 이어져 있었다. 노을 눈에는 금방 다녀올 거리였지만, 몽실은 창문을 나서는 대신 그루터기 위로 떨어지는 꽃잎만 세고 있었다.

“줄을 더 멀리 옮기고 싶은 거야?” 노을이 묻자 몽실은 고개를 저었다. “그날 어디까지 갔는지 보고 싶어. 넘어지기 전날이었는데, 다들 넘어진 날만 기억하거든. 나도 요즘은 그날부터 생각나.”

노을은 붉은 아치의 계단이 떠올랐다. 반짝이를 안고 앉아 있던 무릎의 떨림은 아직 기억났지만, 그전에 함께 놋쇠판을 맞춘 일도 분명히 있었다. 놀란 장면이 앞의 장면들을 모두 덮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도 무서웠던 일이 먼저 떠오를 때가 있어. 그런데 네가 얼마나 높이 뛰었는지는 못 봐서 모르겠어. 네가 보여 주고 싶으면, 나중에 그 줄부터 보여 줘.”

몽실은 접힌 귀를 한 번 털었다. “기록보다 낮아도 실망하면 안 돼. 지금은 그때보다 덜 뛸 수도 있거든.” “나는 네 지난봄 기록을 모른다니까.” 노을이 대답하자 몽실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부엌에서 꽃비가 그릇을 포개는 소리가 들렸다. 몽실은 그쪽을 돌아보았다가 다시 창밖을 보았다. 꽃비가 자신을 아끼는 것을 몰라서 답답한 것은 아니라는 얼굴이었다.

노을은 쉽게 편을 들 수 없었다. 꽃비가 낮에 위험한 곳을 알려 준 덕분에 젖은 길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다치지 말라는 말이 답답한 말이 될 수 있다는 게 어려웠다.

“꽃비한테 다시 말해 봤어?”

“말하면 걱정된대. 그러면 내가 더 말할 게 없어. 내가 안 다치겠다고 약속할 수도 없잖아.”

노을은 잠시 생각했다.

“그럼 내일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같이 정해 보면 어때? 무조건 괜찮다고 하기보다.”

몽실이 창틀에 앞발을 올렸다.

“네가 대신 허락받으러 가는 건 싫어.”

“네가 말할 때 같이 있을게.”

그때 정원 바깥 울타리가 삐걱거렸다. 나무뿌리 하나가 울타리 밑에서 천천히 솟고 있었다. 꽃비가 등불을 들고 뛰어나왔다.

반짝이가 창문 위로 떠올랐다. 뿌리 표면의 틈을 따라 아주 옅은 노란빛이 움직였다.

빛은 뿌리를 지나 숲 안쪽으로 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되밀려 돌아왔다.

울타리 아래에서 솟은 빛나는 뿌리
울타리 아래에서 솟은 빛나는 뿌리

노을은 그 움직임을 알아보았다. 정원 안의 팻말과 울타리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