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PICK COMIC / 01
열쇠를 돌려주는 방법
웹툰 1화 · 22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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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린은 꽃이 죽었는지 확인하기 전에, 사진에서 치우는 법부터 배웠다. 11월 6일 금요일, 오늘은 온실 식물을 세고 사진 찍는 일. 다섯 시에 끝내면, 여섯 시의 호텔 꽃장식 일도 할 수 있었다.
태오그 문, 밀어야 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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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꽃을 맡아본 적은 없었지만, 아침 전화에는 오래 다뤄봤다고 했다. 서린은 수량표에 이름을 적었다. 마지막 획을 잎처럼 올리는, 어릴 때부터의 버릇.
태오윤태오예요. 아침에 통화했고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장부를 찾는 중인데, 식물 목록도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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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기는 꺼져 있고 온실은 바깥보다 추웠다. 그런데 중앙의 화분 일곱 개에서는 희미한 김이 올랐다. 서린은 첫 이름표를 돌렸다. 꽃 이름치고는 길었다. 사진에 걸리는 공책은 서랍에 치웠다.
태오그것도 목록에 없어요. 할머니는 마지막 것들이라고만 하셨어요.
효과음: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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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40. 화분은 스물세 개째였고, 일은 생각보다 늦어졌다. 세 번의 두드림 뒤 들어온 여자는 태오의 검은 상복 바지를 보고 말을 멈췄다. 해주는 그가 가져온 의자에 앉지 않고 첫 화분 앞에 섰다.
해주문해주라고 해요. 전에 정혜 선생님이 여기 계실 때……
해주그러셨구나. 아직 안 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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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목요일, 딸은 열쇠를 돌려달라고 했다. 해주는 오늘 여섯 시까지 직접 넣겠다고 약속하고 화분을 맡겼다. 여섯 시가 지나면 딸은 야간 근무를 간다. 해주는 아까도 집 앞에서 돌아섰다. 돌려주면 다음엔 어떻게 들어갈까 싶어서.
해주딸 집 열쇠예요.
해주냉장고를 정리했어요. 버리지 말라는 것도 버리고. 서랍도 열었고요. 도와준다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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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10. 서린은 시계와 화분을 번갈아 보았다. 쉽게 끝낼 방법 같았다.
서린제가 대신 넣어드릴까요? 가는 길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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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리에 갈색 선이 번졌다. 태오가 서랍에서 공책을 꺼냈다. 메모를 읽고도 서린은 믿기 어려웠다. 태오는 봉오리에 손을 대려다가 거뒀다.
태오아침엔 따뜻했어요.
효과음: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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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린이 열쇠를 돌려놓자 갈색 선이 번지는 것이 멎었다. 납득하기에는 이상했고, 무시하기에는 너무 정확했다.
해주혼자 다시 가면 또 못 넣고 올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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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전화가 왔다. 비닐이 더 벌어져 양동이 옆으로 물이 떨어졌다. 지도에 넣어보니 빌라에서 호텔까지 버스로 40분. 또 망설인다면 여섯 시에는 갈 수 없었다.
태오저는 여기부터 막아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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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하던 대로 먼저 된다고 말하면 됐다. 서린은 전화를 받았다.
서린오늘 못 갑니다.
서린죄송해요. 지금 다른 분 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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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가 끝나고 일정표에서 금액이 사라졌다. 서린은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남은 화분 사진은 내일 찍기로 했다.
서린같이 걸어갈게요. 넣는 건 직접 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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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 앞, 해주는 따뜻한 무 조림을 문 앞에 두고 싶어 했다. 서린은 딸의 요청과 해주의 답을 다시 확인했다.
해주집에 가져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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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놓친 둘은 걸었다. 오후 5:54, 빌라 앞. 해주가 우편함 틈을 짚었다 뗐다 하는 동안 2층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해주저 소리 나면 밥 먹는 건데.
해주옆집일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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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는 직접 열쇠를 넣었다.
효과음: 달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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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58에 보낸 문자. 답장 뒤에 다른 말은 없었다. 문도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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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린이 먼저 걸었고, 해주가 뒤따랐다. 둘 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해주오늘 저녁은 반찬이 많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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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로 돌아왔을 때. 태오는 사다리 아래에 앉아 있었다.
태오다섯 시 오십팔 분. 그때 폈어요. 그래서 사진을 찍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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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색 꽃잎 다섯 장. 가운데는 작고 둥글게 비어 있었다. 꽃 아래 온도계는 9도, 아침에는 4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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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는 꽃 앞에 손을 펴 보았다. 은빛이 희미하게 비쳤다. 꽃을 꺾어가겠다는 말 대신, 가방에서 보온통을 꺼냈다.
해주이건 두 분 드세요. 딸한테는 안 가져갔다고, 누가 물어보면 말해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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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봉오리는 여섯 개. 태오가 그릇을 찾는 동안 서린은 내일 일정표를 열었다. 오전은 비어 있었다. 오후 일까지 취소할 필요는 없었다.
태오내일 사진 정리 마저 할 수 있어요? 내일 일한 시간은 따로 계산할게요.
서린아홉 시부터 열두 시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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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화분을 찍으려고 뒤집힌 이름표를 돌렸다. 아침에 쓴 것과 같은 잎 모양 끝획. 그런데 글자는 더 크고 삐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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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안쪽에 아이 키를 재던 눈금이 있었다. 그 옆에도 같은 잎. 문은 안에서는 당겨야 열렸다. 두 손으로 손잡이를 붙들고 온몸을 뒤로 기울이던 감각이 떠올랐다. 저 문이 자기보다 훨씬 무거웠을 때의 감각.
서린의 생각그런데 그때, 문 반대편에 누가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