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의 기록실은 두 번째 층에 있었다. 원래 창고였던 방에 책장이 들어왔고, 책장이 너무 많아지자 작은 침대가 복도로 밀려 나왔다. 침대 주인이 바로 둥글 박사였다.
기록실 문을 열자 마른 종이와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났다. 책상은 하나였지만 그 위에 놓인 책은 여러 층이었다. 노을은 어디에 손을 짚어도 무언가를 읽게 될 것 같아 두 손을 가방 끈에 얹었다. 토리는 눈에 들어오는 제목을 차례로 읽다가 세 번째 선반에서 바로 다른 쪽으로 시선을 빼앗겼다.
문 옆에는 ‘파도 높이’, ‘배가 드나든 날’, ‘없어진 물건’이라고 적힌 상자들이 있었다. 토리가 마지막 상자에 관심을 보였다. 둥글은 없어진 물건 자체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무엇을 언제 잃어버렸는지 적은 종이였다. 토리는 찾은 물건도 계속 그 상자에 두느냐고 물었다.
둥글은 상자 뒤의 작은 칸을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되찾았다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노을은 배에서 잃어버린 장갑도 이곳에 적힐 수 있겠다고 했다. 둥글은 장갑은 해마다 여러 개가 올라온다며, 어느 손에 끼는 것인지까지 적어야 찾기 쉽다고 답했다. 로코가 그 말을 들었으면 좋아했을 것 같았다.

새별은 가져온 기록을 놓을 자리를 물었다. 둥글은 책상 한쪽을 비우려고 책을 들었다가 아래에 낀 종이 세 장을 발견했다. 맨 위에는 수프에 넣을 채소 양이 적혀 있었다. 오래된 배의 짐 목록과 섞여 들어간 할머니의 요리 쪽지였다. 토리는 양파 백 자루로 수프를 끓이는 줄 알았다며 웃었다.
둥글은 요리 쪽지를 문 옆 집게에 꽂았다. 아래층에 가져다줄 물건을 두는 자리였다. 노을은 이 방에서는 길을 잃는 것도 책이 아니라 사람이겠다고 생각했다. 침대가 복도로 밀려난 이유를 물으니 둥글은 책장이 하나 더 필요했고 침대는 바퀴가 달려 있어 가장 쉽게 움직였다고 했다.
반짝이는 높이 쌓인 책 사이를 지나갈 틈을 찾았다. 종이 위에 너무 가까이 앉으면 빛 때문에 글씨가 흐려졌다. 둥글은 유리 문진 옆을 비워 주었다. 토리는 별이 앉을 자리까지 정해지고 나서야 질문을 시작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방 밖에서 해루가 문패를 바로잡는 소리가 들렸다. 새별은 창문을 조금 열어 먼지가 바깥으로 나가게 했다. 여섯 섬의 길을 알아보러 모인 자리였지만 첫 질문이 나오기 전까지는 작은 방의 자리부터 나누어야 했다. 노을은 가방을 발밑에 내려놓고 둥글을 바라보았다.
안경을 쓴 부엉이 둥글은 낮에도 곧잘 깨어 있었지만, 질문을 받으면 눈을 먼저 감았다. 토리는 그때마다 잠이 든 줄 알고 목소리를 높였다.
“들었어. 생각하는 중이야.” 둥글이 세 번째로 말했다. “생각은 눈을 뜨고만 하는 게 아니거든.”
노을은 질문을 하나씩 하기로 했다.
“별등은 어디에 있어요?”
“여섯 섬 위로 이어진 옛 하늘길 끝에. 밤에 육지에서 보는 가장 큰 별빛이 사실은 그 등불이지.”
“그럼 반짝이는 거기서 떨어진 거예요?”
“그건 반짝이에게 물어봐야 해. 나는 그날 하늘에 없었으니까.”
반짝이가 책상 위의 둥근 문진 옆에 내려앉았다.
“등 안쪽 복도에 있었어요. 바닥이 흔들려서 난간을 잡으려고 했는데, 발밑에서 유리가 깨졌어요. 다음에는 바닷가였어요.”
둥글은 깃털 펜을 내려놓았다. 반짝이의 말을 곧바로 오래된 책에 맞추려 하지 않았다.
“기억나는 건 여기까지 적자. 더 생각나는 게 있으면 나중에 고쳐도 돼.”
그는 책장 맨 위에서 커다란 도감을 꺼냈다. 표지에는 여섯 개의 둥근 섬과 그 사이를 잇는 여우 모양의 선이 그려져 있었다.
첫 그림에는 별등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있었다. 두 번째에는 빛을 받아 밤길을 밝히는 섬들이 있었다. 세 번째에서는 옅어진 빛이 하늘로 되돌아갔다.

노을은 마지막 선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빛이 내려오기만 하는 게 아니었네.”
“등대에서 본 것도 비슷해.” 새별이 말했다. “첫째 문과 둘째 문은 빛을 보내려고 하면 반대쪽에서 밀렸어.”
토리가 다음 장을 넘겼다. 하얀 종이였다. 한 장 더 넘겨도 비어 있었다.
“제일 중요한 데서 없어졌어요. 누가 뜯어 간 거예요?”
둥글은 책등을 살펴보게 했다. 뜯긴 자국은 없었다.
“뒤쪽은 원래 빈 기록장이야. 시설이 달라지면 뒤를 잇는 사람이 적으라고 남겨 놓았지.”
토리는 빈 종이를 빛 쪽으로 기울였다. 숨겨진 그림이라도 나타날 것처럼 보았지만 종이에는 오래된 물자국만 있었다. 노을도 도감 표지의 금빛 무늬를 다시 만져 보았다. 이렇게 두껍고 훌륭한 책이라면 지금 필요한 답이 마지막 장까지 들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럼 책에 그려진 길하고 지금 길이 다를 수도 있어요? 우리는 이 그림을 따라가려고 했는데요.” 노을이 물었다.
둥글은 책을 빼앗아 덮지 않았다. 대신 첫 장 구석의 작은 날짜를 보여 주었다. “이 그림을 그렸을 때는 이 길이 맞았겠지. 바람에 계단이 부서지고 새 관을 놓아도 책 속 그림은 저절로 바뀌지 않아. 그래서 언제, 누가 본 것인지 함께 적는 거란다.”
새별은 자신의 수첩과 도감을 나란히 놓았다. 도감에는 넓은 선 하나로 그려진 바닷길이, 새별의 수첩에는 여러 개의 작은 문과 배수로로 나뉘어 있었다. 토리는 두 그림을 번갈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그림 하나가 틀렸다고 골라 버리면 안 되겠네요. 이건 섬들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 주고, 새별 지도는 손잡이가 어디 있는지 보여 주니까.”
둥글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을은 빈 페이지의 가장자리를 조심스레 눌렀다. 남겨 둔 자리라는 설명을 듣고 나니,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새로운 질문처럼 느껴졌다.
“그럼 그동안 아무도 안 적었어요?”
둥글의 깃이 조금 부풀었다.
“몇 해 동안 내가 옛 기록을 정리했지. 새 기록은 관리소에서 보내 줄 거라고 생각했어. 관리소에서는 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고.”
새별도 수첩을 내려다보았다. 자기 수첩에는 점검 날짜가 꼬박꼬박 적혀 있었지만, 이상한 빛이 어디서 밀려왔는지는 없었다.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창밖에서 해루가 사다리를 옮기는 소리가 났다.
둥글은 빈 첫 장 위에 날짜를 적었다.

“우리부터 적자. 바닷길에서 본 걸 노을이 말해 주겠니?”
이야기는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토리는 빛이 켜진 시간을 정확히 몰랐고, 노을은 안개가 움직인 방향을 두 번 고쳤다. 둥글은 모르는 곳에 물음표를 썼다.
“책에 물음표를 써도 돼요?” 토리가 물었다.
“이미 적었으니 안 된다고 해도 늦었구나.”
둥글이 웃었다. 토리도 웃으면서 자기 지도에 물음표를 하나 더 그렸다.
둥글은 기록을 처음부터 읽었다. 노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안개가 노을을 따라왔다’는 문장에서 손을 들었다. “나를 따라온 건지는 몰라요. 내가 움직였을 때 안개도 움직였다는 건 봤어요. 반짝이는 그 옆에 있었고요.”
반짝이가 문진에서 조금 떨어졌다. “나한테 왔을 수도 있어. 빛을 가리니까 달라졌잖아.” 작은 별은 말을 하다가 노을을 보았다. 노을은 누가 원인이었는지 서둘러 골라 주지 않았다.
둥글은 문장을 두 줄로 나누었다. 누가 움직였는지, 빛을 가렸을 때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따로 썼다. “이렇게 적어 두면 나중에 같은 일이 생겼을 때 서로 비교할 수 있겠구나. 지금은 안개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까지 적지는 말자.”
토리는 턱을 괴었다. “그렇게 쓰니까 모험 이야기처럼 안 보여요. 누군가 우리를 쫓았다고 하면 훨씬 무서운데.”
“읽는 사람이 재미있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이 책을 들고 계단을 고치러 오는 사람은 무엇을 봤는지 알아야 하거든.” 둥글이 펜을 토리 쪽에 놓았다. “네가 무서웠다는 이야기는 지울 필요 없어. 그건 네가 겪은 일이니까 옆에 적자.”
토리는 한참 만에 ‘뒤를 돌아보기 싫었다’고 썼다. 노을도 그 문장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다른 것을 보았어도 함께 떨었던 순간은 기억하고 있었다.
잉크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둥글은 종이 한 장을 얹어 눌러 두려다가 문진을 찾았다. 반짝이가 옆에 앉아 있어 문진이 평소보다 더 밝게 보였다. 토리는 문진도 별유리냐고 물었다. 둥글은 그냥 유리라고 답했다. 어떤 빛을 옆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뿐이었다.
노을은 보통 유리도 이렇게 빛날 수 있는데 떨어진 조각이 특별한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새별은 모양과 만들어진 방식, 원래 붙어 있던 자리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조각을 잃지 않게 모으고 본 것을 적는 중이었다. 반짝이는 깡통이 들어 있는 가방 쪽을 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둥글은 기록실 벽 아래의 얕은 서랍을 열었다. 길을 그린 큰 종이들이 납작하게 누워 있었다. 여러 번 접힌 종이는 펴도 금세 다시 말렸다. 노을과 토리가 양쪽을 잡고 새별이 가운데에 문진을 놓았다. 오래된 섬 그림 옆에는 관리인의 작은 메모와 고친 흔적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
토리는 그림 속 등대가 지금 창밖에 있는 탑보다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둥글은 위층을 더 올리기 전의 그림일 수 있다고 했다. 정확한 해를 찾으려면 공사 기록을 봐야 했다. 노을은 책장으로 달려갈 토리를 붙잡지 않고 오늘 필요한 질문을 먼저 적어 두자고 말했다. 토리도 이미 질문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종이 끝에는 누군가 그린 작은 찻잔이 있었다. 왜 지도에 찻잔이 있느냐고 묻자 둥글도 몰랐다. 잉크 자국을 가리려고 그렸을 수도 있고, 그린 사람이 차를 기다렸을 수도 있었다. 노을은 옛날 사람도 지도를 그리다가 배가 고팠겠다고 말했다. 먼 이야기 속 사람들이 갑자기 조금 가까워졌다.
갈매기 할머니가 계단 아래에서 차가 준비됐다고 불렀다. 둥글은 이번에는 그 찻잔의 뜻을 안다며 안경을 올렸다. 해루가 쟁반을 가져왔고, 토리는 잉크가 묻지 않은 쪽으로 책을 옮겼다. 반짝이 앞에는 컵 대신 따뜻한 수건을 접어 놓았다. 둥글은 그 자리까지 종이에서 조금 떨어뜨렸다.
노을은 차를 마시며 기록실 안쪽 벽을 보았다. 책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푸른 꼬리 같은 것이 위로 올라가 있었다. 처음에는 커다란 나뭇잎인 줄 알았다. 토리가 의자를 조금 옮기자 꼬리 앞에 둥근 몸통과 작은 지느러미가 이어졌다. 노을은 찻잔을 내려놓고 둥글에게 저쪽도 보아도 되느냐고 물었다.
오후에는 책장 옆의 긴 벽그림을 보았다. 하늘을 헤엄치는 커다란 고래와, 고리 같은 빛을 머리 위에 두른 여우가 그려져 있었다. 가장 높은 곳에는 날개 끝이 분홍빛인 새가 있었다.

“저 고래도 별등에 살아요?” 노을이 물었다.
“별고래 아리. 그림대로라면 빛길을 따라 섬 사이를 건넜어. 그리고 저 여우는 옛길을 돌보던 여울이지. 날개가 밝은 새는 노을빛, 새벽새라고도 불렀고.”
토리가 노을을 돌아보았다.
“너랑 이름이 비슷하네.”
“저 새가 먼저 썼겠지.”
노을이 대답하자 반짝이가 작게 웃었다. 여행을 시작한 뒤 그렇게 편하게 웃는 것은 처음이었다.
둥글은 새 그림 아래의 작은 글씨를 읽었다.
“노을빛의 날갯짓은 멀리서도 보였대. 섬들이 같은 때에 길을 열 수 있도록 신호를 전했다고 적혀 있구나.”
노을은 새 그림 아래에 서서 두 팔을 벌렸다. 벽에 그려진 날개 끝까지는 닿지 않았다. 토리는 노을이 옆에 서니 새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알겠다고 했다. 둥글은 그림 속 크기가 실제 크기와 같은지는 적혀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노을은 팔을 내렸지만 날아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고래는 바다에 사는 줄 알았는데, 아리는 하늘에서 뭘 먹어요?” 토리가 물었다. 둥글은 곧바로 책을 고르지 않았다. 기록에 먹이에 관한 말이 있는지 먼저 찾아봐야 한다고 했다. 토리는 모르는 게 계속 나온다며 웃었다. 반짝이는 별도 빵을 안 먹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친구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말했다.
노을은 아리의 등 위에 그려진 작은 선들을 가리켰다. 앉는 자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무늬처럼 보이기도 했다. 둥글은 다른 그림에서는 짐과 사람들이 함께 있는 모습이 나온다고 했다. 노을은 큰 고래가 누군가를 태우고 느리게 하늘을 건너는 모습을 떠올렸다. 로코의 배가 물 위에서 흔들리던 감각과는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다.
반짝이는 벽 가까이 갔다가 일정한 높이에서 멈췄다. 별등에서도 멀리 움직이는 큰 그림자를 본 적은 있었지만 이름을 알고 말을 걸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토리는 같은 하늘에 살아도 모르는 이웃이 많았느냐고 물었다. 반짝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이 높이 있다고 모든 하늘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새별은 여울의 머리 위에 그려진 둥근 빛을 살폈다. 노을은 길을 지키는 일을 한다면 새별처럼 열쇠를 많이 가지고 다닐지 궁금했다. 그림 속 여울에게는 열쇠 꾸러미가 보이지 않았다. 새별은 직접 만나면 어떻게 길을 확인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에 토리는 어른도 만나고 싶은 선배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둥글은 벽 아래에 덧붙인 종이에서 신호를 설명한 부분을 찾아 주었다. 같은 때 길을 여는 일이 왜 필요한지는 더 살펴야 했지만, 멀리 있는 섬들이 서로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했다. 노을은 삐약의 딸랑이와 단단의 줄 신호를 떠올렸다. 소리와 손짓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하늘의 날개가 말을 대신한 셈이었다.
토리는 지도 옆의 빈칸에 고래의 작은 꼬리를 그렸다. 아직 만난 친구 목록에는 넣지 않았다. 언젠가 만나면 앞부분을 마저 그리겠다고 했다. 노을은 꼬리만 보고 찾아가면 뒤만 쫓게 될 수도 있다고 놀렸다. 반짝이가 웃자 토리는 고래 머리가 들어갈 만큼 큰 여백을 남겨 두었다.
새별이 그 문장을 받아 적었다.
방을 나가기 전 노을은 빈 기록장 첫 장을 다시 보았다. 아까까지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그들이 지나온 길이 있었다. 틀렸다가 고친 선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반짝이는 문밖에서 잠깐 기다렸다.
“내가 더 기억해 내야 하는 거겠지?”
노을은 책을 덮으며 대답했다.
“기억 안 나는 걸 만들어 낼 순 없잖아. 아까 네가 말해 준 데까지 같이 적었어.”
반짝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책상 위 유리 문진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