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의 갑옷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안쪽에 천을 대어 쇠끼리 부딪히지 않게 해 두었기 때문이다. 대신 투구 위의 붉은 장식만 바람에 흔들렸다.
여관에서 나온 토리는 단단이 아침을 먹는 모습을 먼저 보았다. 기사도 투구를 벗으면 평범하게 숟가락을 든다는 것이 이상하게 새로웠다. 단단은 무릎에 펼친 종이에 돌 그림을 세 개 그리고 있었다. 빵 부스러기가 종이 위에 떨어지자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털었다.
“그 돌들이 다 떨어질 것 같아요?” 토리가 묻자 단단은 아직 모른다고 답했다. 밤사이 달라진 틈을 확인하려고 그린 것이었다. 토리는 자기 지도장을 보여 주고 싶었지만 돌 그림이 너무 간단해서 잠깐 망설였다. 단단은 예쁘게 그리는 것보다 어제와 다른 곳을 알아볼 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노을은 투구 옆에 놓인 작은 천 조각을 발견했다. 갑옷이 시끄럽지 않은 이유를 묻자 단단이 팔 안쪽을 보여 주었다. 쇠판이 겹치는 곳에 천을 대어 두었다. 예전에는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나서 동료가 뒤에서 부르는 말을 자꾸 놓쳤다고 했다.
“기사라면 멀리서도 오는 소리가 나야 멋있지 않아요?” 토리가 물었다. 단단은 숟가락을 놓고 생각했다. “행진할 때는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누가 도와 달라고 부를 때 내 갑옷 소리만 들리면 곤란하잖니.” 노을은 어제 삐약이 수레 소리 속에서 부리를 열던 모습을 떠올렸다.

집순이는 갑옷을 자기 껍데기와 비교했다. 단단은 밤에는 벗어 두지만 집순이는 그럴 수 없었다. 집순이가 비 맞은 갑옷 안에서도 잘 수 있느냐고 묻자 단단은 잠은 잘 수 있어도 다음 날 기분이 몹시 나쁠 것이라고 답했다. 집순이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집게를 한번 접었다.
로코가 계단을 내려오자 단단은 그림을 접어 넣었다. 두 어른은 인사를 했지만 어제 세운 표지판 이야기가 곧 나올 것 같은 공기가 생겼다. 노을은 아침에는 수프보다 그 공기가 먼저 식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단단은 남은 빵을 싸서 주머니에 넣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리는 문밖으로 나가는 단단의 걸음을 보았다. 투구를 쓰기 전보다 키가 조금 커 보였다. 조금 전까지 부스러기를 털던 사람이 다시 길을 지키는 기사가 되어 있었다. 노을은 로코가 놋쇠판을 가져오는 동안 단단이 그린 돌 세 개의 위치를 머릿속으로 되짚었다.
단단은 아침부터 아치 입구를 점검하고 있었다. 로코가 놋쇠판을 들고 다가가자 그는 긴 막대를 가로로 들었다.
“선장, 어제도 말씀드렸습니다. 다리 아래쪽 받침을 확인하기 전에는 건너편으로 갈 수 없습니다.”
“확인하려면 가야 하고, 가려면 확인부터 하라니. 이대로 둘이 여기 서서 나이를 먹자는 건가?”
“배를 아치 밑으로 넣겠다는 계획은 안 됩니다. 지금은 낙석 구역이에요.”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배를 몰 것 같소?”
로코의 목소리가 커졌다. 단단도 턱을 들었다.
노을은 둘 사이에서 놋쇠판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만 보았다. 문이 고쳐지지 않으면 항구 안쪽 등불도 켜지지 않았다. 밤에 들어온 배 한 척은 물길을 찾지 못해 바깥 만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새별이 막대 앞에 지도를 폈다.
“두 분 다 이쪽을 봐 주세요.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표시했으면 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저 친구가 전부 지웠소.”
“어떤 위험 때문에 지웠는지도 함께 적죠.”
단단은 한숨을 내쉬고 무릎을 굽혔다. 로코도 망토 대신 외투 자락을 깔고 앉았다.

배가 지나가는 길에는 떨어질 수 있는 돌이 세 개 있었다. 다리 위에는 부러진 판자 두 장이 있었다. 그러나 절벽의 안쪽에는 오래된 화물줄이 남아 있었다. 예전에 항구와 관리실 사이에서 짐을 옮기던 줄이었다.
“화물 바구니를 타면 되겠네요!” 토리가 말했다.
단단은 곧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태우는 장비가 아니야. 하지만 도구는 보낼 수 있겠다.”
“그럼 도구만 저기 가서 혼자 일해요?”
토리는 말하고 나서 너무 날카로웠나 싶어 입을 다물었다. 단단은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지도에 안쪽 점검 계단을 그렸다.
“나는 이 길로 먼저 가서 받침을 볼 수 있어. 어른 한 명이 안전줄을 매고 지나갈 폭은 돼. 혼자 가면 돌아올 때 줄을 정리해 줄 사람이 없어서 기다리고 있었어.”
로코가 단단을 쳐다보았다.
“그 이야기는 왜 어제 안 했소?”
“선장님이 배 이야기를 하시길래—”
“내가 끝까지 안 들었군.”
로코가 턱을 긁었다.
“줄 다루는 일이라면 맡기시오. 다만 내가 멈추라고 하면 기사님도 멈춰야 하오. 갑옷 입은 사람이 발을 헛디디면 줄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니까.”
단단은 잠시 투구를 만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단은 지도의 화물줄 옆에 손가락을 놓았다. “다만 내려갔는데 받침이 예상보다 약하면 점검만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도구까지 보냈으니 끝내고 오라는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로코가 코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할 생각이었는데 미리 들켰군. 배가 기다리고 있으니 나도 자꾸 마음이 급해져서 말이오. 하지만 도구를 다시 끌어올리는 건 할 수 있지. 기사가 깔린 바위를 끌어올리는 건 내 줄 솜씨로도 어렵고.”
노을은 지도에 그려진 바깥 만을 바라보았다. 멀리 기다리는 배에도 빨리 들어오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었다. 그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단단이 누구를 기다리게 하는지만 생각하고, 무엇을 막으려는지는 잘 보지 못했다.
“저 배에는 오늘 계획을 알려 줬어요? 계속 기다리기만 하면 문이 언제 열리는지 모르잖아요.” 노을이 묻자 새별은 항구의 신호 담당자에게 소식을 보내겠다고 했다.
단단이 자기 막대를 조금 옆으로 치웠다. “점검을 마치는 시각과 길을 여는 시각은 나눠서 알려 주세요. 확인해 보고 나서도 더 고쳐야 할 수 있으니까요.”
로코는 지도 끝이 날리지 않도록 모자를 올려놓았다. 아까는 서로의 말을 막느라 바빴던 두 어른이 이제는 같은 길의 서로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단단이 내민 손을 로코가 단단히 잡았다.
“동의합니다.”
계획이 생기자 일이 나뉘었다. 항구 일꾼들이 화물줄을 점검하고, 로코는 매듭을 다시 묶었다. 은솔은 약방에서 붕대와 물을 받아 왔다. 새별은 출입선을 옮겨 작업하는 곳과 기다리는 곳을 분명히 나누었다.
화물 바구니는 오랫동안 처마 밑에 매달려 있었다. 바닥에 쌓인 먼지를 털자 녹슨 못 하나가 굴러 나왔다. 일꾼은 바구니를 비운 채로 먼저 줄을 따라 보내 보았다. 가운데에서 살짝 기울었다가 돌아오는 모습을 로코가 유심히 보았다. 매듭 하나만 바꾸면 끝날 줄 알았던 토리는 시험할 것이 많다는 걸 알았다.
로코는 줄이 바퀴에 닿는 곳을 가리켰다. “도구를 한쪽에 몰면 여기서 돌아갈 수 있소. 무거운 건 가운데, 작은 건 따로 묶읍시다.” 단단이 도구 목록을 읽었고 일꾼이 순서대로 놓았다. 둘은 아까보다 말수가 적었지만 같은 물건을 두고 다투지는 않았다.
불씨는 표시용 천을 가위로 자르는 일을 맡았다. 긴 천은 망치, 짧은 천은 집게 꾸러미에 붙였다. 반짝이는 천 위에서 자기 그림자가 어떻게 생기는지 보다가 붉은 천과 갈색 천이 그늘에서는 비슷해 보인다고 말했다. 새별은 색뿐 아니라 길이로도 나누길 잘했다고 했다.
토리는 단단의 지도에 안쪽 계단을 다시 그렸다. 종이 위에서는 손가락 한 마디였지만 실제로는 굽이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노을이 어디쯤 가면 단단이 안 보이느냐고 물었다. 단단은 바위 모서리를 짚고, 그 뒤로는 줄과 정해 둔 신호로 소식을 나누게 된다고 설명했다.
로코는 아이들이 없는 쪽에서 단단과 줄 신호를 맞췄다. 잡아당기는 힘이 너무 약하면 바람에 흔들리는 것과 구별하기 어려웠다. 너무 세게 당기면 줄이 걸린 것으로 보일 수 있었다. 노을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짧은 신호 하나도 미리 해 봐야 같은 말이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동안 은솔이 물과 붕대를 놓을 자리를 마련했다. 단단은 갑옷 옆의 튀어나온 장식을 풀어 맡겼다. 좁은 계단에서 돌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로코는 그것을 보고 자기 외투도 벗었다. 둘의 모습은 아침보다 덜 근사했지만 움직임은 가벼워졌다.
노을은 빈 천 조각을 들고 어디에 붙일지 찾아보았다. 이미 모든 도구에는 표시가 달려 있었다. 줄을 가져다주려고 하자 일꾼이 필요한 것은 다 옮겼다고 했다. 노을은 손에 남은 천을 작게 접었다. 주변에서는 모두 자기 이름이 불릴 자리를 찾은 것 같았는데, 자신의 자리는 아직 비어 있었다.
노을은 자기가 할 일이 없는 것 같았다. 토리는 지도를 고치고, 집순이는 줄이 닿는 바닥의 날카로운 돌을 찾아내고 있었다. 반짝이는 불씨와 함께 도구에 붙일 표시를 만들었다.
“나도 저쪽으로 가면 안 돼요? 몸이 작으니까 계단을 지나가기 쉬울 텐데.”
노을이 묻자 단단이 얼굴을 돌렸다.
“쉽게 들어가는 것과 돌아올 수 있는 건 달라. 오늘은 여기서 기다려 줘.”
노을의 귀가 저절로 눕자 단단이 말을 덧붙였다.
“기다리는 동안 내가 줄을 세 번 당기면 로코를 불러 줘. 말소리가 바람에 묻힐 때 쓰는 신호야. 대신 다른 일을 하러 떠날 때는 누군가에게 그 자리를 넘겨야 해.”
노을은 줄 옆에 앉았다. 작고 재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단단이 절벽 안쪽으로 사라지고, 손바닥 밑의 줄만 천천히 움직이자 등을 곧게 폈다.
한 번, 잠깐 쉬고 두 번.
노을이 바로 로코를 불렀다.
줄 끝에서 도구를 내려 달라는 신호가 왔다. 로코가 바구니를 내리는 동안 노을은 손을 떼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줄의 떨림으로 전해졌다.
한참 뒤 토리가 물병을 가져왔다. 노을은 받으려다 손을 멈췄다. 물병 뚜껑을 돌리려면 두 손이 필요했다. 토리가 열어 주겠다고 했지만 노을은 먼저 로코를 불렀다.
“잠깐 손을 바꾸고 싶어요. 계속 같은 자세로 있었더니 손가락이 뻣뻣해졌어요. 토리한테 맡겨도 되나요?”
로코가 빈 바구니를 고정한 뒤 다가왔다. “내가 받을게. 토리는 아직 당기는 신호를 직접 확인하지 않았으니까. 쉬고 돌아와서 네가 계속할 수 있으면 그때 다시 맡자.” 그는 노을의 손 바로 옆을 잡고, 이제 놓아도 된다고 말했다.
노을은 물을 마시고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토리가 옆에 앉아 지도를 펼쳤지만 노을의 눈은 자꾸 줄 쪽으로 돌아갔다. 자리를 비운 동안 꼭 중요한 신호가 올 것만 같았다.
“내가 없어도 잘하고 있네.” 노을이 중얼거리자 토리가 웃었다. “그래야 네가 물도 마시지. 지도도 내가 잠깐 안 본다고 섬이 도망가지는 않더라. 연필을 놓는 건 아직 좀 어렵지만.”
노을은 마지막 물 한 모금을 천천히 삼켰다. 다시 줄 옆으로 돌아갔을 때 로코는 단단이 보낸 소식부터 알려 주었다. 지금 어디까지 갔는지 듣고 손을 넘겨받으니, 처음 맡았을 때보다 줄 너머의 모습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 단단이 돌아왔다. 갑옷 무릎 부분에 붉은 흙이 묻어 있었다.
“받침은 살아 있습니다. 판자를 갈고 난간을 보강하면 아치를 다시 쓸 수 있어요. 내일 오전까지 길을 만들겠습니다.”
로코는 웃으려다 손바닥을 털었다. 줄을 잡고 있던 자리에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단단이 그 손을 보고 말했다.
“오늘은 제가 저녁을 사겠습니다.”
“장갑 한 짝도 들어가나?”
단단은 잠시 생각했다.
“두 짝을 드릴 테니, 다음에는 양손으로 잡으세요.”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 단단은 사용한 줄의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로코는 새 장갑 이야기를 하면서도 매듭 하나를 풀어 밧줄 안쪽을 살폈다. 일이 끝났으니 그냥 감아 두면 될 줄 알았던 노을은 그 곁에 앉았다. 줄이 돌 모서리에 닿았던 자리에 잔털이 조금 일어나 있었다.
“오늘 버텼으니 내일도 버틴다고 적을 수는 없겠군.” 로코가 말했다. 단단은 그 부분을 따로 표시하고 작업용 줄을 점검하는 사람에게 보여 주겠다고 했다. 노을은 자신이 손으로 느낀 신호가 이 거친 줄을 지나왔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 작은 떨림은 금방 사라졌지만 흔적은 다른 곳에 남아 있었다.
토리는 단단이 보고 온 계단을 지도 옆에 그렸다. 단단은 가운데 굽이를 조금 더 좁게 고쳐 달라고 했다. 토리가 연필을 건네자 단단은 큰 손으로 조심스럽게 선을 그었다. 갑옷을 입은 기사에게 작은 연필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선은 토리의 것보다 더 가늘었다.
“손에 힘을 많이 주면 종이가 찢어져서.” 단단이 말했다. 토리는 자신도 급하면 선이 굵어진다고 했다. 노을은 지도를 보면 누가 서둘렀는지 알 수 있겠다고 놀렸다. 토리는 그러면 노을이 그린 빵집은 늘 서두른 그림이라고 받아쳤다. 노을이 그린 빵은 창문보다 컸다.

저녁 식당에서는 단단이 먼저 의자를 옮겨 집순이의 자리를 만들었다. 로코는 장갑 한 짝만 낀 손으로 잔을 들었다. 새 장갑은 내일 아침에 받기로 했다. 노을은 둘이 또 다툴까 봐 대화를 듣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어느 가게 장갑이 바닷물에 오래 버티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노을은 자기 손바닥을 펴 보았다. 붉은 자국은 거의 옅어졌다. 단단은 줄 신호를 잘 알아봐 주었다고 했다. 노을은 처음에는 재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단단은 자신도 기다리는 일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오늘은 건너편에서 누가 기다린다는 걸 아는 것이 든든했다고 답했다.
창밖의 아치는 아직 어두웠다. 내일 고칠 판자들은 작업장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노을은 오늘 문을 열지는 못했지만 내일 해야 할 일이 어제보다 선명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집으로 보낼 다음 편지에는 줄을 잡고 가만히 앉아 있었던 이야기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