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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질주 — 여섯 섬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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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가 보내는 편지

등대에 불이 돌아오자 붉은절벽에서 첫 답장이 도착한다. 노을과 토리는 깃발과 등불로 신호를 보내는 일을 배우며, 멀리 있는 친구에게 정확히 전해야 할 말들을 골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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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꼭대기에 불이 돌아온 것은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아직 빛길의 문은 고치지 못했지만, 등대 자체의 반사판과 등불은 다시 쓸 수 있었다.

해루는 계단을 뛰어 내려오다가 마지막 세 칸 앞에서 속도를 줄였다. 갈매기 할머니가 지켜보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어제부터 못 잔 잠을 자고 나니 자기 발이 어디에 닿는지도 더 잘 느껴졌다.

“붉은절벽에서 답이 왔어요! 내일 아침 배에 우편을 싣겠대요.”

할머니가 망원경을 접었다.

“이번에는 급한 연락에 쓸 신호도 맞춰 두자. 길을 고쳤는데 소식이 엇갈리면 또 기다리는 사람이 생기겠구나.”

등대와 붉은절벽의 높은 망루는 맑은 날 서로 보였다. 예전에는 낮에 큰 깃발을, 밤에는 가림판으로 등불을 잠깐씩 드러내며 짧은 신호를 주고받았다.

토리는 신호판을 쓰는 일을 맡았다. 초록은 준비됨, 노랑은 기다림, 빨강은 멈춤. 밤에는 각각 짧게 한 번, 짧게 두 번, 길게 한 번이었다.

“둘 다 급하면 빨간 깃발이랑 초록 깃발을 함께 들 수도 있잖아요?”

토리가 묻자 할머니는 망원경을 내려놓았다.

“그럼 받은 쪽이 못 알아듣지. 그런 때는 우선 멈춤으로 하자. 확인한 다음 다시 보내면 돼.”

노을은 큰 천을 나르는 일을 도왔다. 빨간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자 자기 목수건도 같이 들렸다.

서로 같은 뜻으로 쓰기로 한 깃발
서로 같은 뜻으로 쓰기로 한 깃발

해루와 토리는 창문 사이를 오가며 연습했다. 토리가 노란 깃발을 들었는데 해루는 처음에 빨강이라고 읽었다. 깃발이 접혀 뒷면의 어두운 그림자만 보인 탓이었다. 토리는 손목을 세워 천을 펴고 다시 들었다.

“내가 무슨 뜻으로 들었는지 네가 아는 것하고, 네 눈에 뭘로 보였는지는 다르구나.” 토리가 말했다. “같은 방에서도 틀리는데 바다 건너에서는 더 어렵겠다.”

갈매기 할머니는 창가 의자에서 대답했다. “그래서 받은 쪽도 되돌려 알려 주는 거야. 내가 보낸 뜻을 상대가 읽었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혼자 손만 흔든 셈이지.”

노을은 문밖에서 기다리는 사람 역할을 맡았다. 한 번은 준비 신호를 받고 바로 움직이려다가, 자기 차례에 보여 줄 표식을 잊었다. 해루가 부르자 노을은 발을 멈추고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돌아왔다.

“가라는 말을 들으면 빨리 가야 할 것 같았어. 나도 들었다고 말할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노을은 다시 문턱에 섰다. 이번에는 천천히 준비됐다고 답한 뒤 움직였다.

토리는 신호판 아래에 작은 그림을 보탰다. 보내는 손과 답하는 손이었다. 글씨를 다 읽지 못해도 두 번의 차례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바다 건너에서 아직 답이 오지 않는 동안에도, 세 친구에게 기다리는 시간은 조금 덜 막막해졌다.

깃발을 접는 일은 펼치는 것보다 오래 걸렸다. 큰 천이 아이들 키보다 넓어서 한쪽을 맞추면 다른 쪽이 바닥에 끌렸다. 해루는 둘이 서로 마주 보고 모서리를 잡게 했다. 토리가 한 걸음 다가가고 노을이 반 걸음 물러서자 가운데 접힌 선이 반듯해졌다.

“춤추는 것 같은데.” 노을이 말했다. 토리는 발을 밟지 않는 춤이라고 답했다. 해루는 예전에 혼자 접다가 깃발 속에 자기가 들어간 적이 있다고 했다. 노을이 그때 무슨 신호였느냐고 묻자 해루는 지금 꺼내 달라는 신호였다고 대답했다. 아래층의 갈매기 할머니가 그때 자신이 꺼내 주었다며 웃었다.

발을 맞추며 접는 커다란 깃발
발을 맞추며 접는 커다란 깃발

접은 깃발은 색과 같은 표시가 붙은 칸에 넣었다. 노을은 빨강을 가장 위에 놓고 싶었지만 해루는 항상 같은 자리에 있어야 급할 때 찾기 쉽다고 했다. 토리는 표지판 뒤에도 순서를 그렸다. 처음 오는 사람도 서랍을 모두 열어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저녁 식사 뒤에는 등대 아래 작은 마당에 앉았다. 해루가 어제 못 본 양파 잎의 그림자를 보여 주었다. 해가 낮아져서 잎보다 그림자가 더 길었다. 노을은 자기 꼬리가 마당 끝까지 늘어나는 것을 보고 몸을 돌렸다. 반짝이의 그림자는 다른 친구들처럼 또렷하지 않았다.

“내 그림자가 없다고 내가 여기 없는 건 아니지.” 반짝이가 말하자 토리는 그림자 없는 친구까지 넣은 지도를 그릴 수 있다고 했다. 노을은 이번에는 지도를 쉬게 해 주라고 말했다. 토리는 연필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길어진 손 그림자로 작은 새를 만들어 보았다. 새보다는 두 귀가 긴 여우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의자에서 붕대를 고쳐 감으며 바다를 보았다. 해루가 내일 우편 배가 오면 필요한 부품도 확인하겠다고 하자 오늘 밤에는 그 말을 목록에 적어 두고 잊어도 된다고 했다. 해루는 안 잊으려고 계속 말하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토리는 자기 지도가 가끔 그런 공책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방으로 돌아온 노을은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 때문에 잠이 늦게 올 것 같았다. 반짝이에게 집에 가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지 물으려다가 자기 대답부터 말했다. 엄마가 만든 수프를 먹고, 오늘처럼 큰 천을 접는 방법을 보여 주고 싶었다. 반짝이는 창문 가까이 앉아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이튿날 작은 우편 배가 들어왔다. 노을은 부두로 너무 빨리 내려갔다가, 편지 꾸러미를 먼저 분류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상자 옆에서 발만 바꾸어 디뎠다.

노을의 편지는 두꺼웠다. 엄마가 종이 한가운데를 잘못 접어 한쪽이 자꾸 벌어졌다. 집에서 식탁을 닦던 천 냄새가 조금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은솔에게 이야기를 들었어. 엄마는 네가 즐겁게 지내는지도 알고 싶지만, 힘든 날 이야기도 듣고 싶어. 매번 잘하고 있다고 쓰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노을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편지 마지막에는 빵집 신제품 그림이 있었다. 끼룩이 그렸다고 했다. 너무 크게 그려서 옆에 있던 아빠의 말 한 줄이 빵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돌아오면 함께 먹자.’

토리는 옆에서 자기 편지를 읽고 있었다. 웃다가 갑자기 목을 가다듬었다.

“아빠가 내 책상은 안 치웠대. 치우면 내가 어디에 뭘 뒀는지 모를까 봐.”

“너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더 치우면 안 되지.”

둘은 웃었다. 그러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두에 닿는 작은 파도 소리만 났다.

집에서 온 편지를 읽는 두 친구
집에서 온 편지를 읽는 두 친구

노을은 종이를 다 접지 못한 채 엄지손가락으로 엄마의 글씨를 쓸었다. 빵 그림 안에 묻힌 아빠의 말을 찾아 읽다가, 문득 집 식탁의 삐걱거리는 의자가 생각났다. 의자 다리에 접은 종이를 끼워 놓고 나왔는데 아직 그대로일까.

“지금 돌아가는 배에 타면 저녁에 집에 도착할까?” 노을이 물었다. 토리는 놀란 얼굴로 돌아보았지만 가면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선장님한테 물어봐야 알겠지. 너 돌아가고 싶어?”

노을은 편지를 무릎에 놓았다. “엄마가 보고 싶어. 그런데 여기서 더 알아보고 싶은 것도 있어. 둘 중에 하나만 진짜인 건 아닌 것 같아.”

토리는 자기 편지의 접힌 선을 맞췄다. “나는 아빠가 걱정할까 봐 힘든 얘기는 조금만 썼는데, 아빠는 내가 집에 있는 것처럼 써 줬어. 어제 비가 와서 지붕이 시끄러웠다는 것도. 읽고 나니까 내가 모르는 집이 되어 버리지는 않았구나 싶어.”

노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온 뒤에 먹을 빵 이야기가 있는 한, 집에서는 내일의 자리도 남겨 두고 있는 것 같았다. 편지를 가방 깊숙이 넣으려다가 다시 꺼내 앞주머니에 넣었다. 오늘은 한 번쯤 더 읽고 싶을 것 같았다.

토리는 편지의 빈 줄을 한 번 더 보았다. 아빠는 새로운 길을 많이 그렸는지 묻지 않았다. 신발이 작아지지는 않았는지, 가방 끈이 어깨를 누르지는 않는지 물었다. 토리는 길보다 자기 몸을 먼저 궁금해한다는 것이 조금 낯설었다. 지도에 자신은 늘 작은 점으로만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신발은 그대로인데 발이 달라진 것 같아.” 토리가 말했다. “전에는 많이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빵집까지 간 건 짧았어.” 노을은 빵집까지의 거리는 그대로일 텐데 돌아가면 더 가깝게 느껴질지 궁금하다고 했다. 두 친구는 같은 길을 다시 걸을 때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았다.

노을은 엄마가 그린 작은 화분을 보여 주었다. 창가의 씨앗에서 잎이 났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떠나기 전에는 물을 줘도 아무 변화가 없던 화분이었다. 토리는 우리가 없는 동안에도 자라고 있었느냐고 했다가 당연한 말을 했다는 듯 웃었다. 집도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모든 것을 멈추고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 잎은 내가 못 본 첫날이 있겠네.” 노을은 손가락으로 그림을 따라갔다. 아쉬웠지만, 엄마가 그림으로 남겨 보내 준 것이 고마웠다. 노을도 등대가 처음 켜진 날을 집에서 볼 수 있게 그리고 싶었다. 토리는 등대 전체보다 창문 하나와 켜진 빛을 크게 그리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낮의 부두에서 들여다본 엄마의 새싹 그림
낮의 부두에서 들여다본 엄마의 새싹 그림

우편 배의 일꾼들이 상자를 옮기며 아이들에게 길을 비켜 달라고 했다. 두 친구는 편지를 챙겨 햇볕 드는 돌로 자리를 옮겼다. 노을은 가방이 갑자기 무거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종이 두 장이 늘었을 뿐인데 넣어 둔 곳을 계속 의식하게 되었다. 토리도 앞주머니를 열고 닫는 자신을 발견했다.

해루가 부품 목록을 확인하고 부두 끝으로 왔다. 두 친구의 얼굴을 보고 좋은 소식이냐고 물었다. 노을은 별일 없는 소식이 좋다고 답했다. 집의 지붕은 그대로이고, 빵집은 새로운 빵을 만들며, 화분에서는 작은 잎이 난다는 것들이었다. 해루는 그런 편지는 오래 읽게 된다고 말했다.

노을은 해루에게도 자주 편지가 오느냐고 물었다. 해루는 다른 등대에서 계절마다 안부가 오고, 가끔 자기가 부탁한 부품 대신 비슷하게 생긴 다른 물건이 오기도 한다고 했다. 토리는 오늘 상자는 괜찮았느냐고 물었다. 해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셋은 동시에 부두 쪽을 보았다. 돌아온 소식마다 각자의 자리가 있었다.

반짝이는 조금 떨어진 밧줄 위에 앉아 있었다.

노을이 편지를 접으며 물었다.

“네 집에도 편지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텐데.”

반짝이는 바다를 보았다.

“내가 없어졌다는 건 알겠지. 하지만 무슨 말을 먼저 써야 할지 모르겠어.”

“다쳤는지부터 쓰면 되지 않을까? 우리 엄마는 그게 제일 궁금했대.”

“그다음에는?”

노을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도 반짝이의 집이 어떤 곳인지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같이 여행한다는 이유만으로 다 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다음은 네가 쓰고 싶은 걸 쓰면 되겠지. 안 보여 줘도 돼.”

반짝이는 종이 한 장을 받아 들었다. 한참 뒤에 아주 작은 글씨로 첫 줄을 썼다.

‘나는 바닷가에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노을은 그 다음 줄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반짝이의 첫 편지를 기다려 주다
반짝이의 첫 편지를 기다려 주다

오후에는 은솔의 보고도 읽었다. 바닷길 문은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었고, 집순이는 솔을 두 개 더 구했다. 끼룩은 이제 소식을 전할 때 ‘직접 봤음’인지 ‘누구에게 들음’인지 먼저 말한다고 했다.

토리는 편지 뒷면에 커다란 등대 그림을 그렸다. 안개가 낀 북쪽과 배가 드나드는 남쪽을 분명히 나누었다.

‘섬은 여기 있어. 네가 다음에 오면 직접 보여 줄게.’

삐약에게는 작은 딸랑이 그림을 덧붙였다.

토리가 그림을 말리는 동안 노을은 집순이에게 따로 쓸 문장을 골랐다. 여기에는 바위 웅덩이에 사는 몽글이 있고, 물이 들면 이웃집에 갈 수 있다고 적었다. 집순이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 자기 마당의 물길과 비교할 것 같았다. 몽글은 해초가 많이 밀려오는 날에는 어떻게 청소하는지도 물어 달라고 했다.

삐약에게 보낼 종이에는 등대의 소리를 적었다. 계단의 삐걱거림과 부두의 밧줄 소리, 반사판이 돌아갈 때 나는 낮은 소리였다. 글씨만으로 소리가 전해질지 몰라 노을은 한참 고민했다. 토리는 삐약이 다음에 오면 직접 들려주면 된다며 종이 끝에 작은 귀를 그렸다.

불씨는 수리공에게 오늘도 목이 괜찮다고 썼다. 고정쇠를 풀었던 일을 계속 자랑하고 싶었지만 수리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대신 등대에서는 유리 관을 고쳐야 한다고 적고, 선생님을 만나면 배울 것을 더 써 보내겠다고 했다. 편지에 미래의 일이 들어가자 불씨는 곧 만날 루온을 다시 기다리게 되었다.

해루는 보낼 봉투를 한곳에 모았다. 아직 주소를 쓰지 않은 반짝이의 종이는 건드리지 않았다. 반짝이는 자기 종이를 접어 곁에 두고 친구들의 봉투가 어떻게 묶이는지 보았다. 편지가 당장 갈 곳을 모른다는 것이 조금 서운했지만, 누구도 억지로 목적지를 정해 주지 않아 다행이기도 했다.

갈매기 할머니는 토리가 그린 등대를 보더니 꼭대기의 창문 하나를 고쳐 달라고 했다. 실제로는 세로로 긴 창문이었다. 토리는 그림을 틀리게 그렸다고 생각해 연필을 들었지만 할머니는 그 창문으로 자신이 오래 바다를 봐 왔다고 덧붙였다. 토리는 단순히 모양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 익숙한 자리를 돌려주는 일처럼 느꼈다.

노을은 엄마에게 보낼 그림의 등불을 노란색으로 채웠다. 처음에는 빛을 크게 그렸는데 탑보다 커져 버렸다. 토리가 줄이려 하자 노을은 오늘 자신에게는 그렇게 보였다고 했다. 지도에는 크기를 고쳐야겠지만 편지 그림에는 그 느낌을 남기고 싶었다. 토리는 잠깐 보더니 그 옆에 날짜만 적어 주었다.

해가 지기 전에 편지 꾸러미가 우편함에 들어갔다. 노을은 손에서 종이가 떠나자 할 일이 하나 끝난 것보다 집 쪽으로 말 한마디가 출발한 느낌이 들었다. 해루가 밤 당번을 준비하러 계단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식탁에 따뜻한 차가 먼저 놓여 있었고, 해루는 그 차를 마신 뒤 올라갔다.

그날 밤 해루는 처음으로 혼자 등대 당번을 서지 않았다. 새별이 옆에서 기록을 썼고, 갈매기 할머니는 아래층에서 차를 끓였다.

북쪽 바다에는 여전히 어두운 안개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붉은절벽 망루에서 짧은 빛이 한 번 왔다.

준비됨.

해루도 가림판을 한 번 열었다. 바람이 달라져도, 적어도 서로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