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절벽 마을의 지붕은 모두 낮았다. 바람이 모서리를 붙잡지 못하도록 납작한 돌을 얹어 놓았기 때문이다. 노을 일행은 진료소 약방에 상자를 전한 뒤, 광장 옆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여관 문에는 물고기 모양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토리는 물고기 머리를 당겨야 할지 꼬리를 밀어야 할지 잠깐 망설였다. 은솔이 꼬리 쪽을 눌러 문을 열었다. 안에서는 젖은 외투와 따뜻한 양파 냄새가 났다. 노을은 처음 보는 방에 들어갔는데 저녁 냄새만은 집과 비슷해서 조금 안심했다.
주인은 손님 수를 세다가 반짝이와 집순이에서 멈췄다. “작은 친구들은 침대가 필요하니, 아니면 따로 마련해 줄 자리가 있니?” 노을은 대답하려다 반짝이를 보았다. 반짝이는 등잔 가까이 쉬고 싶다고 했고, 집순이는 문 아래로 바람이 들어오는 자리만 피하면 된다고 했다.
“침대 하나에 다 올라가면 편하지 않아?” 토리가 물었다. 집순이는 자기 껍데기를 톡 쳤다. “너희가 자다가 구르면 내 지붕이 먼저 눌려. 바닥에서 잘래.” 주인은 짧은 나무 상자를 가져와 입구에 경사판을 대 주었다. 집순이는 안까지 걸어 들어갔다가 나와서 괜찮다는 듯 집게를 한 번 폈다.

방을 기다리는 동안 노을은 목에 맨 빨간 천을 풀어 소금을 털었다. 반짝이가 비켜 앉자 천이 생각보다 가벼웠다. 바닷길에서 계속 별을 받치고 있었던 어깨에는 작은 무게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토리는 젖은 신발을 벗고 발가락을 폈다. 가장 먼저 여행자가 된 것은 발바닥 같다고 말했다.
은솔은 약방에서 받은 인수증을 우편 가방 안쪽에 넣었다. 토리가 왜 종이를 또 받느냐고 묻자, 상자가 어디까지 왔는지 보내는 사람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노을은 반짝이를 데려다주면 누가 그런 종이를 줄지 궁금했다. 반짝이는 별등에도 이름을 적는 곳은 있지만 자신이 지금 돌아가도 기다리는 별이 바로 알지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럼 우리 이름을 먼저 알려 주면 되겠다. 반짝이를 데리고 온 노을과 토리라고.” 노을의 말에 토리가 지도장을 들어 보였다. “집순이도. 오늘 길을 알려 준 친구가 빠지면 안 되지.” 집순이는 지금은 자신의 마당을 보러 가는 중이라고 정정했다. 노을은 그렇지만 오늘 같이 왔다는 것은 같다고 했다.
주인이 창가의 긴 탁자를 가리켰다. 햇빛이 아직 남아 있어 글씨를 쓰기 좋은 자리였다. 토리는 젖은 가방 밑을 먼저 닦고 지도장을 꺼냈다. 노을은 그 옆에서 신발 속 모래를 빈 접시에 털었다. 집순이가 자기 방에 뿌리지만 말라고 미리 말하자 두 여우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은솔이 주인에게 방을 부탁하는 동안 토리는 창가에 지도를 펼쳤다. 바닷길 뒤에 붉은 아치를 그리려는데 창밖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숯빛 여우였다.
여우는 빨간 머리띠의 끝을 옷 안으로 밀어 넣고 여관 옆 벽을 살폈다. 허리에는 편지통이 매달려 있었다. 조금 전 돌길에서 스쳤던 검은 천은 그 여우의 어깨 천과 같은 색이었다.
“아까부터 우리를 따라왔나?” 토리가 속삭였다.
노을도 창문 가까이 갔다. 여우가 벽의 돌 하나를 빼더니 그 뒤에 든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하필 그 순간, 토리의 새 지도가 바람에 창밖으로 날아갔다.
숯빛 여우가 종이를 잡았다.

토리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건 내 거예요!”
여우는 놀란 듯 고개를 들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골목 끝에서 쇳소리가 울리자 그는 지도를 손에 든 채 몸을 돌렸다.
토리가 문으로 뛰어가자 은솔이 앞을 막았다.
“어디로 가는지 말부터 해. 무슨 일이야?”
“누가 지도를 가져갔어요. 지금 안 따라가면—”
창문 밖에서 손이 올라왔다. 숯빛 여우가 지도를 창틀에 얹었다. 모서리에는 돌이 하나 눌러져 있었다. 여우는 두 번 짧게 손가락을 움직이고 다시 골목으로 사라졌다.
토리는 지도를 주워 들었다. 찢어지지도, 젖지도 않았다. 오히려 바람에 접힌 부분이 반듯하게 펴져 있었다.
“저 손짓이 무슨 뜻인데요?”
새별이 창밖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믐. 잠깐만 기다려요.”
새별의 부름에 여우가 멈췄다. 가까이서 보니 어깨 천에는 여기저기 바느질한 자국이 있었고, 눈 아래에는 잠을 못 잔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새별이 소개했다. 그믐은 섬 사이의 점검 소식을 나르는 전령이었다. 바람이 세서 배가 늦으면 절벽 안쪽의 좁은 길을 걸어 우편을 전했다.
토리가 팔짱을 꼈다.
“전령이면 말을 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가져가는 줄 알았잖아요.”
“종을 놓칠까 봐 급했어. 저 종이 울리면 동쪽 바위문이 닫히거든.”
그믐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분명했다.
“돌려줄 생각이라는 걸 손으로 보였어.”
“그건 아는 사람끼리만 통하죠. 나는 처음 봤는데요.”
토리는 말끝을 세게 내고 나서 지도를 가슴에 붙였다. 구겨지지 않은 종이를 보고도 아직 화가 났다. 방금 전에는 도둑을 잡으러 뛰어나갈 생각이었는데, 이제 그 생각이 자기 얼굴에 쓰여 있을 것 같아 더 불편했다.
그믐은 편지통의 끈을 고쳐 매다가 멈췄다. “길에서 말을 길게 하면 바람에 반쯤 날아가. 그래서 다른 전령들과는 손으로 약속해 둔 게 있어. 두 번 움직이면 돌려주겠다는 뜻이었어.”
“나는 두 번 빨리 도망가겠다는 뜻인 줄도 몰랐어요. 그냥 아무 뜻도 모르겠던데요.”
노을이 토리의 옆구리를 살짝 건드렸다. 토리는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했다. “지도에는 오늘 처음 건넌 길이 있어요. 아빠한테 보여 주기로 했단 말이에요. 잃어버리면 새 종이에 똑같이 못 그려요.”
그믐의 시선이 지도 아래쪽에 적힌 작은 글씨에 머물렀다. 집순이의 할머니가 알던 길이라는 문장이었다. 그는 편지통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종이 한 장이라고 생각했구나. 네가 그 안에 뭘 적었는지는 보지도 않고.” 새별은 둘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골목의 종소리가 멎고 나서야 토리의 꼬리 끝도 조금 내려왔다.
그믐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토리 쪽으로 몸을 돌려 또박또박 말했다.
“네 지도를 바람에서 잡았어. 허락 없이 들고 돌아서서 미안해. 다음에는 먼저 말할게.”
토리는 팔짱을 조금 풀었다.
여관 주인이 따뜻한 수프를 내왔다. 그믐은 그냥 가려다가 새별에게 붙들려 빈 의자에 앉았다. 집순이는 테이블 위 접시 하나를 받아 자기 자리로 삼았다.

그믐은 숟가락보다 먼저 편지통이 기울지 않았는지 살폈다. 노을은 자리에 앉아도 가방을 내려놓지 않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은솔은 옆 의자 등받이에 마른 천을 걸어 주었다. 그믐이 망설이다 편지통을 기대 놓자 천에 묻은 빗물이 둥글게 번졌다.
“오늘 비 안 왔는데요.” 토리가 말했다. 그믐은 손바닥으로 어깨 천을 짰다. “절벽 북쪽은 아직 비가 왔어. 길이 굽어 있으니까 같은 하늘처럼 보여도 날씨가 다르지.” 토리는 자신이 지도를 펼친 이 탁자 밖에 다른 날씨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작은 종이에 해 하나만 그려 놓았던 것을 지우고 싶어졌다.
집순이는 수프 옆에 나온 채소 조각 중에서 먹을 것을 골랐다. 그믐의 손등에 가는 흠집이 보였다. 집순이가 자갈 틈을 지나왔느냐고 묻자 그믐은 가시덤불을 돌다가 긁혔다고 했다. 집순이는 자기 껍데기 옆의 금을 보여 주었다. 그믐은 몸을 낮춰 그 금을 보고 다음 돌길에는 낮은 가시가 적다고 알려 주었다.
토리는 여전히 지도를 자기 쪽으로 당겨 놓고 있었다. 그믐은 그 종이 대신 토리가 쓰다 남은 연필을 보았다. “바람 센 데서는 연필을 끈에 매어 두면 좋아. 종이는 잡았는데 연필이 날아가서 아무것도 못 적는 날도 있거든.” 토리는 가방에 실이 있다고 대답하고는 곧장 꺼내지는 않았다.
노을이 손짓을 하나 보여 달라고 했다. 그믐은 손바닥을 펴고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모두 잠깐 멈추라는 뜻이었다. 노을이 따라 하자 집순이는 자기를 쓰다듬으려는 줄 알고 몸을 뒤로 뺐다. 토리는 그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짧게 웃었다. 같은 손짓이어도 보는 쪽에서는 전혀 달랐다.

“너희에게 쓰려면 뜻부터 말해야겠지.” 그믐이 말했다. 반짝이는 자기는 손바닥이 넓지 않아 똑같이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믐은 별을 올려다봤다가 직접 불러도 된다고 대답했다. 모든 친구가 같은 모양을 해야만 약속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프를 한 숟가락 뜬 그믐의 귀가 조금 내려왔다. 뜨거워서였는지 긴장이 풀려서였는지 노을은 알 수 없었다. 그믐은 두 번째 숟가락부터 천천히 불어 먹었다. 골목에서는 소리 없이 사라지던 여우가 지금은 다른 손님들처럼 수프가 식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을은 창밖의 벽돌 하나가 비어 있던 자리를 다시 바라보았다.
노을이 벽에서 꺼낸 종이를 물었다.
그믐은 편지통에 손을 얹었다.
“이 안의 편지는 받는 사람에게 먼저 전해야 해. 하지만 길에 관한 경고는 너희도 알아야겠지. 남쪽 아치길에서 돌이 떨어졌어. 내일 항구로 갈 거면 광장 안내소를 먼저 찾아가.”
새별의 표정이 굳었다.
“그 경고, 안내소에는 전달했나요?”
“도착하고 나서 전달하려고 했어.”
“우린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생각이었어요. 당신이 밤중에 떠났다면 못 들었겠네요.”
그믐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수프 위로 올라오는 김이 두 여우 사이를 지나갔다.
“맞아. 내가 편지를 제때 전하는 데만 신경 썼어. 지금 가서 게시하겠어.”
은솔도 의자에서 일어났다.
“함께 가자. 네가 본 위치를 말해 주면 내가 그림을 붙일게. 글을 못 읽는 사람도 있으니까.”
두 전령이 나간 뒤 노을은 창틀의 돌을 손바닥에 올렸다. 지도에 눌려 있던 작은 돌이었다. 토리는 그 돌을 연필 옆에 놓았다.
수프가 식는 동안 토리는 지도 모서리를 여러 번 폈다. 이미 반듯한데도 손바닥을 떼지 않았다. 노을은 빈 그릇을 모으며 창밖을 한 번 더 보았다.
“아까 네가 문으로 뛰어가니까, 나도 내가 본 것보다 더 나쁜 일인 줄 알았어. 그믐 아저씨가 종이를 가져간 건 봤는데, 왜 가져갔는지는 안 봤잖아.”
“난 네가 같이 뛰려고 해서 내가 맞는 줄 알았고.” 토리는 숟가락을 그릇 가장자리에 걸쳤다. “그런데 진짜 도둑이었으면? 물어보는 동안 도망갔을 수도 있잖아.”
은솔이 앉았던 빈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노을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그때는 우리끼리 골목으로 뛰어드는 대신 은솔에게 어디로 갔는지 말했어야겠지. 오늘은 지도보다 우리가 더 멀리 없어질 뻔했어.”
토리는 창틀에서 가져온 돌을 지도 위에 놓았다. 그믐이 눌러 둔 자리와 조금 달랐다. 돌을 어디에 놓아도 종이는 날아가지 않았다.
반짝이가 그 곁에 내려앉았다. “나는 너희 목소리가 커져서 조용히 있었어. 그런데 모르는 손짓을 모른다고 말하는 건 해도 됐겠네. 내가 알아들은 척하고 있었거든.” 토리는 그 말에 처음으로 반짝이 쪽을 돌아보았다.
“도둑이라고 외치려 했는데.”
“나도 따라 뛰려고 했어.”
“다음에는 먼저 물어볼 거야.” 토리는 잠깐 뜸을 들였다. “아마 목소리는 좀 클 수도 있지만.”
노을은 웃다가 창밖을 보았다. 안내소 앞에서 그믐이 손짓만 하려다 손을 내리고, 길게 설명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날 밤 은솔은 노을과 토리의 집으로 보낼 엽서를 썼다. 두 아이는 같은 탁자에서 한 줄씩 보탰다. 노을은 ‘바다는 잘 건넜어’라고, 토리는 ‘지도는 안 잃어버렸어’라고 적었다.
엽서에는 세 사람이 쓸 자리가 넉넉하지 않았다. 토리는 지도까지 넣으려다가 은솔의 주소 글씨를 가릴 뻔했다. 은솔은 뒤집으면 주소가 보이지 않아 도착이 늦어질 수 있다고 했다. 토리는 아주 작은 그림으로 줄였다. 여관 지붕 위에 돌 세 개를 그리니 무거운 모자를 쓴 집처럼 보였다.
노을은 ‘잘 건넜어’ 뒤에 한 문장을 더 붙일지 고민했다. 무서웠다고 쓰면 엄마가 걱정할 것 같았고, 즐겁기만 했다고 쓰면 자기가 건넌 길이 아닌 것 같았다. 결국 ‘가운데에서는 발이 느려졌는데 끝까지 걸었어’라고 적었다. 은솔은 그 문장을 고치지 않고 엽서를 말렸다.
반짝이는 자신의 이름을 어디에 쓰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노을이 마지막 빈칸을 가리켰다. 별의 손끝으로 연필을 쥐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토리가 짧은 연필을 눕혀 주자 반짝이는 삐뚤한 작은 별 하나를 그렸다. 노을은 엄마가 누군지 알아볼 거라고 했다.

그믐이 안내소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수프 위의 김이 사라져 있었다. 여관 주인은 그릇을 새로 데워 주겠다고 했다. 그믐은 아직 먹을 수 있다고 말하다가 뜨거운 수프가 더 좋겠다고 고쳤다. 노을은 그믐의 어깨 천에 작은 바느질 한 땀이 풀린 것을 보았다. 은솔은 다음 배까지 시간이 있으면 실을 빌려 주겠다고 했다.
토리는 연필에 짧은 실을 매었다. 매듭이 너무 길면 지도 위를 끌고 다닐 것 같아 몇 번이나 줄였다. 그믐은 손을 대지 않고 지켜보다가 끈 끝을 모자 안쪽에 묶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토리는 오늘은 가방에 묶겠다고 했다. 그믐은 그쪽도 좋다고 답했다.
방에 올라간 노을은 창문을 조금 열었다. 집에서는 파도 소리가 창문 오른쪽에서 났는데 여기서는 아래쪽에서 올라왔다. 반짝이가 낯설다고 말하자 노을도 그렇다고 했다. 두 친구는 한동안 파도가 어디서 오는지 듣다가, 아래층에서 집순이가 경사판을 긁는 소리를 들었다. 낯선 여관에도 이제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가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