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등대 아래층에는 물이 든 넓은 대야가 놓였다. 그 안에서 작은 해파리가 둥실거렸다. 몸 안에는 연한 노란빛이 켜져 있었다.
노을이 대야 앞에 앉자 해파리가 물 위로 조금 떠올랐다.
“가까이 와도 돼. 다만 손가락으로 콕 찌르지는 말아 줘. 나도 놀라면 물을 튀기거든.”
이름은 몽글이었다. 등대섬의 바위 웅덩이에 살다가 습기가 많은 날에는 탑 안으로 놀러 왔다. 몸을 적신 천 위에서는 잠시 물 밖에 머물 수도 있었다.
해루는 몽글의 대야를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폭풍 전에 북쪽 계단 불빛을 살피러 같이 갔어. 그날부터 빛이 약해졌어. 내가 너무 오래 부탁했나 봐.”
몽글은 물속에서 천천히 돌았다.
“피곤하기도 했고, 안개가 닿은 뒤에 좀 이상해졌어. 지금은 쉬면 괜찮아. 그런데 다들 볼 때마다 예전보다 어둡다고 하니까 자꾸 더 밝게 하게 돼.”
반짝이는 대야 옆에 내려앉았다. 두 작은 빛이 물 표면에 나란히 비쳤다.

몽글은 물속에서 몸을 접었다 폈다. 반짝이가 가까이 오자 물 표면이 조금 더 밝아졌지만, 몽글 안의 노란빛은 그대로였다. 노을은 밝아졌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도 안 하면 내가 더 이상해?” 몽글이 물었다. “다들 칭찬하려다 멈추는 얼굴도 보여. 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계속 바라보는 건 조금 힘들어.”
노을은 대야 바로 앞에서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럼 다른 얘기 해도 돼? 바위 웅덩이에 살면 파도가 올 때 집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나는 집순이 집도 처음엔 그냥 껍데기인 줄 알았거든.”
몽글의 몸이 조금 느긋하게 펴졌다. 그는 낮은 물때에는 웅덩이들이 따로 떨어지고, 물이 차면 이웃 웅덩이까지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좋아하는 그늘과 모래가 자꾸 들어오는 자리를 말할 때는 목소리가 빨라졌다.
해루가 듣다가 웃었다. “그래서 내가 데리러 가면 늘 같은 돌 뒤에 있었구나. 나를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기다린 날도 있지.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자리라서 있는 날이 더 많아.” 몽글이 대답했다.
반짝이는 대야 밖으로 물방울이 튀지 않는 거리를 찾아 앉았다. 노을은 몽글의 빛이 얼마나 돌아왔는지 세지 않았다. 웅덩이에도 길과 이웃이 있다는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몽글은 웅덩이 친구들이 숨바꼭질을 하면 자신이 가장 먼저 들킨다고 말했다. 바위 뒤에 숨어도 노란빛이 가장자리에 비쳤다. 노을은 그러면 술래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가 몽글의 표정을 보았다. 몽글은 찾는 것만큼 숨는 것도 해 보고 싶다고 했다.
“빛을 끄고 숨으면 안 돼?” 토리가 묻자 몽글은 늘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놀라면 밝아질 때도 있었다. 반짝이는 그 말에 몸을 조금 기울였다. 자신도 들키고 싶지 않을 때 천 밖으로 빛이 새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노을은 두 친구가 처음으로 서로만 아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몽글은 물 위에 뜬 작은 해초를 밀어 보였다. 해초가 그림자를 만들자 그 아래에 몸 일부를 숨겼다. 전부 가려지지는 않았지만 눈만 빼꼼 내놓을 수 있었다. 토리는 그 정도면 숨는 기분이 나겠다고 했다. 몽글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해초를 다른 쪽으로 밀었다. 이번에는 반짝이의 그림자가 그 자리를 비췄다.

해루가 젖은 천을 갈아 줄 준비를 하자 몽글은 대야 한쪽으로 비켰다. 해루는 잠깐 물이 흔들릴 거라고 알려 주었다. 몽글은 그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노을은 어제 배에서 바닥이 움직일 때 자신은 두 발에 힘을 주었는데 몽글은 다르게 움직이는 것이 신기했다.
“너희는 서 있을 곳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지?” 몽글이 물었다. 노을은 그렇다고 했다. 몽글은 자기에게는 너무 단단한 바닥보다 몸을 감싸는 물이 편하다고 말했다. 토리는 친구들을 모두 편하게 하는 방을 만들려면 바닥도 여러 종류가 있어야겠다고 했다. 해루는 그래서 대야가 식탁 옆까지 올라온 것이라고 웃었다.
불씨는 물 튀는 곳에서 조금 떨어져 앉았다. 몽글이 그쪽으로 헤엄치자 불씨는 무서워서 피한 것이 아니라 종이 소개장이 젖을까 봐 그랬다고 설명했다. 몽글은 자신의 집에서는 종이를 오래 보관하기 어려워 중요한 모양은 돌에 새기기도 한다고 했다. 토리는 돌 지도는 바람에 안 날리지만 가방이 무거워지겠다고 말했다.
노을은 작은 대야가 단순히 아픈 친구를 쉬게 하는 물건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지금 몽글은 그 안에서 자기 집의 놀이와 물살과 보관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야 바깥의 친구들은 모두 마른 의자에 앉아 그 설명을 듣고 있었다. 창문 빛이 옮겨 가자 해루가 대야의 그늘도 함께 옮겨 주었다.
둥글은 등대의 세 번째 문이 북쪽 계단 아래에 있다고 했다. 안개 때문에 계단 끝과 물웅덩이가 구별되지 않아, 어제는 문 앞까지도 갈 수 없었다. 로코는 배의 큰 탐조등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이 정도 안개면 밝게 비추면 보일 거요.”
해루가 잠시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어제 이미 해 봤어요. 그때는 안개 전체가 하얗게 보여서 더 안 보였어요. 제가 잘못 맞춘 줄 알았는데… 다시 해도 같은 일이 생길 것 같아요.”
로코는 들고 있던 등불을 내려놓았다.
“그 말을 먼저 들었어야 했군. 그러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몽글이 대야 가장자리까지 다가왔다.
“문 전체를 보려고 하지 말고, 바로 앞 돌부터 보면 어떨까? 내가 웅덩이 바닥을 볼 때는 그렇게 해.”
몽글은 물속에 작은 돌 하나를 넣어 보라고 했다. 해루가 깨끗한 돌을 대야에 내려놓았다. 몽글이 가까이 갔을 때에는 돌 표면의 홈이 보였지만 멀리 가자 반짝이는 물결만 눈에 들어왔다. 노을은 같은 대야에서도 보는 자리와 빛의 거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로코는 탐조등 손잡이를 만지며 먼저 힘센 도구부터 찾았다고 말했다. 배에서는 멀리 있는 것을 찾는 일이 많아서 그 버릇이 나왔다. 해루는 북쪽 계단에서는 발 앞 한 칸이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무섭다고 설명했다. 멀리 있는 문이 어디인지 알아도 그 사이에 발을 놓을 곳을 모르면 갈 수 없었다.
새별은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위쪽 공간에서 바구니를 들어 보자고 했다. 해루가 젖은 천을 접어 몽글이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손잡이를 든 높이에 따라 바닥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달랐다. 몽글은 자기 몸을 억지로 밝히기보다 바구니 벽이 가리지 않는 높이를 골랐다.
토리는 계단에 놓인 작은 돌을 표시삼아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해루의 그림자가 돌을 가렸다. 해루가 바구니를 몸 옆으로 조금 옮기자 돌 모서리가 나타났다. 노을은 직접 빛을 더하지 않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해루는 내려가면서도 이 높이를 유지할 수 있는지 한 번 걸어 보았다.
몽글은 바구니 바닥이 기울면 자기 몸이 한쪽으로 쏠린다고 알렸다. 해루는 손잡이에 짧은 표시를 붙여 수평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했다. 반짝이가 그 곁에서 몸을 기울이자 토리는 별까지 같이 내려가는 줄 알고 놀랐다. 반짝이는 위에서 바구니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만 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둥글은 확인할 일을 세 가지로 줄였다. 계단의 방향, 문 앞까지 가는 길, 돌아올 때 필요한 시간이었다. 문을 열어 보는 것은 오늘 이 시험에 들어 있지 않았다. 노을은 할 일을 줄여 놓으니 성공했는지 알기도 쉬워질 것 같았다. 다 찾기 전 돌아와도 어디까지 봤는지는 남길 수 있었다.
해루는 준비한 물과 천의 위치를 확인한 뒤 우비 끝을 묶었다. 긴 옷자락이 계단에 끌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노을은 위쪽에 앉을 자리를 찾았고 토리는 계단을 그릴 종이를 무릎 위에 놓았다. 아직 아래는 보이지 않았지만 출발하기 전의 막막함은 조금 줄어 있었다.
새별은 긴 막대와 안전줄을 준비했다. 해루가 앞에서 막대로 바닥을 확인하고, 새별이 그 뒤에서 줄을 관리하기로 했다. 노을과 토리, 반짝이는 계단 위의 마른 공간에서 기다렸다.
몽글은 자기 뜻으로 젖은 천이 깔린 작은 바구니에 들어갔다.
“쉬고 싶으면 두 번 톡톡 칠게. 그때는 대야로 돌아와 줘.”
해루가 손잡이를 잡았다.
“알았어. 문까지 못 가도 돌아올게.”
약한 빛이 계단 한 칸을 비췄다. 안개 너머까지 뚫고 나가지는 못했지만 발 앞의 돌 모서리는 보였다. 해루는 빛이 닿는 만큼만 한 걸음씩 내려갔다.

노을은 위에서 줄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토리는 계단이 몇 칸인지 세다가 중간부터 소리 내어 함께 셌다.
“일곱, 여덟. 거기서 오른쪽으로 조금 꺾였어요.”
계단 아래에서 해루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문이 있어! 손잡이도 보여.”
곧바로 바구니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두 번이었다.
해루가 멈췄다. 문은 바로 앞에 있었다. 팔을 조금 더 뻗으면 손잡이를 잡을 수 있었다.
노을은 해루가 돌아올지, 한 번만 더 부탁할지 숨을 죽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확인했어요. 돌아갈게요.”
해루가 돌아섰다.
마른 공간에 도착하자 몽글은 대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몸의 불빛이 한층 옅어졌지만, 목소리는 편안했다.
“여덟 번째 계단에 금이 있었어. 그것도 적어 줘.”
토리가 지도에 계단을 그렸다. 해루는 큰 글씨로 ‘여덟 번째 주의’라고 적었다.
해루는 글씨 밑에 밑줄을 두 번 그었다. 손에 묻은 물이 종이 끝을 적셨다. 노을은 마른 천을 건네며 계단 아래에서 돌아설 때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손잡이가 정말 가까웠어. 한 번만 만져 보면 될 것 같았지. 그런데 몽글을 데리고 한 계단 더 내려가면 돌아올 때도 그만큼 더 걸어야 하잖아. 내려가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더라.”
대야에 있던 몽글이 물 위로 올라왔다. “두 번 두드렸는데 대답이 없어서 잠깐 걱정했어. 못 들은 건지, 들었는데 기다리는 건지 몰라서 한 번 더 쳐야 하나 했거든.”
해루는 젖은 손잡이를 내려놓았다. “나는 멈췄으니 네가 알 거라고 생각했어. 다음에는 들었다고 바로 말할게. 오늘 내려갈 때 약속한 말도 네가 들을 수 있게 했어야 했는데.”
토리는 계단 그림 옆에 몽글이 쉬고 있는 대야를 작게 그렸다. 몽글이 너무 커 보인다고 하자 토리는 지우지 않고 웃었다. “계단을 여덟 칸이나 그렸는데 네 자리가 없어서 넣었어. 실제 크기대로 그리면 점만 남을 것 같아서.”
몽글은 그림을 조금 더 보고 물속으로 내려갔다. 해루는 빈 바구니의 천을 갈아 두었다. 다시 부탁할 때 바로 쓸 준비가 아니라, 몽글이 깨어나면 깨끗한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해 두는 준비였다.
해루는 빈 바구니를 창가에 놓다가 불빛이 천을 지나 부드럽게 퍼지는 것을 보았다. 새별이 반짝이를 꺼낼 때 썼던 흰 천도 생각났다. 바구니를 다시 들기보다 작은 등 하나에 빛을 가리는 갓을 씌워 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로코는 배에서 가져온 작은 등을 작업대 위에 놓았다.
갈매기 할머니가 등과 거리를 두고 쓸 수 있는 종이갓을 찾아 주었다. 찢어진 곳은 새 종이로 바꾸고 고정대도 확인해야 했다. 토리는 바닷길에서 썼던 천이면 모두 괜찮을 것 같았는데 등 가까이에 놓는 것은 따로 살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노을은 갓의 모양을 잡아 주는 나무 고리를 옮겼다.
첫 번째로 끼운 종이는 빛을 너무 많이 가렸다. 작업대 위의 글씨도 읽기 어려웠다. 로코가 등을 더 밝히려 하자 해루는 갓을 조금 위로 옮겨 보자고 했다. 빛이 바닥으로 나가는 틈이 생기자 작은 돌의 그림자가 드러났다. 몽글이 비춰 주었던 한 칸처럼 가까운 곳이 먼저 보였다.

토리는 종이갓에 예쁜 별무늬를 그려도 되느냐고 물었다. 둥글은 먼저 쓸 수 있는지 확인하고 그림은 그다음에 생각하자고 했다. 토리는 기다리는 동안 자기 종이에 별무늬를 그렸다. 노을은 같은 도구를 만들고 있어도 토리는 빈 표면을 보면 꼭 무언가 그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대야의 몽글은 눈을 감았다가 작업대 쪽 소리를 들었다. 해루가 부를까 봐 떠오르려 하자 노을이 곁으로 갔다. “지금은 다른 등을 준비하는 중이야. 네가 알려 준 높이에서 비춰 보고 있어.” 몽글은 자기 대신 내려갈 등이 생기면 내일도 무조건 자기를 부르지 않아도 되겠다고 말했다.
노을은 몽글이 서운해하지 않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몽글은 물속에서 훨씬 느긋하게 몸을 폈다. 자신을 대신할 물건이 생긴다고 오늘 한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늘 밤에는 웅덩이 친구들이 보낸 소식을 들을 힘이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새별은 종이갓을 고정한 뒤 아래쪽을 보수하는 일꾼들과 사용할 순서를 맞췄다. 해루는 여덟 번째 계단을 표시한 그림을 전달했다. 노을과 토리는 대야 곁에 앉아 작업대가 조금씩 비워지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작은 빛 하나를 걱정하며 모였던 방에서 이제는 여러 손이 저마다 다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몽글이 쉬는 동안 어른들은 계단의 금을 보수하고, 안개가 새어 나오는 틈 앞에 임시 칸막이를 세웠다. 오후에는 몽글 대신 부드러운 종이갓을 씌운 작은 등을 들고 내려갈 수 있었다. 몽글의 빛을 보고 방법을 바꾼 것이다.
노을은 대야 옆에서 그 소식을 전했다.
“문을 찾았대. 그런데 유리 관 하나가 갈라져서, 불씨랑 선생님이 봐야 한대.”
“그럼 난 오늘 저녁까지 쉬어도 돼?”
“응. 네가 비춰 준 계단은 지도에 있어.”
몽글은 물속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반짝이가 대야 위로 너무 가까이 기울자 작은 물방울이 퐁 튀었다.
반짝이는 놀라 뒤로 물러났고, 몽글은 약해진 불빛으로 물속에서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