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봤다는 말은 빼세요.”
강도윤이 진술서 세 번째 줄을 짚었다.
맞은편 남자는 종이를 내려다보다가 안경을 벗었다. 식당 두 곳을 운영하는 쉰 살의 사장이었다. 어젯밤 직원이 손님을 때렸고, 오늘 아침부터는 서로 먼저 맞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봤다니까요. 손님이 먼저 멱살을 잡았어요.”
“그때 어디 계셨습니까?”
“주방이요.”
“경찰한테는 전화 받고 나갔다고 하셨는데.”
남자가 안경다리를 접었다 폈다.
“그게 다 한꺼번에 벌어졌어요. 전화 받고, 소리 나고. 정신이 없어서 순서를…….”
“직원이 전화했습니까?”
“예.”
“직원이 손님한테 맞으면서 사장님께 전화를 했다고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윤은 잠깐 기다렸다가 서류를 돌려주었다.
“밖에 나가서 처음 본 게 뭡니까?”
“우리 애가 그 사람 위에 올라타 있었어요.”
“그것부터 적으세요.”
“그러면 우리 쪽만 잘못한 것 같잖아요.”
도윤은 책상 모서리에 놓인 휴대전화를 남자 쪽으로 밀었다. 남자가 보내온 영상이 멈춰 있었다. 손님 테이블을 찍던 다른 손님의 화면 끝에 두 사람이 걸려 있었다.
“저도 이 앞부분이 필요합니다. 영상 찍은 분 연락처부터 주세요.”
남자는 종이를 당겼다. 두 줄을 지우는 데 펜을 여섯 번 그었다.
상담이 끝나고 남자는 문 앞에서 다시 돌아섰다.
“그 직원, 내 처남이에요.”
“네.”
“그냥 일하는 애가 아니라서. 우리 집 사람이 그걸 알면…….”
도윤은 남자의 손에 든 진술서를 보았다.
“오늘 여기서 정리한 건 변호사에게도 그대로 말씀하세요.”
남자가 나간 뒤 도윤은 상담 기록에 가족 관계를 덧붙였다. 처음에는 사장이 직원 일을 걱정해서 온 줄 알았다. 이제는 아내에게 설명할 말도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책상 위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박기준이 소개한 고객에게서 잔금이 들어왔다는 문자였다. 도윤은 입금액을 확인하고 다음 주 임대료를 이체했다.
오후 여섯 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문을 잠그려는데 복도에서 엘리베이터 소리가 났다. 문 앞에 나타난 남자는 손님용 슬리퍼를 찾지 않고 구두를 신은 채 들어왔다.
오재문이었다.
도윤은 열쇠에서 손을 뗐다.
“예약하고 오시죠.”
“형사님 전화가 돼야 예약을 하지.”
“그 호칭 쓰지 마세요.”
“여기선 뭐라고 불러요? 대표님?”
재문은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출입문 옆의 사업자등록증, 빈 책장, 유리문에 붙은 ‘사실관계 조사 및 자료 정리’라는 글씨까지 천천히 읽었다.
“하는 일은 똑같네.”
“용건이 뭡니까.”
재문이 의자에 앉았다. 얇은 점퍼 소매가 올라가 손목에 붙인 살색 파스가 보였다. 그는 파스 가장자리를 누르면서도 점퍼 지퍼는 내리지 않았다.
“그때 받은 돈, 다 썼어요.”
“저한테 맡겨두신 돈 없는데요.”
“알아요. 그런 뜻 아니라는 것도 알면서.”
재문이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도윤 앞에 내려놓았지만 손가락은 떼지 않았다.
오래된 진술서 사본이었다. 종이 한가운데 복사기의 검은 줄이 지나갔다. 도윤은 사건번호보다 먼저 그 줄을 알아보았다. 경찰서 복사기가 고장 났던 달이었다. 신청한 부품이 늦어져 몇 주를 그대로 썼다.
재문이 읽었다.
“시간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었던 건 틀림없습니다.”
도윤은 종이를 가져오지 않았다.
“다섯 해 지났습니다.”
“이 문장 말이에요. 나 원래 이렇게 말 안 해요. 그날도 시간은 모르겠고, 얼굴도 제대로 못 봤다고 했거든.”
“지금 무슨 말씀 하시려는지 알겠습니다.”
“그럼 끝까지 들어요. 그때도 자꾸 중간에 끊더니.”
복도에서 청소 카트가 지나갔다. 바퀴 하나가 바닥 이음새를 넘을 때마다 덜컥거렸다. 도윤은 열린 문을 닫았다.
재문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장우진. 그 친구 아직 안 나왔죠?”
“확인해본 적 없습니다.”
“누나는 계속 확인하던데. 나 어디 사는지, 일은 뭘 하는지. 한번은 일하는 데까지 왔어요. 사람들 있는데 붙잡고 물어요. 정말로 봤냐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진술한 대로라고 했죠. 내가 무슨 말을 더 해요.”
재문은 종이를 다시 접었다. 도윤이 읽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것 같았다. 접힌 모서리를 손톱으로 눌렀다.
“처음엔 돈 좀 받고 끝나는 줄 알았어요. 누가 찾아올 거라고는 안 했잖아.”
“얼마 필요합니까?”
재문의 손이 멈췄다.
“오천.”
도윤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 돈을 제가 왜 줍니까?”
“박 팀장은 안 받으니까.”
“그럼 받을 때까지 전화하세요.”
“그 사람한텐 말하지 마요.”
목소리가 달라졌다. 재문은 닫힌 문을 한번 보고 도윤 쪽으로 몸을 숙였다.
“이건 형사님하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호칭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도윤 씨.”
재문이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직 가지고 있어요. 그날 내가 처음 말한 거.”
도윤은 책상 아래로 내렸던 손을 올렸다.
“뭘 가지고 있다는 겁니까?”
재문은 휴대전화를 꺼냈다가 화면을 보여주지 않고 되넣었다.
“확인하고 싶으면 밤에 와요. 인성운수 옛 정비동. 아홉 시에 있을 테니까.”
“여기서 확인하면 되잖아요.”
“돈 얘기부터 안 하고요?”
도윤이 일어섰다. 재문은 잠깐 입을 벌렸다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여기까지 오셨으니까 한 번은 듣겠습니다. 지금 보여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시고요.”
재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릎에 떨어진 종이를 주웠다. 서두르다 두 번 집었다.
문까지 간 그가 손잡이를 잡은 채 말했다.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안 오면 되겠네.”
문이 닫혔다.
도윤은 잠금장치를 돌린 뒤 책상으로 돌아왔다. 곧바로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싱크대에서 컵을 헹구고 물을 받았다.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 내려놓고 박기준의 번호를 눌렀다.
“아직 사무실이냐?”
기준 쪽에서는 자동차 방향지시등 소리가 났다.
“오재문 왔다 갔어.”
“아, 그 새끼. 얼마 달래?”
“오천. 당신한테는 말하지 말라더라.”
“나한텐 억 불렀다. 급했나 보네.”
“뭘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해.”
방향지시등 소리가 멎었다.
“봤어?”
“처음 한 말을 가지고 있다는데.”
“봤냐고 물었어.”
“안 보여줬어.”
기준이 숨을 내쉬었다.
“그럼 없는 거야. 있으면 벌써 보여줬지. 너 아직도 그런 소리에 반응하냐.”
“옛 정비동에 아홉 시까지 오래.”
“거길 왜 가. 괜히 만나서 녹음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수화기 너머로 경적이 울렸다. 기준이 잠깐 욕을 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연락해볼게. 너는 답하지 마. 문자 와도 그냥 놔둬.”
“어떻게 할 건데?”
“얼마나 급한지 알아보고. 너한테까지 갔으면 사고를 쳤겠지.”
도윤은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 누나도 찾아다닌대.”
“누구.”
“장우진 누나.”
이번에는 대답이 늦지 않았다.
“걔 얘기는 왜 나와. 재문이 돈 달라는 얘기잖아.”
기준은 도착했다며 전화를 끊었다.
도윤은 사무실 불을 끄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휴대전화에 재문의 문자가 떴다.
‘아홉 시. 오늘 지나면 나도 다른 데 얘기합니다.’
도윤은 답장을 쓰지 않았다.
그는 그날 정비동에 가지 않았다. 집 근처 세탁소에서 맡겨둔 셔츠를 찾았고,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샀다. 식탁 위에 놓인 종이 영수증들을 치운 다음 밥을 먹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예전에 본 영화가 하고 있었다.
아홉 시가 조금 넘어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재문의 문자는 더 와 있지 않았다. 기준에게 연락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통화해봐야 아직도 신경 쓰냐는 말을 들을 것 같았다.
도윤은 도시락 뚜껑을 덮었다. 밥이 반쯤 남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모르는 번호가 두 번 울렸다.
“강도윤 씨 되십니까? 오재문 씨 아시죠.”
도윤은 양치하던 칫솔을 세면대에 놓았다.
“무슨 일이시죠?”
“어젯밤 만나셨습니까?”
“저녁에 제 사무실에 왔습니다.”
“그 뒤로는요?”
“없습니다.”
남자가 소속과 이름을 말했다. 도윤은 물을 틀어 입을 헹군 뒤 수도를 잠갔다.
“오재문 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마지막 행적 확인 중이고요. 오늘 오전에 좀 뵀으면 합니다.”
도윤은 손등에 묻은 치약을 내려다보았다.
“어디서 발견됐습니까?”
“인성운수 이전 정비동입니다. 아시는 장소입니까?”
도윤이 입을 열기 전에 상대가 한 번 더 물었다.
“어젯밤 거기 가신 적 없으세요?”
“없습니다.”
“확인할 내용이 있어서요. 열한 시에 오실 수 있겠습니까?”
도윤은 가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세면대 앞에 서 있었다. 재문이 사무실에서 무릎 아래로 떨어뜨린 종이를 줍던 모습이 떠올랐다. 손끝이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처럼 두 번이나 집었다.
재문은 장우진의 누나가 일터까지 찾아왔다는 얘기도 했다. 도윤은 그 말을 끊고 액수부터 물었다. 다른 얘기는 듣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도윤은 기준의 번호를 띄웠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가, 아홉 시 약속을 전달하던 자기 목소리를 떠올렸다.
화면을 껐다.
사무실에는 아홉 시 사십 분에 도착했다. 경찰서에 가져갈 재문의 문자와 상담 일정을 출력할 생각이었다. 어제 받지 않았던 진술서 사본이 자꾸 생각났다. 사건번호라도 다시 봐둘 걸 그랬다.
프린터에 용지를 넣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유리문 밖에 작업용 점퍼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한 손에는 휴대전화, 다른 손에는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다. 여자는 도윤이 문을 여는 동안 짧게 통화했다.
“그 차는 오전에 빼면 안 돼요. 기사님 쉬는 날이라니까. 내가 열두 시 전에 들어갈게.”
통화를 끊은 여자가 그를 보았다.
“오재문 씨 만났죠?”
“누구십니까?”
“장우진 누나요.”
도윤은 열어두었던 문을 조금 당겼다. 여자의 시선이 그의 손으로 내려갔다.
가까이서 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경찰서 민원실에서 몇 번 보았고, 복도에서도 한번 마주쳤다. 그때는 겨울이었는데 코트 소매 끝이 젖어 있었다. 그는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고 말하고 지나갔다. 자신도 그 사건 담당자였다.
여자가 봉투를 문 사이로 내밀었다.
“이번에도 제가 잘못 찾아온 건지, 그것부터 말해요.”
도윤은 문을 놓았다.
여자가 들어와 봉투를 열었다. 의자에 앉으라는 말은 기다리지 않았다. 맞은편 의자에 앉아 종이 뭉치를 책상 위에 놓았다.
맨 위에는 오래된 진정서가 있었다. 귀퉁이에 동그란 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재문 씨 일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경찰에서 아침에 전화 왔어요. 그 사람이 어제 저한테도 연락했거든요. 할 말 있다고. 정비동으로 오래서 갔고요.”
도윤은 출력하던 문자를 뒤집어놓았다.
“몇 시에요?”
“그쪽이 저한테 물을 순서예요?”
“지금 중요한 얘기라서 그렇습니다.”
“제 얘기도 그랬어요.”
여자는 진정서를 도윤 쪽으로 밀었다.
제출인 이름은 장해원이었다. 도윤은 본문 첫 줄을 읽었다. 사고 차량에 동생이 도착하기 전 누가 운전하고 있었는지 확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아래 몇 줄에 파란 펜으로 표시가 돼 있었다. 도윤은 자신이 긋던 짧은 밑줄을 알아보았다.
“그 서류는 제가 검토만 했습니다.”
해원이 봉투에서 다른 종이를 꺼냈다.
“아직 아무것도 안 물었어요.”
이번 것은 컬러 인쇄물이었다. 차량 블랙박스 화면 아래 날짜와 시각이 찍혀 있었다. 어젯밤 아홉 시 이십사 분. 낡은 정비동 출입문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오재문이었다. 사무실에 입고 왔던 얇은 점퍼가 보였다. 다른 사람은 자동차 문에 몸이 가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도윤은 의자를 당겼다.
“원본 있습니까?”
“제 차에서 뽑은 거예요. 먼저 도착해서 기다렸어요. 재문 씨가 사람 하나만 만나고 나오겠다고 해서.”
“계속 거기 계셨습니까?”
“아홉 시 반쯤 오늘은 안 되겠다는 문자가 와서 돌아갔어요.”
“다른 사람 보셨습니까?”
“이제 제가 물을게요.”
해원이 오래된 진정서를 영상 인쇄물 옆에 놓았다.
“읽어보세요. 제가 뭘 확인해달라고 했는지.”
“장해원 씨.”
“그때 다 읽었어요?”
도윤은 입을 다물었다.
프린터에 쌓인 출력물 맨 위에는 어젯밤 재문의 문자가 있었다. 오늘 지나면 다른 데 얘기하겠다는 말이 용지 가운데 놓여 있었다.
해원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윤이 진정서를 집었다. 첫 장 뒤에 붙은 별지까지 네 장이었다. 세 번째 장에서 장우진의 이름 옆에 가족관계증명서 사본이 붙어 나왔다. 그가 지난번에 넘겨보지 않은 페이지였다.
“아니요.”
해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끝까지 안 읽었습니다.”
도윤은 첫 장으로 돌아갔다.