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치길은 아침 햇빛에 젖은 나무 냄새를 풍겼다. 일꾼들이 마지막 못을 박는 동안, 노을은 난간 밖으로 보이는 항구를 내려다보았다. 어제보다 훨씬 높은 곳에 온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몇 걸음 옮겼을 뿐이었다.
로코는 새 장갑을 꼈다가 손가락을 여러 번 접었다. 아직 가죽이 빳빳해서 오래 쓰던 한 짝보다 불편하다고 했다. 단단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남은 장갑도 작업장에 두었다가 쓸 곳을 찾자고 했다. 토리는 장갑에게도 새 동료가 생긴 셈이라고 말했다.
노을은 새 판자 위에 난 작은 옹이를 보았다. 바다 쪽을 향한 모양이 여우 귀처럼 보여 반짝이에게 알려 주었다. 반짝이는 별무늬를 찾다가 여우 귀까지 찾게 되었다며 가까이 왔다. 두 친구가 몸을 기울이자 토리는 난간 안쪽에서 보면 더 잘 보인다며 자리를 바꿔 주었다.
집순이는 판자 사이의 폭을 살폈다. 여우 발에는 좁은 틈이 집순이 발에는 꽤 넓었다. 목수는 모든 틈을 없애면 빗물이 고인다며, 작은 친구들이 지날 한쪽에 더 촘촘한 덮개를 붙일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집순이는 길이 열리고 나서 돌아가기 전에 한번 걸어 보겠다고 말했다.

불씨는 수리한 고정쇠를 담은 상자를 품에 들고 있었다. 밤새 목이 아프지는 않았는지 수리공이 아침에 확인해 주었다고 했다. 노을이 긴장되느냐고 묻자 불씨는 이번에는 자신이 무엇을 할지 알아서 어제와는 다르다고 했다. 그렇다고 떨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꼬리 끝이 상자 아래를 자꾸 쓸었다.
새별은 준비한 도구의 수와 위치를 확인했다. 단단은 반대편 길을 보고 돌아와 마지막 일꾼이 빠져나왔다고 알렸다. 로코는 놋쇠판을 덮은 천을 벗겼다. 어제 항구 상자에 있을 때보다 깨끗해진 금속 면에 아침 하늘이 비쳤다. 노을은 판에 달린 홈이 이제 어디로 이어질지 조금 궁금했다.
“집순이, 네가 처음 물길을 보지 않았으면 우리는 여기까지 왔을까?” 토리가 물었다. 집순이는 솔 끝을 털었다. “왔을 수도 있겠지. 대신 내 마당은 계속 젖어 있었을 거야.” 토리는 그 대답을 듣고 지도 구석에 그린 작은 껍데기를 손가락으로 한번 눌렀다.
노을은 멀리 항구의 빨간 돛을 보았다. 배를 타는 일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금은 눈앞의 방과 새 판자, 그리고 어제와 같은 친구들이 먼저였다. 반짝이는 작업 전에 작은 천을 벗어 방석 위에 접어 두었다. 노을은 그 천을 한번 보고 다시 로코가 옮기는 놋쇠판 쪽으로 눈을 돌렸다.
로코가 수리한 놋쇠판을 바구니에서 꺼냈다. 불씨는 작은 고정쇠를 따뜻하게 했고, 새별은 판의 방향을 맞췄다. 집순이가 홈 안에 남은 소금 덩어리를 밀어냈다.
드디어 두 번째 문이 열렸다.
유리 그릇에서 나온 빛이 붉은 아치의 안쪽을 따라 천천히 번졌다. 밤에만 보이던 별무늬들이 대낮에도 희미하게 나타났다. 토리는 너무 급하게 그리다가 연필심을 부러뜨렸다.

“지금 보이는 대로 외워 둬. 나 연필 깎을 동안 사라지면 안 돼.”
반짝이가 별무늬를 보았다.
“여섯 개야. 여기도 여섯 개.”
새별이 그릇 안의 흐름을 살폈다. 처음에는 빛이 바닷길 쪽으로 흘렀다. 그런데 곧 얇은 검은 실 같은 것이 반대쪽에서 밀려왔다.
새별이 손잡이를 절반쯤 잠갔다.
“또 돌아오는 쪽이 막혔어. 멀리 있는 문들도 살펴봐야겠네.”
그때 바깥에서 나무 딸랑이 소리가 났다.
삐약이었다. 할머니의 빵을 배달하러 왔다가 아치 아래에서 보랏빛 안개가 올라오는 것을 본 것이다. 안개는 햇볕을 피해 아치 그늘에 뭉쳤고, 열린 관리실 틈으로 가늘게 손을 뻗고 있었다.
새별이 모두에게 관리실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반짝이는 노을의 어깨에서 내려 작은 방석으로 갔다. 조금 전에 벗어 둔 천을 가져오려는 것이었다.
노을은 먼저 계단으로 한 발 나갔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반짝이와 계단 사이에 안개 한 줄기가 놓였다.
노을은 몸부터 돌렸다. 손을 내밀면 닿을 거리 같았다. 그러나 줄 옆에서 기다리던 어제의 시간이 문득 떠올랐다. 저쪽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는 데에도 손이 필요했다.
“반짝이가 안에 있어요! 창가 쪽이에요!”
은솔이 노을을 붙잡고 새별에게 위치를 외쳤다. 새별은 주머니에서 흰 천을 꺼내 반짝이 앞에 펼쳤다. 날카롭게 한곳에 모이던 빛이 천 전체로 부드럽게 퍼졌다. 안개가 방향을 잃고 여러 가닥으로 흩어졌다.
“창가로 천천히.” 새별이 말했다. “내 손은 여기 있어.”
반짝이가 천 뒤에서 움직였다. 새별이 창문을 통해 반짝이를 내보내자 은솔이 받아 노을에게 건넸다. 단단이 문을 닫고 손잡이도 잠갔다.

모든 일이 끝난 뒤 노을은 계단에 주저앉았다. 반짝이의 작은 천이 손안에서 구겨졌다.
“그냥 뛰어들려고 했어. 빨리 가면 될 줄 알고.”
은솔이 노을 옆에 앉았다.
“그랬으면 새별은 둘을 찾아야 했을 거야. 네가 알려 줘서 바로 창문을 열 수 있었어.”
반짝이는 노을의 손 위에 내려앉았다.
“내가 천을 가지러 간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네 엄마가 준 거라 놓고 오기 싫었어.”
노을은 천을 펴서 반짝이에게 둘러 주었다. 이번에는 매듭을 조금 느슨하게 했다.
“다음에는 천을 내가 챙길게. 아니, 네가 챙길 때 내가 기다릴게.”
반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였다고 바로 평소처럼 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반짝이는 노을의 손바닥을 떠났다가 곧 다시 내려왔다. 계단 옆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날 때마다 작은 몸이 움찔했다.
노을은 손을 더 꼭 쥐려다 멈췄다. “여기에 그냥 앉아 있을래? 나는 다리가 아직 좀 이상해. 뛰지도 않았는데 막 뛰고 온 것 같아.”
“네가 소리치는 걸 들었어. 나 때문에 화난 줄 알고 빨리 나가려고 했는데, 어디가 창문인지 안 보였어.” 반짝이가 천 끝을 만지작거렸다. “밖에 나오고 나서야 나를 찾는 소리였다는 걸 알았어.”
노을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자기가 부른 이름이 반짝이에게는 다르게 들렸다는 것이 놀라웠다. “다음에는 네 이름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말할게. 내가 모르면 아는 어른을 부르고. 너한테 화가 난 건 아니었어.”
은솔이 물을 건네고 조금 떨어진 계단에 앉았다. 두 친구의 말이 끝날 때까지 출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토리도 지도를 펴는 대신 옆자리에 가방을 놓았다.
세 친구는 햇볕이 계단 한 칸을 더 올라올 때까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반짝이가 먼저 노을의 어깨 높이로 떠오른 뒤에야 노을도 천천히 일어섰다. 토리는 서두르지 않고 가방을 들어 주었다.
계단 위쪽에서는 단단이 사람들을 부두 방향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관리실 문에는 새 표시가 붙었다. 가까이서 상태를 확인하는 일은 새별과 일꾼들이 맡았다. 노을은 지금 다시 들여다보면 안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몸은 그 문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토리는 연필을 꺼내지 않은 채 무슨 일을 기록하면 좋을지 새별에게 물었다. 새별은 안개가 어디에서 보였고 반짝이가 어디에 있었는지 서로 본 자리부터 나눠 적겠다고 했다. 노을은 자신이 못 본 순간도 많았다고 말했다. 새별은 그 부분은 은솔과 단단에게 따로 듣겠다고 답했다.
삐약은 할머니와 함께 빵 바구니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노을이 다가가자 딸랑이를 가슴에 붙였다. “시끄러웠지? 그런데 이번에는 네가 멀리 있어서 말로 부르면 안 들릴 것 같았어.” 노을은 그 소리를 들었지만 무슨 일인지 처음에는 몰랐다고 했다. 그래도 어른들이 바로 돌아보았다고 덧붙였다.
반짝이는 삐약에게 가까이 갔다. 작은 병아리는 별의 접힌 끝을 보다가 다쳤느냐고 물었다. 반짝이는 그 모서리는 처음 바닷가에 떨어졌을 때부터 그랬다고 설명했다. 삐약은 오늘 새로 생긴 상처가 아니라는 것을 듣고 날개를 내렸다. 친구의 몸을 자세히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할머니는 빵을 나누기 전에 아이들이 앉을 자리를 살폈다. 노을은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지만 봉지를 열자 따뜻한 냄새가 났다. 반짝이는 먹지는 않으면서도 봉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노을이 한 조각을 천천히 먹는 동안 토리는 자기 몫을 반으로 잘라 나머지를 여행 가방에 넣었다.
새별이 내려와 문을 어떻게 관리할지 설명했다. 수리한 부품은 제자리에 있지만 멀리서 밀려오는 흐름을 더 살펴야 했다. 로코의 배가 지날 때 필요한 빛은 단단과 항구 관리인이 맞추기로 했다. 노을은 오늘 일을 모두 해결했다는 말보다 누가 어느 자리에 남는다는 말을 듣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은솔은 아이들에게 출발 준비를 잠깐 미뤄도 된다고 했다. 노을은 반짝이에게 배를 타고 싶은지 물었다. 별은 잠깐 바다를 보다가 친구들과 같이 가고 싶다고 답했다. 노을도 같은 마음이었다. 무서웠던 방을 벗어나고 싶어서만이 아니라, 이제 알아보고 싶은 다음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점심 뒤에는 배가 출발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문은 보수를 마쳤지만, 이상한 흐름 때문에 필요한 때만 조금씩 열기로 했다. 단단은 이곳에 남아 아치와 문을 지켰고, 그믐은 점검 기록을 들고 다음 섬으로 먼저 떠났다.
은솔도 항구에서 가방을 다시 쌌다.
“나는 집순이와 바닷길로 돌아갈게. 첫 번째 문을 살피고, 너희 부모님께 얼굴 보고 설명해야겠어.”
노을은 은솔이 끝까지 함께 갈 줄 알았다. 입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꼬리가 아래로 처졌다.
은솔은 몸을 낮추었다.
“새별이 등대섬까지 책임지고 같이 가기로 했어. 네가 원하면 오늘 나랑 돌아가도 돼. 지금까지 온 길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노을은 반짝이와 토리를 보았다. 토리도 긴장한 얼굴이었지만 가방 끈을 놓지 않았다.
“더 가 보고 싶어. 대신 편지 꼭 전해 줘.”
“전할게. 답장도 가져올 방법을 찾고.”
노을은 가방에서 접어 둔 종이를 꺼냈다. 편지 첫 줄에 ‘나는 괜찮아’라고 썼다가, 그 아래에서 연필을 오래 멈추었다. 은솔이 옆에서 기다리자 노을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놀란 것도 적으면 엄마가 당장 돌아오라고 할까? 괜찮다는 말만 쓰면 걱정을 덜 할 것 같은데.”
“네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편지보다 무슨 일이 있었고 지금 누가 곁에 있는지 알고 싶을 거야. 돌아오라는 답장이 오면 그때 함께 이야기하자. 답장을 미리 짐작해서 오늘 일을 지우지는 말고.”
노을은 관리실에서 반짝이를 부른 일, 지금은 함께 부두에 있다는 일을 짧게 적었다. 끝에는 빵 냄새가 나면 집이 생각난다고 덧붙였다. 종이를 접을 때 은솔이 읽지 못하도록 손바닥으로 가리자 은솔은 바다 쪽을 보며 모르는 척했다.
토리는 아빠에게 보낼 지도 사본을 건넸다. 종이 한 귀퉁이에 삐뚤빼뚤한 장갑을 그려 놓았다. “새 친구들이야. 장갑은 친구가 아니고 선장님 이야기인데, 자리가 모자라서 설명은 다음 편지에 쓸게.”
은솔의 우편 가방에 두 사람의 종이가 들어갔다. 노을은 빈손이 조금 허전했지만, 그 종이들은 자신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가방 끈을 다시 고쳐 멨다.
집순이는 로코의 배를 한 번 올려다보았다.
“나는 바다에 집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아. 돌아가서 빛 구멍을 지킬게. 나중에 찾아오려면 마당 밖에서 먼저 불러.”
불씨는 등대섬의 스승을 만나기 위해 배에 올랐다. 로코는 탑승한 사람과 짐을 세 번 확인했다. 큰소리를 치던 선장의 얼굴이 출항 전에는 놀랄 만큼 진지해졌다.
갑판은 부두처럼 가만히 있지 않았다. 노을은 배가 아직 묶여 있는데도 바닥이 움직여 가방 끈을 붙잡았다. 로코는 짐을 손으로 붙들고 있기보다 정해진 자리에 고정하는 편이 낫다고 알려 주었다. 토리는 지도장이 든 가방을 놓고도 끈 끝을 한 번 더 만졌다.
불씨는 돛에서 떨어진 자리를 골라 앉았다. 로코는 불을 쓸 곳이 있으면 먼저 자신에게 말해 달라고 했다. 불씨는 배에서 연습할 생각은 없다며 소개장이 든 주머니를 눌렀다. 반짝이는 햇빛이 강한 쪽을 피해 노을 어깨에 앉았다. 배 위의 네 친구는 각자 편한 자리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새별은 은솔에게 등대섬 도착 뒤 소식을 보낼 곳을 확인했다. 노을은 두 어른의 말을 듣다가 은솔의 소매를 잡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미리 생각하지 않았는데 손이 먼저 움직였다. 은솔이 돌아보자 노을은 엄마에게 오늘 목수건을 안 잃어버렸다고도 말해 달라고 했다.
은솔은 고개를 끄덕이고 반짝이에게도 인사했다. 반짝이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조금 가까이 날아왔다. “집을 찾으면 우편소에도 알려 줄게요. 주소를 잘 알게 되면요.” 은솔은 그 주소로 처음 보낼 편지를 자신이 맡고 싶다고 답했다. 반짝이는 그제야 작별 인사를 또렷하게 했다.
집순이는 탑승판 아래에서 노을을 불렀다. 할머니가 가져온 흰 돌은 마당에 남겨 두었지만, 대신 빈 조개껍데기 하나를 내밀었다. 토리가 지도에 그릴 때 보고 돌려주라는 것이었다. 토리는 지금 그려서 바로 돌려주겠다고 했다. 집순이는 바다에서는 종이가 날아갈 테니 부두에 있을 때 그리라며 재촉했다.
토리는 몸을 낮춰 마지막 선을 그렸다. 조개는 평범하게 생겼지만 안쪽에 초록빛이 조금 있었다. 돌려받은 집순이는 껍데기를 은솔의 빈 주머니에 잠깐 맡겼다. 노을은 작은 친구도 들고 돌아갈 물건이 있다는 것이 좋아 보였다. 자신들의 가방만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로코가 탑승판을 거두기 전에 다시 사람 수를 셌다. 이번에는 반짝이도 대답했고 불씨는 날개까지 접어 자리를 알렸다. 은솔이 부두로 내려서자 노을은 갑자기 자신과 은솔 사이의 짧은 물길이 넓게 느껴졌다. 그래도 돌아가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노을은 난간 안쪽에서 손을 높이 들었다.
집순이가 은솔의 발 옆에서 집게를 흔들었다. 토리는 가방에서 연필을 꺼내려다 그대로 두었다. 지금은 그리지 않고 보는 편이 좋았다. 붉은 아치 아래를 통과할 준비가 끝나자 로코가 항구 쪽 신호를 확인했다. 새 장갑을 낀 두 손이 밧줄을 차례로 풀었다.
배가 항구를 떠날 때 삐약이 부두에서 딸랑이를 흔들려다가 멈췄다. 대신 두 날개를 크게 흔들었다.
토리는 지도 한쪽에 작은 병아리를 그렸다.
붉은 아치가 멀어졌다. 그 아래에서 단단의 은빛 갑옷과 집순이의 분홍 껍데기가 아주 잠깐 나란히 반짝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