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은 꼬리를 번쩍 들었다.
분홍 조개껍데기 아래에서 작은 집게 두 개가 나왔다. 한쪽 집게에는 솔처럼 생긴 해초가 들려 있었다. 소라게는 노을의 꼬리가 지나간 자리를 몇 번 쓸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아침 내내 청소했는데 또 모래가 들어왔네. 길이 넓다고 남의 집 앞까지 길인 건 아니거든.”
“미안해. 빈 조개껍데기인 줄 알았어.”
“그 말은 많이 들어. 빈집인지 알아보려면 먼저 불러 보면 되잖아.”
소라게의 이름은 집순이였다. 집순이는 바닷길 아래쪽 돌틈에 살았다. 정확히 말하면 집은 등에 있었고, 돌틈은 바람이 덜 드는 마당이었다. 노을은 허리를 굽혀 다시 인사했다. 이번에는 집게가 아주 조금 올라왔다.
집순이는 인사를 받자마자 마당 가장자리에 놓인 조약돌을 세었다. 넓적한 돌 네 개가 네모를 이루고, 한쪽에 작은 틈이 나 있었다. 노을은 그 틈으로 발끝을 옮기려다 멈췄다. 집순이가 말한 문이 어디인지 이번에는 먼저 찾을 수 있었다.
“저 돌은 울타리야?” 노을이 묻자 집순이는 해초 솔로 반듯한 선을 그었다. “울타리이기도 하고, 물이 얼마나 올라왔는지 보는 표시이기도 해. 어제는 저 바깥 돌까지만 젖었는데 오늘은 안쪽 돌도 젖었어. 난 청소만 하는 게 아니거든.”
토리는 바지 끝을 걷고 옆에 쪼그려 앉았다. 키를 낮추자 높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타났다. 돌 밑의 하얀 소금 테두리, 껍데기를 돌릴 만큼 둥글게 비워 둔 자리, 마른 해초를 눌러 놓은 얇은 돌이었다. 돌틈이 아니라 방 하나를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여행할 때도 그 집을 가져가? 그러면 짐을 따로 안 싸도 되겠다.” 토리가 말했다. 집순이는 등 쪽을 보려다 몸 전체를 돌렸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게 얼마나 된다고. 저 솔도 집 안에는 못 넣어. 너희는 가방이 무거우면 내려놓을 수 있지?”
토리는 배낭 끈을 만졌다. 지도장을 넣고도 자리가 남는 가방이 갑자기 아주 커 보였다. 반짝이는 집순이 옆으로 내려왔다. 둘의 그림자가 비슷한 크기로 돌 위에 놓였다. 집순이는 별을 위아래로 살피더니 해초 솔을 조금 뒤로 치웠다.
“넌 문이 어디야? 온통 반짝여서 앞뒤가 잘 안 보이네.” 반짝이는 웃다가 자기가 집으로 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집을 지고 다니는 게 아니야. 이게 나야.” 집순이의 집게가 멎었다. 노을은 아까 빈 껍데기인 줄 알았다고 한 말이 떠올라 코끝을 긁었다.
“아, 그렇구나. 그럼 여기서는 눈이 있는 쪽으로 인사하면 되겠네.” 집순이는 금세 말을 고쳤다. 반짝이는 한 바퀴 돌고 눈이 있는 쪽을 다시 보여 주었다. “응. 하지만 빙빙 돌라고 시키지는 마. 아직 끝이 조금 아프거든.” 두 작은 친구가 마주 보는 동안 토리는 지도 구석에 집게 두 개를 그렸다.
은솔은 돌계단 위에서 물이 흐르는 방향을 살피고 있었다. 모래 위에 생긴 얇은 물줄기가 마당 가장자리를 돌아갔다. 집순이는 다시 솔을 잡았다가, 물 위로 낯선 보라색이 번져 오는 것을 보고 손을 멈췄다. 노을도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은솔은 모두를 높은 돌계단으로 불렀다. 조금 전 발견한 유리 조각은 뚜껑을 덮은 깡통 안에 있었지만, 보랏빛 안개는 여전히 아래쪽 길을 핥고 있었다. 물결은 바다로 빠지는데 안개만 육지로 올라오는 모습이 이상했다.
집순이가 해초 솔을 내려놓았다.
“저게 어젯밤에도 왔어. 내 마당에서 한참 빙빙 돌다가 저 구멍으로 들어갔지.”
집게가 가리킨 곳에는 돌벽에 뚫린 동그란 배수구가 있었다. 구멍 위에는 별 모양이 새겨져 있었고, 모래에 반쯤 묻힌 유리 홈이 배수구까지 이어졌다.
“그 안에 누가 사니?” 토리가 물었다.
“옛날에는 빛이 살았어. 밤이면 바닥이 노랗게 켜졌거든. 사람들이 건너갈 때 발밑을 보여 줬지. 지금은 물도 안 빠지고, 내 집까지 축축해.”
토리는 지도에 배수구를 그렸다. 그러고는 구멍 앞에 엎드려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쪽에는 부러진 나뭇가지와 젖은 해초가 뒤엉켜 있었다.
“저것만 빼면 될 것 같아. 집순이는 작으니까 들어갈 수 있겠는데?”
말을 마친 토리가 집순이의 껍데기를 잡으려 하자 작은 집게가 딱 벌어졌다.
“잠깐. 네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 내가 들어가고 싶은 건 아니야.”
토리는 손을 멈췄다. 노을도 뻗으려던 손을 뒤로 숨겼다. 둘 다 집순이를 옮겨 놓으면 일이 쉽게 끝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맞아. 우리가 먼저 물어봤어야 했어.” 노을이 말했다. “네 마당이기도 하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 줄래? 안에 들어가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해 보자.”
집순이는 한동안 구멍을 보았다.
토리는 구멍보다 집순이의 얼굴을 보려고 허리를 더 낮췄다. 등에 집을 지고 다니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어 편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구멍은 집순이의 껍데기보다 조금 넓을 뿐이었다.
“껍데기가 걸릴 수도 있는 거야? 아까는 네 집까지 같이 들어간다는 생각을 못 했어.”
집순이가 짧은 집게로 껍데기 한쪽을 두드렸다. “여기 금 간 자리가 있어. 안에서 방향을 바꾸다가 눌리면 나는 집을 놓고 도망칠 수도 없어. 너희 가방처럼 벗어 둘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노을은 자기 가방을 내려놓던 손을 멈췄다. 집순이가 싫다고 한 이유를 이제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작다고 생각했던 껍데기의 분홍 줄무늬 하나하나가 벽과 지붕처럼 보였다.
“그럼 앞에서 당길 수는 없을까?” 노을이 긴 해초를 가리켰다. “우리가 도구를 넣고, 너는 어디에 걸렸는지만 알려 주는 거야.”
집순이는 해초를 들어 구멍에 대 보았다. 끝이 접혀 돌아왔다. “이건 너무 물러. 하지만 위에서 말고 옆에서 보면 나뭇가지가 어떻게 끼었는지 보일 거야. 잠깐, 전에 비 올 때 열었던 데가 있는데.”
“옆에 작은 뚜껑이 있어. 돌에 붙은 굴껍데기처럼 보이는데, 그건 진짜 굴이 아니야. 내가 비 올 때 물을 빼려고 열어 봤거든. 다만 혼자서는 높아서 손잡이에 닿지 않아.”
은솔이 먼저 돌의 흔들림과 발 디딜 곳을 살폈다. 그가 손잡이를 들어 올리자 벽 옆에 낮은 틈이 드러났다. 정면 구멍보다 훨씬 짧고, 반대쪽 빛도 보였다.
“여기로는 내가 가 볼게.” 집순이가 말했다. “대신 들어가는 동안 아무도 내 껍데기를 밀지 마. 내가 뒤로 가겠다고 하면 앞도 비워 줘.”
노을은 틈 앞의 자갈을 치웠다. 토리는 실 한쪽에 작은 갈고리를 묶었다. 집순이가 그 갈고리를 물고 들어가 나뭇가지에 걸면 은솔이 밖에서 당기는 방법이었다.
처음 만든 갈고리는 집순이의 집게보다 컸다. 토리는 작은 게 쓸 도구를 만들고도 자기 손으로 잡기 편한 크기를 골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은솔이 우편 꾸러미에 쓰는 가는 철사를 조금 내주었다. 토리는 돌 위에서 끝을 둥글게 접었고 은솔이 뾰족한 부분을 안으로 감췄다.
집순이는 새 갈고리를 들어 돌 위의 해초에 걸어 보았다. 한 번 끌자 끝이 벌어졌다. 토리는 얼굴을 가까이 댔다. “너무 약했어? 굵은 것으로 다시 만들까?” 집순이가 해초를 풀었다. “굵게만 하면 내가 못 들어. 앞쪽은 그대로 두고 여기만 한 번 더 감아 봐.”
노을은 실이 돌에 쓸리지 않도록 작은 나무 조각을 받쳤다. 매끈한 면이 위로 오게 돌렸는데 나무가 자꾸 기울었다. 반짝이가 한쪽 끝의 모래가 더 높다고 알려 주었다. 노을이 손바닥으로 바닥을 고르자 그제야 실이 걸리지 않고 움직였다.
“나도 뭔가 하는 것 같네.” 반짝이가 말했다. 노을은 실을 한번 밀어 보였다. “같은 걸 위에서 보면 다르게 보이는구나. 아까부터 나는 나무만 뒤집었어.” 토리는 지도장 뒷장에 틈의 모양을 그렸다. 그림 속 집순이는 구멍보다 커졌다. 집순이는 자기를 작게 그리기보다 구멍을 크게 그려 달라고 했다.

준비가 끝나도 가지가 어떻게 걸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틈으로 고개를 넣은 집순이가 처음 본 것은 나뭇가지가 아니라 은솔의 발 그림자였다. 은솔이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서자 반대편 햇빛이 들어왔다. 집순이는 앞뒤로 몸을 돌리며 두 갈래로 뻗은 가지 끝을 찾았다.
“한 가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옆으로 갈라졌어. 너희가 당기면 저 끝이 벽에 더 박힐 것 같아.” 집순이의 목소리가 돌 안에서 울렸다. 토리는 그 말대로 그림에 선을 하나 더 그었다. “그럼 먼저 돌려야겠네. 어느 쪽으로 돌아갈 자리 있어?”
은솔이 바깥에서 물길 옆의 긴 해초만 걷어 냈다. 막힌 것이 조금 풀리자 안쪽에서 물이 찰랑였다. 집순이는 한 걸음 물러나 물높이를 보았다가 다시 들어갔다. 노을은 갈고리가 가지를 잡으면 곧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는 걸 느꼈다. 작은 도구 하나를 쓰는 데도 생각할 것이 여러 개였다.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갈고리는 두 번 미끄러졌고, 세 번째에는 집순이가 쉬겠다고 나왔다. 토리는 얼른 물병을 열다가, 소라게가 물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작은 조개 접시에 물을 덜었다.
“다들 쳐다보니까 더 안 잡히는 것 같아.” 집순이가 말했다.
“그럼 난 지도 볼게. 부르면 바로 돌아볼 수 있는 쪽으로.”
토리가 몸을 돌렸다. 노을도 멀리 있는 바위들을 세는 척했다.
한동안 물방울 소리만 났다. 노을은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바위의 검은 줄을 세었다. 셋까지 셌을 때 집순이가 불렀다.
“토리, 실을 조금만 풀어 줘. 당기지는 말고. 갈고리 끝이 가지 아래로 가야 해.”
토리는 두 손가락 사이에서 실을 한 마디씩 내주었다. 더 많이 풀면 빨리 끝날 것 같았지만 집순이가 멈추라고 할 때 손을 멈췄다. 팽팽하던 실이 잠깐 느슨해졌다가 다시 떨렸다.
“지금은 붙잡았다는 뜻이야?”
“아니, 내가 뒤로 나오는 중이야. 실만 보고 정하지 말고 내 말을 기다려.”
토리의 손이 멎었다. 집순이가 틈에서 집게를 내밀자 노을은 돌 위의 물기를 닦아 주었다. 은솔은 줄을 잡고도 당기지 않은 채 몸을 낮췄다.
“밖에서 잡아당길 준비는 됐어. 네가 편한 자리에 나오면 알려 주렴.”
집순이는 껍데기를 한 번 돌리고 네 다리를 단단히 디뎠다. “이제 됐어. 내가 셋을 셀게. 둘에서 먼저 당기면 화낼 거야.” 노을은 웃음을 삼키고 토리와 눈을 맞췄다. 이번에는 둘 다 집순이의 입만 보았다.
마침내 젖은 가지가 빠졌다. 고여 있던 물이 졸졸 흘렀고, 돌벽 안에서 쇠가 굴러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잠깐, 아주 잠깐 노란 선이 바닷길을 향해 뻗었다.

반짝이가 그 빛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별등에서 보던 홈이야. 빛이 지나갈 때 저렇게 켜졌어.”
“그럼 여기까지 이어져 있다는 뜻이야?” 노을이 물었다.
“응. 그런데 왜 여기서 끊기는지는 모르겠어.”
반짝이의 대답을 토리는 지도 가장자리에 그대로 적었다. ‘별등과 이어진 듯함. 끝은 아직 모름.’
물이 빠진 마당에는 작은 흰 돌 하나가 남았다. 집순이는 그것을 집게로 밀어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토리가 다른 자갈과 함께 치우려 했던 돌이었다. 가까이 보니 한 면에 초록빛 줄이 있었다. 집순이는 할머니가 북쪽에서 가져온 돌이라고 했다.
“어디서 가져온 건지 돌만 보고도 알아?” 토리가 물었다. 집순이는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가 가져올 때 내가 봤으니까 알지. 돌이 자기 고향을 써 붙이고 다니지는 않잖아.” 노을은 웃으며 반짝이를 보았다. 반짝이는 자기 몸에도 주소가 있었으면 조금 편했겠다고 말했다.
집순이는 해초 솔 끝으로 젖은 모래에 북쪽 돌계단을 그렸다. 여우 발에는 한 칸인 곳이 집순이에게는 긴 언덕이었다. 토리가 그 옆에 발자국을 그리자 두 그림의 높이가 전혀 맞지 않았다. 집순이는 틀렸다고 지우지 않고 자신의 그림 아래에 작은 집게 자국을 남겼다.
“이건 내 걸음으로 그린 거야. 네 그림은 네 발로 그려. 어느 쪽으로 보느냐고 물으면 되지.” 토리는 한 장의 지도에 다른 크기의 길이 들어가도 되는지 생각했다. 그러다 여백을 접어 작은 칸을 만들었다. 그 칸 안에서는 집순이의 계단이 가장 크게 보였다.

은솔은 여전히 젖은 바깥 돌을 확인하고 가방을 들었다. 바닷길 입구에 지도를 전해야 했다. 노을은 집순이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다가, 집순이가 솔을 문 옆에 놓는 모습을 보았다. 청소를 마친 움직임과는 조금 달랐다. 껍데기 바깥에 붙은 해초를 떼고 다리를 한 번씩 폈다.
“집에 돌아가면 네 마당이 다시 젖어 있을까 봐 걱정되지 않아?” 노을이 물었다. 집순이는 잠깐 바닥을 보았다. “걱정되지. 그래서 위쪽도 보고 싶어. 여기만 계속 쓸어도 물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면 내일 또 똑같잖아.” 토리는 접었던 지도 귀퉁이를 펴서 북쪽에 빈자리를 남겼다.
노을은 갈고리를 감은 실을 은솔에게 돌려주었다. 손끝에 작은 소금 알갱이가 남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처음 보는 소라게였는데, 이제는 집순이가 저 돌을 왜 아끼는지 알고 있었다. 노을은 마지막으로 마당 쪽에 튀어나온 자신의 발자국을 모래로 덮었다.
집순이는 자기 마당으로 돌아가 해초 솔을 문 옆에 기대 놓았다. 그러고는 세 친구를 따라 계단을 올라왔다.
“북쪽 길도 눅눅해졌는지 보러 갈 거야. 거긴 우리 할머니가 살던 데라서 길을 알아.”
노을은 집순이가 올라오기 편하도록 평평한 돌을 골라 옆에 놓았다.
“같이 가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 걸음이 너무 빠르면 꼭 말해 줘.”
“꼭 말해야 멈추는 것보다, 가끔 뒤도 봐 줬으면 좋겠어.”
토리가 앞장서려다 뒤를 돌아보았다.
집순이는 만족스럽게 집게를 접고 첫 번째 돌 위로 올라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