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안내소에는 어제 없던 그림이 붙어 있었다. 붉은 아치 아래에 큰 돌이 떨어지는 그림이었다. 그 옆에는 굵은 화살표가 항구로 가는 우회로를 가리켰다.
새별은 길잡이와 우회로를 확인하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정한 점검 시간까지는 누구나 광장에서 기다려야 했다.
광장에는 막 문을 연 가게들이 천막을 펴고 있었다. 노을은 집에서라면 아직 식탁 의자를 당길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여관에서 먹은 아침 수프는 조금 짰다. 토리는 그래서 물을 두 번이나 마셨다며 물병을 흔들었다. 집순이는 원래 바닷물은 그보다 더 짜다고 했다.
새별이 돌아올 때까지 은솔은 안내소 옆에서 편지 꾸러미를 넘겼다. 종이마다 다른 집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어제 그믐이 지나간 좁은 길의 소식도 함께 전해졌다. 토리는 지도에 자신이 잔 여관을 표시하면서 여관 창문이 향한 쪽을 다시 물었다. 어젯밤에는 어두워 바다의 방향을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노을은 그림 안내판 앞에서 새로 온 여행객을 보았다. 여행객은 돌이 떨어지는 그림을 먼저 보고 우회로 화살표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글을 다 읽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제 은솔이 그림을 붙이겠다고 한 말이 비로소 눈앞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토리, 네 지도에도 떨어지는 돌을 그려 둘 거야?” 노을이 물었다. 토리는 연필을 돌리며 대답했다. “그런데 돌을 치우면 내 그림은 어떻게 하지? 길은 계속 바뀌잖아.” 새별이 돌아오며 오늘 날짜를 붙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길을 다시 확인한 사람이 다른 날짜로 고칠 수 있다고 했다.

토리는 날짜를 작은 글씨로 적었다. 지도 모서리에 글이 점점 많아졌다. 노을은 집 그림보다 글씨가 커질 것 같다고 했다. 토리는 그렇다면 종이를 더 붙이면 된다고 말했지만, 가방 속 남은 종이를 한번 세어 보았다. 여행은 생각보다 많은 빈칸을 필요로 했다.
집순이는 광장 바닥이 햇볕을 받아 따뜻해지자 벤치 그늘 쪽으로 움직였다. 반짝이는 벤치 등받이에 잠깐 앉았다. 여관 창문보다 높지 않은 자리였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이 훨씬 많았다. 노을은 여기에 오래 앉아 있으면 이 마을의 신발 모양을 전부 외울 것 같다고 말했다.
토리는 신발 모양으로 누가 어디로 가는지 맞혀 보자고 했다. 노을은 진흙 묻은 장화를 보고 밭에 간다고 했지만 장화 주인은 생선 가게로 들어갔다. 토리는 깨끗한 구두가 여관으로 갈 거라 했는데 구두 주인은 천막을 펴기 시작했다. 두 친구가 틀린 짐작을 세고 있을 때 벤치 아래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노을은 벤치 아래에서 작은 노란 덩어리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병아리 한 마리가 바닥에 귀를 가까이 대고 있었다. 어제 바닷길 쉼터에서 노인의 바구니 안에 있던 병아리였다.
“거기 뭐가 있어?”
병아리가 고개를 들었다.
“딱, 딱, 소리가 나. 아까부터.”
이름은 삐약이었다. 마을의 빵집을 운영하는 할머니와 함께 어제 바닷길을 건너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장터에 나갔고 삐약은 안내소 앞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토리가 벤치에 앉아 신발을 털었다.
“밑에 자갈 밟는 소리 아닐까? 여긴 어디나 돌이잖아.”
삐약은 부리를 열었다가 닫았다. 노을은 그 모습을 보고 자세를 낮췄다.
“언제부터 났어? 우리 발소리랑 달라?”
“아까 수레가 지나간 뒤부터. 수레가 멀리 갔는데도 계속 났어. 나는 밑에 있어서 잘 들려.”
노을이 땅에 귀를 대 보았지만 사람들 발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반짝이도 벤치 아래를 비췄다. 틈 속에는 먼지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토리는 벤치에서 내려와 자기 신발 밑창을 살폈다. 끼어 있던 자갈 하나를 빼서 손바닥에 올렸다. 삐약이 듣는 소리가 이것 때문이기를 바랐지만, 작은 부리는 여전히 바닥을 향해 있었다.
“내가 아까 너무 빨리 말했지? 자갈일 거라고. 나는 여기 올라와 앉아 있었으니까 네가 듣는 소리는 못 들었을 수도 있겠네.”
삐약은 잠깐 토리를 올려다보았다. “다들 지나가는 소리라고 하면 나도 그렇게 들리는 것 같아져. 그런데 조용해지면 다시 달라. 딱 한 번씩, 밑에서 누가 손톱으로 두드리는 것 같아.”
노을은 바닥에 떨어진 먼지를 건드리지 않고 그 옆에 작은 나뭇잎을 놓았다.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반짝이는 더 깊이 들어가려다가 벤치 앞에서 멈췄다.
“내가 들어가서 볼까?” 반짝이가 묻자 노을은 고개를 저었다. “틈이 얼마나 깊은지도 모르잖아. 새별한테 이 자리를 보여 주자. 우리가 들었는지 시험하는 동안 다른 사람이 밟으면 안 되니까.”
토리는 삐약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쪼그려 앉았다. 이번에는 무슨 소리인지 먼저 정하지 않았다. 세 친구가 말을 멈추자, 광장을 가로지르는 수레의 덜컹거림이 훨씬 크게 다가왔다.
그때 우회로를 먼저 살피러 간 일꾼이 돌아왔다.
“수레는 잠깐만 기다리고 걸어가는 분들부터 준비하세요!”
삐약이 앞으로 나왔다.
“저기, 바닥에서—”
시장으로 들어오는 수레 바퀴가 덜컹거렸다. 삐약의 말이 소음 속에 묻혔다. 토리가 짐을 메려다 삐약을 돌아보았다. 작은 부리가 세 번째로 열리고 있었다.
토리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잠깐만요! 여기서 소리가 난대요!”
주변이 조용해졌다. 갑자기 많은 눈이 몰리자 삐약은 벤치 다리 뒤로 한 걸음 숨었다.
“미안.” 토리가 목소리를 낮췄다. “네 얘기를 못 들어서 불렀어. 내가 대신 말할까, 아니면 네가 말하는 동안 옆에 있을까?”
삐약은 벤치 다리를 잡은 발을 풀었다.
“옆에 있어 줘.”
삐약은 수레가 지나간 자리와 먼지가 떨어지는 틈을 설명했다. 새별이 일꾼에게 기다려 달라고 한 뒤, 긴 막대로 벤치 옆 돌판을 살짝 두드렸다. 속이 빈 소리가 울렸다.
광장 가장자리를 따라 갈라진 선이 있었다. 그 선은 우회로 입구 아래로 이어졌다.
일꾼의 얼굴이 굳었다. 사람들을 뒤로 물리고, 무거운 수레도 반대편으로 옮겼다. 얼마 뒤 비어 있는 벤치의 한쪽 다리 아래에서 돌이 툭 내려앉았다.
큰 사고가 날 만큼 깊은 구멍은 아니었다. 그러나 무거운 수레가 올라갔다면 바퀴와 짐이 한꺼번에 기울어졌을 것이다.
먼지가 가라앉은 뒤에도 아무도 바로 벤치를 다시 쓰려고 하지 않았다. 일꾼 둘이 벤치를 들어 단단한 광장 안쪽으로 옮겼다. 새별은 벤치가 놓였던 자리까지 줄을 넓혔다. 토리는 노을이 놓아둔 나뭇잎이 줄 안쪽에 남은 것을 보았다. 조금 전 자신이 앉아 있던 높이에 빈 공기가 떠 있었다.
“저기 내가 발을 올리고 있었는데.” 토리가 말했다. 노을은 친구의 바지 무릎에 남은 먼지를 보았다. 그때는 그 먼지가 그냥 오래된 벤치의 먼지인 줄 알았다. 반짝이는 말없이 목수건 곁으로 돌아왔다. 삐약은 새로 옮겨진 벤치와 원래 있던 자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일꾼이 삐약에게 어느 쪽에서 먼저 소리가 났는지 다시 물었다. 삐약은 바닥으로 내려가 설명하려 했다. 새별이 줄 밖에서 가리켜도 된다고 말하자 삐약은 노을 옆의 낮은 돌 위에 올라섰다. 이 자리에서는 아까처럼 먼지가 보이지 않았다. 노을이 벤치의 오른쪽 다리가 있던 곳을 손으로 짚어 주었다.
수레 주인은 바퀴를 살피다가 작은 자루를 끌어 내려 짐을 다시 쌓았다. 그는 삐약에게 고맙다고 했다. 삐약은 그 말을 듣고도 날개를 바로 펴지 못했다. 사람들이 자기를 보는 동안에는 무슨 표정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부리만 조금 움직였다. 토리는 그 앞에 서 있지 않고 나란히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별은 다른 일꾼과 균열의 길이를 확인했다. 깊은 구멍이 아니더라도 물이 어디로 빠졌는지 살펴야 했다. 노을은 일이 끝난 줄 알았는데 어른들의 질문이 더 많아지는 것을 보았다. 삐약이 소리를 들었다는 한마디가 여러 사람이 해야 할 일로 나뉘고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여기 있는 줄 아실까?” 삐약이 물었다. 은솔은 장터 쪽을 아는 안내소 직원에게 빵집으로 소식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삐약에게는 은솔과 함께 이곳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돌아갈 거라고 정확히 알리겠다고 했다. 삐약은 그제야 바닥을 향하던 고개를 조금 들었다.
토리는 물병 뚜껑을 열었다가 작은 친구가 마시기에는 너무 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집순이가 자기 조개 접시를 꺼내 내밀었다. 은솔이 깨끗한 물로 한번 헹궈 주었다. 삐약은 물에 부리를 대고 삼킨 다음, 접시 가장자리로 자꾸 떠는 자기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삐약은 뒤늦게 떨기 시작했다.
“내가 틀렸으면 어떡하나 했어. 전에도 물방울 소리를 돌 깨지는 소리라고 한 적이 있거든.”
새별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틀렸는지 확인하는 건 우리 일이야. 이상한 걸 들었다는 건 먼저 말해 줘야 알 수 있어. 오늘처럼.”
“다음에도 내 말을 못 들으면?”
새별은 잠깐 생각하다 안내소에서 나무 딸랑이를 가져왔다. 원래 길을 점검할 때 서로를 부르는 도구였다.
“목소리가 묻히면 이걸 흔들어 줘. 다만 아무 데서나 재미로 흔들면 진짜 필요할 때 못 알아들을 테니, 그 약속은 같이 지켜 줘.”
삐약이 두 발로 딸랑이를 끌어안았다. 토리는 ‘작은 친구 전용’이라고 쓰려다가 연필을 멈췄다.
“그냥 ‘도움이 필요해요’가 낫겠다. 나도 목소리 안 나올 때가 있을 테니까.”

오후가 되어서야 항구로 내려가는 길이 열렸다. 구멍이 난 곳에는 판자를 임시로 놓고, 수레는 다른 길로 보냈다. 은솔은 빵집 할머니에게 삐약을 데려다주며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보다 먼저 삐약의 발에 흙이 끼었는지 살폈다.
삐약은 따뜻한 행주로 발을 닦으면서도 딸랑이를 놓지 않았다.
할머니가 행주의 깨끗한 쪽을 다시 접었다. 삐약의 발가락 사이에 남아 있던 흙이 천 위로 묻어났다. 빵집 안에서는 갓 구운 빵이 식고 있었지만 삐약은 좋아하는 부스러기에도 부리를 대지 않았다.

“화났어? 장터에서 돌아왔는데 내가 안내소에 없어서.”
“놀라기는 했지. 네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어디부터 찾아야 할지 몰랐거든. 다음에는 같이 가는 어른이 빵집에 한마디 남겨 주면 좋겠구나. 그 부탁은 할머니가 어른들한테 할게.”
할머니는 삐약의 날개를 억지로 펴지 않고 행주를 옆에 두었다. 노을은 자기 앞의 물잔을 삐약 쪽으로 조금 밀었다. 큰 잔이라 부리가 닿지 않자 할머니가 작은 접시에 물을 따라 주었다.
토리가 연필을 굴리다가 말했다. “나는 크게 부르면 네가 좋아할 줄 알았어. 사람들이 다 쳐다볼 거라는 건 생각을 못 했고. 다음에는 부르기 전에 네 옆에 서도 되는지부터 물어볼게.”
삐약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오늘은 옆에 있어서 좋았어. 혼자 설명했으면 수레가 먼저였는지 소리가 먼저였는지도 헷갈렸을 거야.” 그제야 딸랑이를 내려놓은 작은 날개가 빵 부스러기 쪽으로 움직였다.
할머니는 잘게 부서진 빵을 작은 종이에 나눠 주었다. 삐약은 부스러기 중에서도 갈색 껍질이 조금 붙은 것을 먼저 골랐다. 노을이 왜 그것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삐약은 한 번에 바삭한 소리가 난다고 대답했다. 노을도 같은 조각을 입에 넣었다. 자기가 씹는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렸다.
“오늘은 소리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빵까지 신경 쓰여.” 토리가 말했다. 삐약은 빵집에도 여러 소리가 있다고 했다. 오븐 문이 닫히는 소리, 밀가루 자루가 끌리는 소리, 할머니가 반죽을 탁자에 놓는 소리는 모두 달랐다. 할머니는 손님이 오지 않는 아침에도 삐약 덕분에 조용할 틈이 없다고 웃었다.
노을은 삐약이 늘 위험한 소리만 찾는 친구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 좋아하는 소리를 말할 때는 부리가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할머니가 가게 문 앞의 빗장을 푸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나면 자기도 창가에 나가 마을 사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토리는 딸랑이 손잡이를 보고 끈을 묶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삐약은 날개에 감기면 움직이기 불편하다고 했다. 결국 할머니가 창가 옆에 낮은 고리를 달아 주기로 했다. 삐약이 당기면 바로 꺼낼 수 있는 높이였다. 토리는 고리 자리를 연필로 표시했다가 삐약의 키에 맞춰 조금 낮췄다.
반짝이는 빵집 창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다. 삐약이 유리 속 별을 쪼려다 실제 반짝이를 보고 놀랐다. 반짝이는 자기가 둘이 된 건 아니라고 했다. 삐약은 알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부리가 이미 유리 자국을 남긴 뒤였다. 노을이 웃자 삐약도 작은 소리로 따라 웃었다.
은솔은 출발 전에 빵 봉지를 가방에 넣었다. 할머니가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자 은솔은 저녁에 먹을 몫은 따로 사겠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으로 받은 작은 봉지와 여행을 위해 산 큰 봉지가 나란히 놓였다. 노을은 집에서 들고 나왔던 빵 봉지를 떠올렸다. 멀리 와도 빵을 싸 주는 손은 비슷했다.
삐약은 딸랑이를 고리 가까이 놓고 창가 의자에 올랐다. 이번에는 바닥에 귀를 대지 않았다. 반짝이에게 창문에서 쉬어도 된다고 작은 자리를 내주었다. 두 친구는 잠깐 나란히 앉아 항구로 내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삐약의 어깨에서 아까보다 천천히 힘이 빠졌다.
“나 내일도 소리를 들어 볼 거야. 하지만 밤에는 잘 거야. 아까부터 계속 들었더니 귀가 피곤해.”
노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항구 쪽에서 누군가 크게 외쳤다.
“붉은 아치의 보물을 구경할 분! 눈으로 보는 건 공짜, 만지는 건 선장 허락부터!”
삐약이 귀를 움츠렸다.
“저 아저씨는 딸랑이 없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