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문을 여는 날, 둥글은 기록실의 큰 책을 아래층으로 옮겼다. 갈매기 할머니는 창가에서 붉은절벽의 신호를 기다렸다. 해루가 점검 목록을 읽었고 새별이 하나씩 확인했다.
유리 관의 갈라진 곳은 붙어 있었다. 통로를 막은 이물질도 없었다. 북쪽 계단의 안개는 바깥 틈으로 물러나 있었다.
준비 신호가 도착했다.
새별이 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
빛이 둥근 그릇으로 흘렀다. 예전처럼 가운데서 뭉치지 않고 바닷길과 붉은절벽 방향으로 뻗었다. 새로 붙인 유리 관은 노랗게 빛났고, 반대쪽의 가느다란 관도 조금씩 밝아졌다.
노을은 숨을 죽였다.
“이번에는 돌아가요.”
토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빛은 관 끝에 닿자 다시 밀려왔다. 가느다란 선이 점점 두꺼워졌고, 유리 그릇 안의 작은 눈금이 올라갔다.
해루가 말했다.
“여기서 멈춰요. 아까보다 뜨거워졌어요.”
새별이 문을 잠갔다. 짧은 시험이 끝났다.

누구도 소리 내어 기뻐하지 못했다. 이렇게 많이 고쳤는데도 빛이 끝까지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식탁 위에 놓인 무거운 돌 같았다.
불씨는 자기 공책을 펼쳤다. 어제 붙인 부분의 그림을 손가락으로 따라가다가 종이를 루온 쪽으로 밀었다. “제가 여기를 너무 두껍게 붙였을까요? 빛이 이 좁은 데를 못 지나간 거면 다시 할 수 있어요.”
루온은 바로 아니라고 달래지 않고 해루가 적은 눈금을 확인했다. “붙인 자리를 지날 때는 흐름이 이어졌어. 끝에 닿은 다음에 되돌아왔지. 네가 고친 것을 뜯기 전에 막힌 곳이 어디인지 더 봐야겠구나.”
해루도 공책을 들여다보았다. 이번에는 손잡이를 닫은 시각이 적혀 있었다. 지난번에는 실패했다고만 생각해서 아무것도 적지 못한 자리였다. “멈추기 전에 어디까지 갔는지는 알아요. 어제보다 조금 더 멀리 갔어요.”
노을은 찬물을 한 모금 마셨다. 다들 알아낸 것을 말하고 있었지만, 또 다른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는 오늘 고치면 반짝이 길도 보일 줄 알았어요. 기대해도 되는지부터 물어볼걸 그랬어요.”
반짝이가 노을 옆으로 내려왔다. “나도 그랬어. 너만 먼저 기뻐한 건 아니야.”
새별은 물컵을 식탁 가운데에서 옆으로 옮겼다. “오늘 확인한 것과 아직 모르는 것을 함께 보자. 다음에 어디를 살필지 정하기 전에, 우리 기대가 어느 부분에서 어긋났는지부터 알아야겠어.” 둥글이 큰 책을 가져올 자리가 생겼다.
둥글이 책의 그림을 펼쳤다. 여섯 섬을 한 바퀴 돈 선은 하늘의 별등 아래로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문을 잘못 고친 게 아닐 수도 있겠구나. 아래에서는 보낼 수 있는데, 위에서 받아 주지 못하는 거야.”
루온은 빈 컵 여섯 개를 원으로 놓고 실로 이어 보였다. 빛이 지나는 길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별등은 빛을 내보내고, 섬들은 그 빛으로 길을 밝혀. 그러고 나서 옅어진 빛을 다시 돌려보내지. 돌아갈 곳이 막히면 뒤에서 온 빛과 부딪혀 쌓일 거야.”
토리가 마지막 컵 앞에 손을 세웠다.
“그럼 여기 하나만 열면 다 끝나요?”
“아직은 아니야. 여기까지 오는 길도 군데군데 깨졌잖니. 압력이 빠질 곳을 마련하지 않고 위 문만 열면 약한 곳이 또 부서질 수 있어.”
루온은 실을 실제 빛처럼 흐르게 하지는 않았다. 컵 사이의 연결을 보여 주는 그림일 뿐이라고 먼저 말했다. 토리는 손으로 마지막 길을 막았다가 다시 열어 보았다. 종이 위에서는 한 번에 지울 수 있는 막힌 자리가 실제로는 여러 섬의 일과 이어져 있었다.
“이 컵은 바닷길이고, 이건 붉은절벽이죠?” 노을이 손을 옮겼다. 해루가 세 번째 컵 옆에 작은 등대 그림을 놓았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직접 확인했어. 나머지는 예전 기록으로 위치를 아는 거고.” 노을은 이름 없는 컵들에 꽃잎숲과 얼음협곡을 적어 놓자 조금 덜 멀게 느껴졌다.
토리는 제일 튼튼한 길로만 빛을 보내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새별은 길을 새로 잇거나 흐름을 바꾸는 일도 실제 관과 문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지도 위에서 선 하나를 더 긋는 동안 아래에서는 물이 흐르고 돌이 움직였다. 로코는 배도 가까워 보이는 항구에 곧장 갈 수 없는 날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 우리는 같은 질문을 섬마다 또 해야 하는 거네요.” 노을이 말했다. 둥글은 이번에는 앞섬에서 알아낸 것을 가지고 묻는다고 답했다. 첫 번째 문에서는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돌아오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가설이 생겼다. 틀릴 수 있는 설명이었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와 같지는 않았다.
반짝이는 마지막 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토리가 그 컵을 조금 옮기자 실이 팽팽해졌다. 반짝이는 그만 움직여 달라고 했다가, 모두가 자신을 보자 실이 끊어질 것 같아서라고 덧붙였다. 토리는 컵을 다시 놓았다. 노을은 작은 별의 목소리가 잠깐 딱딱해진 것을 기억했다.
루온은 여섯 컵을 한쪽으로 밀어 두었다. 이제 식탁에 앉은 친구들이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 설명을 확인하려면 기록도 더 필요하고, 다른 문에서 보는 모습도 필요하겠구나. 한 사람이 전부 들여다보려고 하면 늦어질 수 있어.” 새별이 배지 위로 손을 얹었다.
노을은 잔잔해진 물컵 표면을 보았다. 여행을 시작할 때는 등대에 가면 길을 아는 어른을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만난 어른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부분 앞에서는 같이 식탁에 앉았다. 노을은 자기 가방 안의 지도가 아직 다 펴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을은 바닷길, 붉은 아치, 북쪽 계단을 차례로 떠올렸다. 돌아가며 도와준 얼굴도 하나씩 떠올랐다.
“나머지 문도 찾아야겠네요.”
“꽃잎숲에 네 번째, 얼음협곡에 다섯 번째 문이 있어.” 새별이 말했다. “마지막은 하늘 관리소에 있고.”
그는 배지 옆의 작은 통행증을 꺼냈다. 왕실 문서고로 갈 수 있는 별지기의 표식이었다.
“나는 옛 점검 보고를 확인하러 가겠어. 왜 위에서 빛을 받지 못하는지 알아봐야 해. 그믐이 왕실 연락소까지 길을 안내하기로 했어.”
노을은 새별이 갑자기 멀어지는 것 같아 망토 끝을 보았다.
“그럼 우리는요?”
“꽃잎숲까지는 로코 선장이 함께 가고, 도착하면 꽃비가 돌봐 줄 거야. 부모님께도 다음 숙소를 알려 드릴 거고. 얼음협곡으로 넘어가기 전에 내가 소식을 보낼게.”
새별은 노을과 토리를 차례로 보았다.
“너희가 꼭 끝까지 가야 하는 건 아니야. 이건 관리소와 어른들이 책임지고 고칠 일이기도 해.”
반짝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가 보고 싶어. 어디가 잘못됐는지… 내가 아는 게 더 있을 수도 있으니까.”
노을도 가고 싶었다. 다만 전처럼 그 말만 크게 외치지는 않았다.
“그럼 꽃잎숲까지 가서 다시 결정할게요.”
토리가 지도 아래에 새 숙소 이름을 썼다.
노을은 새별에게 꽃비의 집이 항구에서 얼마나 먼지 물었다. 꽃잎숲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잠잘 방도 식탁도 상상되지 않았다. 새별은 작은 정원이 있는 집이라고 설명하고 로코와 만날 장소도 지도에 표시했다.
“새별이 오지 않으면 우리는 어디로 편지를 보내요? 그냥 다음 섬에서 기다리면 되는 거예요?”
“숲의 우편함으로 소식을 보낼게. 내가 약속한 때까지 소식이 없으면 꽃비와 로코에게 말하고 그곳에서 기다려 줘. 나를 찾아서 모르는 길로 나오지는 말고.” 새별은 자신의 연락소 이름을 숙소 밑에 적었다.
토리는 글씨를 한 번 읽어 본 뒤 공책에도 옮겼다. 지도와 공책을 같은 주머니에 넣으려다가 하나는 노을에게 건넸다. “둘 다 내 가방에 넣으면 가방이 젖을 때 같이 젖을 테니까.”
새별이 웃으며 가방을 닫자 반짝이가 망토 끝 가까이 날아갔다. “모르는 게 더 생각나면, 새별이 없어도 누구한테 말해도 돼?”
“그럼. 곁에 있는 친구에게 말하고, 중요한 건 적어서 보내 주렴. 네 말을 나만 들어야 하는 건 아니야.” 새별은 별이 움켜쥐지 않아도 편히 닿을 만큼 손을 낮췄다. 반짝이는 잠깐 그 손 위에 머물렀다. 노을은 접힌 연락처를 앞주머니에 넣었다. 헤어지는 순간은 여전히 서운했지만 다음 소식을 기다릴 자리는 정해졌다.
방으로 돌아온 노을은 짐을 처음 왔을 때보다 천천히 쌌다. 머물렀던 며칠 사이에 의자 한쪽이 자기 자리처럼 느껴졌다. 토리는 창틀에 놓아둔 연필을 챙겼고, 반짝이는 등잔 가까이에 깔아 두었던 천을 접었다. 물건이 사라질 때마다 방이 다시 손님을 기다리는 모양으로 돌아갔다.
“꽃잎숲은 꽃 냄새가 너무 많이 나면 길을 못 찾는 거 아니야?” 토리가 물었다. 노을은 냄새로만 길을 찾으려고 했느냐고 되물었다. 토리는 잠깐 웃고 지도에 빈칸이 많아 괜히 걱정한다고 말했다. 노을도 이번에는 배를 탈 때보다 새 숙소에 들어갈 때 더 떨릴 것 같다고 했다.
불씨가 문을 두드렸다. 짐을 싸지 않은 채 찾아온 모습이 낯설었다. “너희가 가는 동안 나는 여기서 첫 수업을 시작하겠지. 같이 출발했는데 다음 날이 달라지는 게 이상해.” 토리는 자신들도 떠나면서 불씨가 무엇을 배우는지 궁금할 거라고 했다. 불씨는 첫 유리구슬을 만들면 그림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꼭 잘 만든 것만 보여 주지는 않아도 돼.” 노을이 말하자 불씨가 코끝을 문질렀다. “알아. 그래도 첫 편지에는 조금 근사한 걸 넣고 싶은 마음은 있어.” 토리는 자신도 아빠에게 보낸 지도에서 지우개 자국이 적은 쪽을 골랐다고 털어놓았다. 셋은 서로 비슷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웃었다.

반짝이는 불씨에게 다가가 수리소에서 처음 만난 날의 작은 불꽃 이야기를 꺼냈다. 불씨는 지금도 그보다 크게 뿜을 수 있는지부터 궁금할 때가 있다고 했다. “배운다고 갑자기 다른 용이 되지는 않네.” 반짝이는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별도 집에 돌아간다고 다른 별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해루가 복도에서 빈 컵을 모으며 방에 빠뜨린 것이 없는지 물었다. 토리는 바로 없다고 했다가 의자 아래에서 지우개를 발견했다. 해루는 배가 떠나기 전에 찾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노을은 방을 한 번 더 둘러보고 물방울 문패를 손끝으로 건드렸다. 자신이 남긴 작은 얼룩도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
짐을 들고 내려갈 때에는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다. 처음 도착한 날 해루가 상자와 인사를 함께 들고 뛰던 계단을 이제는 차례로 내려갔다. 노을은 아래층에서 기다리는 친구들을 보며 다음에 돌아오면 설명하지 않아도 찾아갈 수 있는 집이 하나 더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저녁 해루는 노을에게 작게 접은 노란 천을 건넸다. 부드러운 빛을 만드는 등갓 재료였다.
“별빛을 가려야 할 때 써. 꽉 싸지는 말고, 앞에 조금 띄워 두면 돼.”
몽글도 대야에서 올라와 인사했다. 불씨는 루온의 작업실에 남아 유리 관 수리를 더 배우기로 했다. 로코는 준비가 끝날 때까지 배를 급하게 띄우지 않았다.
출항 직전 둥글이 얇은 공책을 건넸다.
“빈칸이 많지? 돌아와서 채워 줘.”
토리는 공책의 첫 장을 폈다. 둥글은 그곳에 아무 제목도 적지 않았다. 토리가 무엇부터 쓰면 좋겠느냐고 묻자 둥글은 오늘 날짜와 출발하는 장소부터 쓰라고 했다. 노을은 둘이 같이 쓰는 공책으로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둥글은 글씨가 달라도 누가 썼는지 표시하면 된다고 했다.
노을은 첫 줄에 등대섬에서 떠난다고 적었다. 토리는 그 옆에 작은 파란 문을 그렸다. 반짝이는 두 친구 사이의 빈칸에 별 하나를 남겼다. 아직 꽃잎숲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지만 첫 장은 더는 낯선 빈 종이가 아니었다. 둥글은 종이가 젖지 않도록 천 주머니도 함께 건넸다.

갈매기 할머니는 배에 실을 음식 바구니를 로코에게 맡겼다. 아이들에게 전부 들려 보내면 걸을 때마다 부스러기가 된다는 것이었다. 로코는 자기 배에서 음식이 그렇게 오래 남아 있을 리 없다며 웃었다. 할머니는 그래서 선장 몫을 따로 위에 얹어 두었다고 대답했다.
해루는 노을에게 준 노란 천과 같은 재료를 등 옆에도 달아 두었다고 말했다. 노을은 이제 다른 섬에서 그 천을 펼칠 때 해루가 생각날 것 같다고 했다. 해루는 그러면 천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말 대신, 꼭 돌아와서 어떻게 썼는지 알려 달라고 했다.
몽글은 젖은 천이 깔린 바구니에서 인사하고 곧 물로 돌아가기로 했다. 토리가 잠깐 더 있어 달라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자 몽글이 먼저 웃었다. “조금 더 보고 싶은 거지? 나도 그래. 그래서 지금 잘 보고 있어.” 토리는 손을 크게 흔들기보다 몽글과 눈을 맞추었다.
불씨는 자기 공책을 가슴에 붙이고 선착장 끝에 섰다. 루온이 옆에서 긴 모자를 잡아 주었다. 바람이 불어 별 장식이 흔들렸지만 이번에는 문틀에 걸릴 일은 없었다. 노을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불씨의 발이 땅에 편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남아서 배우는 여행도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새별은 아이들과 다른 방향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노을은 망토가 사람들 사이로 멀어지는 것을 끝까지 보았다. 처음에는 길을 막아 서 있던 남색 여우였는데, 지금은 그 망토가 보이지 않는 것이 서운했다. 로코가 배에 오를 차례라고 부르자 노을은 연락처가 든 주머니를 한 번 누르고 발을 옮겼다.
하늘에는 여우를 닮은 별무리가 절반쯤만 이어져 있었다.
반짝이는 그쪽을 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노을은 묻고 싶었지만, 배가 출발하며 크게 기울었다. 반짝이를 붙잡으려던 손은 잠시 뒤 친구가 스스로 잡을 수 있도록 열린 채 남았다.
등대에서 짧은 빛이 한 번 왔다.
로코의 배가 꽃잎숲을 향해 움직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